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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아ㆍ김민서의 음악편지

가정의 달에 띄우는 사랑노래

바블 껌 <아빠는 엄마만 좋아해>
[김상아ㆍ김민서의 음악편지 134]

[우리문화신문=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사월은 분홍 세상이었다. 얼음새꽃, 고들빼기꽃, 구릉대꽃이 깔아놓은 노란 멍석 위에 진달래, 산벚꽃, 개복숭아꽃, 살구꽃이 흐드러져 노을마저 분홍으로 물들였었다. 그 분홍 사월이 가니 이젠 층층나무, 이팝나무, 때죽나무, 찔레꽃 같은 흰 꽃들이 오월을 뒤덮는다.

 

봄비치고는 제법 많은 비가 내리는 덕택에 참으로 오랜만에 가져보는 꿀맛 같은 망중한(忙中閑)이다. 취나물, 동박 잎에 부추겉절이를 얹어 싼 삼겹살에다 아내가 빚은 청주까지 한 잔 곁들이니 이 맛이 그 맛이요, 이 세상이 바로 내 세상이다.

 

우리는 길게 다리를 뻗고 내친김에 영화도 한 편 감상했다. 옛날 영화를 쭉 검색하다가 빨간 냄새가 나는 제목이 있어 눌러 봤더니 아니나 다를까, 1972년에 제작된 <꽃 파는 처녀>라는 북한영화였다. 구닥다리 “꼰대”라서 북한영화가 버젓이 돌아다닌다는 현실이 도저히 믿기지 않아 한동안 지남력* 상실상태로 있다가 정신을 차려 격세지감(隔世之感)으로 보았다.

 

1930년대가 시대배경인 영화의 줄거리는 대충 이렇다. 어느 고장인지 알 수 없으나 그리 크지 않은 저잣거리에서 “꽃분이”라는 한 처녀가 꽃을 팔러 다니는 장면에서 영화는 시작된다.

집 근처 야산에서 꽃을 꺾어다 파는데 벌이가 시원치 않아 집안 살림에 별 보탬이 되지 않는다.

 

편모슬하에 오빠와 여동생, 이렇게 네 식구가 살아가는데 죽도록 일을 해도 장리쌀*의 늪에서 헤어날 길이 없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막내가 지주 집 음식 하나를 집어 먹으려다 안주인이 걷어찬 화로의 탕약이 튀어 그만 눈을 잃고 만다. 오빠는 이에 대한 보복으로 지주 집에 불을 질러 감옥에 가게 되고 그 바람에 집안 형편은 더 쪼그라들어 굶기를 밥 먹듯 한다.

 

복리* 장리쌀을 갚지 못하면 꽃분이를 지주 집에 종으로 보내야 하기에 ‘죽으려야 죽을 수도 없다’라던 어머니는 먹지도 못하고 밤새워 일하다 끝내 목숨 줄을 놓고 만다. 꽃분이는 그 사실을 편지로 오빠에게 알렸으나 답이 없자 여동생을 이웃에 맡기고 삼백 리 떨어진 형무소로 오빠를 찾아 나선다. 그 과정에서 겪는 남매의 우여곡절과 탈옥한 오빠가 혁명투사가 되어 마을 사람들과 힘을 합쳐 악덕지주를 응징하고 혁명의 길로 인도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체제선전 영화란 게 늘 그렇듯 영화 전반부에서 이미 종장을 짐작할 수 있을 만큼 내용이 뻔하다. 줄거리(시놉시스)도 약하고 구성에서도 빈구석이 눈에 많이 들어온다. <꽃 파는 처녀> 역시 그 한계를 벗어나지는 못했으나, 개인주의가 만연한 요즘의 우리에게선 찾아보기 힘든 끈끈한 가족애를 그리고 있어 보는 내내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병들고 허기진 어머니는 이웃 아낙이 치마폭에 감춰다 준 누룽지 한 조각을 차마 먹지 못하고 집으로 가지고 와 딸들에게 나누어 준다. 언니는 다시 자기 몫을 보태 동생이나 허기를 면하게 해준다. 이것을 비극이라 해야 하는가? 아름다움이라 해야 하는가?

 

핵가족화시대로 접어들기 전에는 우리에게도 이렇게 진한 가족애가 있었다. 전국의 산업현장에는 동생들의 학비를 벌기 위해서 또는 집안을 일으켜 보겠노라고 뛰어든 누나, 형들로 넘쳐났다.

 

가족애!

