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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이매방 명인, 최윤희 발표회에 특별출연

[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482]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최윤희는 1985년, 진주 <개천예술제>에 <도살풀이춤>으로 출전하여 대통령상을 받았고, 1986년 <전남도립국악단> 창단과 함께 무용부장-상임안무자가 되어 활동하였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1991년 대전으로 연구소를 옮겼을 때, 100여명이 넘는 문하생들이 모여들었으며 그의 고향, 충남 홍성군에서는 그를 초청하여 군민들에게 전통춤을 지도하게 하였는데, 그것이 계기가 되어 2005년에는 「홍성군립무용단」을 창단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하였다. 그리고 그 이후에는 <동국대 사회교육원>과 <불교방송국>에 『도살풀이춤』 강좌를 개설하여 10여년 동안 전승과 보급 활동을 해 왔다는 이야기 등도 하였다.

 

이번 주에는 최윤희 발표무대에 이매방 명인이 찬조출연을 해 주어 무대가 더더욱 빛났다는 이야기를 한다. 최윤희로부터 직접 들은 재미있는 이야기 한 토막을 소개한다.

 

2003년 가을로 기억되는 남쪽 지방의 큰 국악경연대회에 심사위원으로 초대를 받았다. 심사위원들이 숙박하는 호텔 앞에서 승강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그곳에서 우연히 이매방 명인을 만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생전의 이매방은 중요무형문화재의 승무(27호)와 살풀이춤(97호) 두 종목의 예능보유자로 매우 유명했던 춤꾼이었다.

 

 

깜짝 놀라며 “선생님 저는 <도살풀이춤>을 공부하고 있는 대전의 최윤희입니다”라고 인사를 드리니까, 선생이 한눈에 알아보고 “오, 자네를 내가 잘 알고 있네. 숙자 선생이 그토록 아끼던 제자 최윤희가 아닌가!”라며 반갑게 받아주었다는 것이다.

 

더욱 놀란 최윤희가 “선생님이 저를 어떻게 기억해 … ”라고 하자 “자네가 1979년도 전주 대사습에서 장원에 오를 때, 내가 심사를 했고, 자네의 춤을 내가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는데, 왜 내가 자네를 모르겠는가?”라고 했다. 무려 25년이 지난 일임에도 그를 기억해 주고 있는 이매방 명무의 기억력에 최윤희는 그만 할말을 잊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 뒤, 2004년 2월, 최윤희는 서울 국립국악원 무대에서 도살풀이춤 개인발표회를 갖게 된다. 이때, 자신을 격려해 주던 이매방 선생에게 특별출연을 요청하였더니 흔쾌히 응락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최윤희의 도살풀이춤 발표회에 이매방이 함께 무대에 선다고 해서 크게 화제가 되었고, 그 무대가 각광을 받은 적이 있었다. 직접 무대에 서 준 것도 한없는 영광이지만, 직접 축하의 글을 써 주어 자신을 격려해 준 것을 최윤희는 이날까지 못 잊고 있다. 이매방의 축하 글 한 토막이다.

 

 

“김숙자의 도살풀이춤은 크고 무거우며 엄숙하고 강한 그 무엇이 있는 민속무용으로 결코 가볍게 흔들리고, 가뿐 거리거나 건들거리는 춤이 아닙니다. 강한 느낌을 주면서도 사람의 마음을 흔들고 감동을 주는 예술의 혼(魂)과 맥(脈)이 담긴 최고의 춤을 김숙자 선생은 추었습니다. 오늘 김숙자 류 전통춤 원형 보존을 재현의 무대로 최윤희의 도살풀이춤이 펼쳐진다고 하니 반가운 마음에”<아래 줄임>

 

이매방의 <살풀이춤>과 김숙자의 <도살풀이춤>은 서로의 특징을 간직하며 언제나 무용계의 주요 공연 종목으로 각광을 받아온 대표적 작품이었다. 김숙자의 춤은 결코 가볍고, 건들거리는 춤이 아니라는 점, 감동을 주는 예술혼과 맥을 담고 있는 훌륭한 춤이라는 점을 이매방이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매방이 누구인가? 한 분야의 정상에 오르기도 어렵거늘 중요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와 제97호 <살풀이춤> 두 분야의 예능보유자로 무용계의 막강한 실력과 전승자들을 거느린 대 명인이 아닌가!

 

 

이러한 명인이 상대자였던 김숙자의 존재를 강하게 인정하고 있는 그 마음, 또한 보통 사람은 아니라는 점을 느끼게 하며 최윤희에 대해서도 칭찬과 함께 발전을 기대하는 마음을 드러내 주고 있어서 명인다운 면모를 엿볼 수 있는 것이다. 이매방의 축하내용이다.

 

“최윤희는 일찍이 어린 나이에 김숙자 선생의 문하에서 고된 춤 공부를 하면서 타고난 재질을 발휘하여 1979년 전주대사습에서 최연소 나이로 <도살풀이춤>을 선보여 장원을 한 바 있습니다. 그 당시 그는 춤 재주가 월등했으며 김숙자 선생에게 참으로 훌륭한 제자를 두었다고 칭찬했던 기억이 엊그제 같은데, 25년이 지난 오늘 다시 최윤희의 그 춤을 보게 됩니다. 그가 말없이 꾸준한 노력과 정진으로 김숙자 <도살풀이춤>의 원형을 지켜가고 있으며 또한 전국의 많은 제자 양성에도 정성을 기울이고 있는 점을 지켜보며 기특한 마음으로 치하의 말을 전합니다”

 

김숙자 선생을 먼저 저세상으로 보내드리고, 고군분투하고 있던 최윤희에게 이매방 명인의 격려는 천군만마(千軍萬馬)를 얻는 것 같은 용기와 희망의 선물이었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이 명인은 당시의 무형문화재 정책과 관련한 고언(苦言)들을 공개적으로 지적하여 관심을 끌기도 했다.

 

그 핵심 내용은 주로 전통춤의 원형을 변질시킨 사람들이 문화재 지정에만 눈이 어둡다는 점과 함께, 제대로 관리해야 할 관청에서는 이러한 사람들을 인간문화재로 지정하려 한다는 날카로운 지적을 하고 있어 마치 문화재 정책의 어제와 오늘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기만 하다. (다음 주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