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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변호사의 세상바라기

호기심 제왕, 연암 박지원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166]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고미숙 씨가 쓴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을 읽고 난 후, 직접 고미숙 팀이 번역한 《열하일기》를 읽었습니다. 《열하일기》를 읽으니 과연 고미숙 씨 얘기대로 연암은 호기심 제왕이더군요.

 

연암은 단순히 호기심으로 사물을 피상적으로만 보고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벽돌, 방구들, 수레 등 언제 그렇게 자세하게 관찰하고 연구할 수 있었을까 감탄하게 됩니다. 그것뿐입니까? 글 곳곳에 나타나는 연암의 유머에 저도 모르게 볼을 실룩거리게 됩니다. 이 가운데서 연암의 호기심 제왕다운 모습 몇 가지만 말씀드리죠.

 

 

 

① 연암은 머무는 곳마다 중국인들을 접촉하며 궁금한 것에 대해 열심히 묻습니다. 이러다 보니 일행이 출발할 때까지 돌아오지 않아 찾게 되고, 차려놓은 밥은 이미 식고 굳어 혼자 음식점에 들어가 급히 먹고 일행을 따라가게 됩니다.

 

② 요동으로 향해 가던 중 어느 마을에서는 주인이 방고래를 열고 기다란 가래로 재를 긁으니까, 그 틈에 중국 구들의 구조는 어떻게 되어있는지 열심히 살핍니다.

 

③ 어느 마을에서는 불을 끄고 돌아가는 수차(水車)를 보고는 잠깐 멈춰 세운 뒤, 열심히 물어보고 구조를 살핍니다. 그런데 그 짧은 시간에 언제 그렇게 자세히 관찰했는지 《열하일기》에 나오는 수차의 묘사는 자세하기도 합니다. 아마 당시에 사진기가 발명되었더라면 연암은 중국 갔다 오면서 엄청난 사진을 찍었을 것 같습니다.

 

 

④ 성경에 도착해서 연암은 하인 장복이더러 혹시라도 나를 찾거든 뒷간에 갔다고 하라고 미리 말해놓고는 몰래 숙소를 빠져나옵니다. 한번은 그렇게 몰래 나오다 변계함을 만나 같이 나가는데, 변계함이 들어오는 수역에게 눈치도 없이 나갔다 와도 좋으냐고 물으니 수역은 눈이 휘둥그레지며 무슨 소리냐고 합니다.

 

여기에서 포기할 연암이 아닙니다. 연암은 수역과 계함이 들어가는 것을 보며 따라 들어가는 체하다가 뒤로 슬쩍 빠져 밖으로 나갑니다. 연암은 이렇게 나가면 새벽까지 있다가 숙소로 돌아와 잠깐 눈을 붙입니다. 이런 게 한두 번이 아닌데도 견뎌내는 것을 보면 연암의 체력도 좋았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잠에는 장사가 없다고 말을 타고 가는데 도저히 잠을 쫓아낼 수가 없어서 하인들보고 떨어지지 않게 부축하라고 하고는 말 위에서 곯아떨어지기도 하지요.

 

 

⑤ 그래놓고 자기가 자는 동안 몽고인이 낙타 두 마리를 끌고 지나갔다고 하니까, 낙타를 못 본 게 억울하여 왜 자기를 깨우지 않았냐고 야단이지요. 그리고는 이다음부터는 처음 보는 물건이 있거든 졸 때건 식사할 때건 무조건 알려야 한다고 하인들에게 다짐을 받습니다.

 

⑥ 연암의 ‘호질전’에 대해서는 들어보셨죠? 이는 연암이 중국에 갔을 때 재미있는 소설을 보고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보여주려고 베껴온 것이랍니다. 그런데 이에 대해서는 점잖은 양반이 이런 소설을 썼다고 하면 주위에서 뭐라 할 테니까, 연암이 자기가 창작해놓고는 중국에서 베껴온 것처럼 둘러댄 것이라는 말도 있더군요.

 

⑦ 중국에 가면 천주교 성당도 있고, 라마교도 있겠지요? 다른 양반들은 가당치도 않은 소중화주의에 빠져 그런 오랑캐들 것을 왜 보냐고 하는데, 연암은 여기도 가서 열심히 관찰합니다. 연암이 천주교 성당을 보고 쓴 글을 짧게 인용해볼까요?