이것은 우리 인간이 지니는 값어치 가운데 가장 값이 큰 것이다. 비단 인간만이 아니라 집단생활을 하는 모든 동물의 기본요소이기도 하다. 우리는 지금 그 가장 큰 값어치를 상실한 시대를 살고 있다. 아동학대 살인 이라든가 존속살인 같은 일어나서는 안 될 극악의 행태들이 하루도 빠짐없이 언론을 도배질한다. 이를 두고 어찌 인간을 “만류의 영장”이라 할 수 있겠는가? 여기저기서 가정 무너지는 소리가 들린다. 어느새 “혼술”이니 “혼밥”이니 “기러기 아빠” 같은 신조어가 낯설지 않은 세상이 되어버렸다.

 

우리 국민은 성실과 근면, 우수한 두뇌를 바탕으로 세계 최빈국 대열에서 빠져나와 이제는 선진국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다. 하지만 산업화와 물질의 풍요가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주었던가? 세상에는 물질로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이 훨씬 많다. 우리는 어리석게도 세상의 값어치 가운데 가장 큰 값어치를 물질과 바꿔버리고 말았다.

 

가족애는 나무의 뿌리와도 같은 것이다. 뿌리가 뽑히면 그 나무는 어찌 되겠는가?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정치적 현안이나 경제적 현안이 먼저가 아니다. 황폐해진 우리의 심성이 가정이라는 밭에서 가족의 사랑을 자양분으로 푸르게 자랄 수 있는 정책을 펴야 한다. 우리 인류의 자랑거리 가운데 하나가 미래를 내다보고 계획을 세우는 것이 아닌가. 우리 후손들이라도 사랑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살 수 있게 시계바늘을 되돌려야 한다.

 

“시작은 아무리 늦어도 빠른 것”이라 하지 않던가!

 

 

아빠는 엄마만 좋아해

 

귀여운 새들이 노래하고

집 앞뜰 나뭇잎 춤추고

햇님이 방긋이 고개 들면

우리 집 웃음꽃 피네

아빠 엄마 좋아 엄마 아빠 좋아

아빠 엄마 좋아 엄마 아빠 좋아

 

아빠가 퇴근을 하실 때면

양손엔 선물을 가득히

우리 집 꼬마들 좋아서

엄마 아빠 좋아요

아빠 엄마 좋아 엄마 아빠 좋아

아빠 엄마 좋아 엄마 아빠 좋아

 

즐거운 휴일엔 단둘이서

아무도 모르게 살짝쿵

우리 집 꼬마들 질투 나서

아빠는 엄마만 좋아해

아빠 엄마 좋아 엄마 아빠 좋아

아빠 엄마 좋아 엄마 아빠 좋아

라라 ~ ~ 라라 ~ ~

 

<연가> <목요일 밤> <짝사랑> 같은 건전가요들을 히트시킨 “바블껌”은 이규대, 조연구가 1971년에 결성한 혼성듀엣이다. 이규대는 배재고 시절부터 왕성한 음악활동으로 학생들 사이에선 제법 이름이 알려진 인물이었다. 나중에 연인 사이로 발전했다가 반려자가 되는 조연구와는 YMCA 노래동아리 “Y코러스”에서 얼굴을 익혔다.

 

대학생이 되어 우연히 재회한 둘은 사랑에 빠져들게 되고 그 행복의 감정을 고스란히 노래에 담아 세상을 밝고 곱게 비추었다. 둘의 막내딸은 “예솔”이라는 예명으로 “천재꼬마” 소리를 듣던 이자람으로 방년(芳年)*의 나이에 판소리 <심청가> 여덟 마당을 완창하여 기네스북에 올랐다.

 

‘바블껌“의 대표곡 <연가>는 6·25 때 유엔군으로 참전한 뉴질랜드 병사들에 의해서 알려진 뉴질랜드 민요를 번안한 것이고, <아빠는 엄마만 좋아해>는 이탈리아계 불란서인인 까떼리나 발렌떼의 <Papa Ama Mama>의 번안곡으로 72년에 출시된 그들의 데뷔앨범 수록곡이다.

 

 

* 지남력(指南力) : 시간과 장소, 상황이나 환경 따위를 올바로 인식하는 능력

* 장리쌀 : 춘궁기에 쌀을 꾸어주고 추수 때 받는 쌀. 악덕지주들은 한 말을 꾸 어 주면 두 배로 거두어들였다. 또 어떤 지주들은 소작료를 8할 이상 매겼는데 이것이 국권피탈 당시 인구 10만이었던 경성이 소작농들의 무작정 상경으로 불과 20년 만에 30만으로 폭증하는 원인이 된다.

* 복리 : 이자를 못 갚으면 이자를 원금에다 보태 이자를 매기는 방식.

* 방년 : 큰 의미로는 20살 전후의 꽃다운 처녀를 일컫는 말이지만, 정확하게는 열여덟 살 처녀를 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