 

‘천장을 우러러보니 수많은 어린애가 오색구름 속에서 뛰노는데, 허공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것이 손으로 만지면 살결이 따뜻할 것만 같고, 팔목이며 종아리는 포동포동 살이 쪘다. 구경하는 사람들이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져 떨어지면 받을 듯이 손을 바치고 고개를 젖혔다.’

 

 

⑧ 열하에서는 황제가 사신 일행보고 라마승을 알현하라고 하니까 난리가 났습니다. 조선의 양반이 어찌 라마승을 만날 수 있겠냐는 것이지요. 모두들 한숨을 쉬며 걱정하는데, 연암은 속으로 “이거 기회다!”라고 외칩니다. 연암의 생각으로는 사신 일행이 라마승을 못 만나겠다고 우기면, 황제가 화가 나서 사신 일행을 남쪽 지방으로 귀양 보낼 테고, 그러면 연암으로서는 북쪽과는 풍물이 전혀 다른 중국 남쪽 지방까지 볼 수 있겠다는 생각에 쾌재를 부른 것이지요.

 

하하! 귀양 갈 걱정은 안 하고, 오히려 이를 새로운 풍물을 볼 수 있는 기회라고 좋아하니 정말 호기심 제왕이 아니라고 할 수 없겠습니다. 잠시 연암의 말을 들어볼까요?

 

“...그래도 사신이 운남이나 귀주로 귀양살이 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일 게야. 그렇다면 차마 나 혼자 고국으로 돌아갈 수야 없지. 그리되면 서촉과 강남땅을 밟아 볼 수도 있겠군. 강남은 가까운 곳이지만 저기 저 교주나 광주 지방은 연경에서 만여 리나 된다니, 그 정도면 내 유람이 실로 풍성해지고도 남음이 있겠는걸.“

 

나는 어찌나 기쁜지 즉시 밖으로 뛰쳐나가 동편 행랑 아래에서 건량마두 이동을 불러냈다.

“이동아, 얼른 가서 술을 사 오너라. 돈일랑 조금도 아끼지 말고, 이 이후론 너랑 영영 작별이다.”

 

⑨ 황제의 궁궐에 들어가서도 연암의 호기심은 전혀 기죽지 않습니다. 연암은 궁궐을 돌아다니다가 음악소리에 이끌립니다. 그리고 그리로는 들어갈 수 없자 담장 밖에서 오랫동안 까치발로 기웃거립니다. 보다 못한 중국 관원이 걸상 하나를 가져다가 그 위에 올라서서 보라고 하구요.

 

⑩ 연암이 이러니 모두들 연암더러 구경벽이 심하다고 놀려 대지만, 이에 아랑곳할 연암이 아니지요. 돌아오는 길에 사람들은 연암의 짐 보따리가 두툼한 것에 뭐냐고 묻습니다. 그들은 그 안에 뭔가 돈 나가는 물건이 있으리라 짐작했겠지요. 왜냐면 사신 일행이 중국에 가면 다들 귀한 물건을 사거나, 우리나라에 갖고 들어가 팔면 돈 될 만한 것들을 사니까 연암도 그럴 것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연암이 보따리를 푸니 안에 있는 것은 중국인들과 필담을 했던 초고와 여행 중에 쓴 일기입니다. 열심히 관찰하고 중국인들과 필담을 나누었으니 보따리가 그것만으로도 두툼해지지 않을 수 없겠지요.

 

이렇게 연암은 왕성한 호기심으로 눈에 보이는 중국의 모든 것을 눈에 익히고, 중국인들과 밤새도록 필담을 나누며 새로운 것을 익혀 《열하일기》로 남겼습니다.

 

저도 어디 가면 호기심 어린 눈으로 주위를 살피고 글로 흔적을 남기기도 하지만, 연암에게는 그 발꿈치 밑에도 따라가지 못하겠습니다.

 

연암 박지원! 고미숙 씨가 연암의 폐인이 되었다고 하더니 저도 연암이 좋아졌습니다. 아니 사랑하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