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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사라져 가는 한약방의 하루를 담다

20세기 국민 건강의 지킴이, 한약업사의 삶 첫 기록

[우리문화신문=이한영 기자]  국립민속박물관은(관장 김종대) 근현대생활문화 조사연구의 하나로 《약재 한 첩에 담긴 정성 : 한약방 한약업사의 하루》를 펴냈다.


한약방의 주인 한약업사들의 삶과 한약 비전(祕傳) 등 생활문화를 담다!

 

국립민속박물관은 사라져가는 직업군과 관련하여 근현대 생활문화 조사보고서를 해마다 펴내고 있다. 2020년 2월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한약방 조사연구는 한약방의 주인인 한약업사들의 삶의 애환과 한약과 관련된 비전(祕傳) 등의 생활문화를 담았다.

 

 

한약방이 뭐 하는 곳인지 아시나요? 한의원과는 뭐가 다르죠?

 

구시가지나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곳에는 어디나 ‘한약방’이 있다. 사람들은 한약과 관련된 곳이라는 막연한 생각을 하며 지나쳐 간다. 이제 경동시장을 비롯해, 시내 곳곳에는 한약방보다 많은 한의원, 약재사, 건강원과 마주친다. 뭐가 다른 것인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한방 의료 관계자가 아니면 알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한 역사적, 법률적인 차이가 있다.

 

한약재를 도소매로 취급하며, 식품위생법의 적용을 받으며, 한약업사를 운영하는 한약재상들은 오랜 전통을 가진 사람들이다. 실제로 한의사, 한약업사, 한약사 모두가 이런 넓은 의미의 약재상의 범주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이 가운데 11개 기성 한의서에 의한 처방이 가능한 한약업사(구 한약종상), 100방 처방이 가능한 의약분쟁의 산물인 한약사, 그리고 의료인으로서 한약조제는 물론, 침구나 맥진이 가능한 한의사가 있다.

 

한의사의 산파역인 한약종상이 독립운동도 지원했다!

 

한약방 주인을 한약업사(韓藥業士)라고 하며, 그 옛 이름은 한약종상(漢藥種商)이다. 한약종상은 일제시대 독립운동을 지원했던 까닭에 일경에 의해 허가제로 통제를 받았을 만큼 독립운동에 이바지한 분들이었다. 아울러 우리 한방을 보다 체계화하기 위해 ‘한의과대학’의 전신을 설립하는데 커다랗게 이바지하여, 오늘날 한의사들의 산파역을 자임했다.

 

일제강점기 이래 의사나 약사가 없던 무의촌과 무약촌이 많았던 시절, 한약방은 의료체계의 미비로 인해 의료혜택을 전혀 받을 수 없었던 국민 특히 농어촌의 서민들에게는 병원과 의원, 그리고 약국을 합친 고마운 의료공간이었다.

 

뭐? 비방(祕方)과 비전(祕傳)이 사라진다고? 그렇게 놔둬서야!

 

20세기 국민의료의 지킴이라고 할 수 있는 한약업사들은 이제 20년 아니 10년도 못가 금방 다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 왜냐하면 지금으로부터 40년 전인 1982년에 마지막 자격시험이 치러지고 난 후에는 새로운 후배들이 배출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업종과는 달리 오랜 임상의 결과인 비방이나 가미 등의 처방 등 수십 년에 걸친 경험방을 후대에 전달할 길이 사라지고 있다. 이는 전수해 줄 2세가 없는 것과 함께, 법률적으로도 약사법에 규정되어 있는 혼합 판매로 인해 혹시나 법적인 문제가 발생할 것에 대한 우려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한약업사들은 처방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좋은 약재 선별과 독극물의 법제 등을 통해 고객들에게 신뢰를 받아왔다. 이런 경험을 통해 이루어진 약재에 대한 뛰어난 감별능력과 법제 능력 등을 후세에 전달할 방법을 국가적으로 찾아야 할 시점이 된 것이다

 

한약방의 소멸은 한방의료의 붕괴 신호탄일 수 있다.

 

한약에 대한 전통이 사라져가는 일은 한 분야의 직종이나 직업군의 붕괴만을 뜻하는 것만은 아니다. 우리 한민족 의료지식체계의 붕괴 및 전통의료문화와의 단절을 의미한다. 상인과 의사 사이에서 그 정체성이 모호한 한약업사는 그런 법적인 지위에도 불구하고 우리 의료체계의 한 부분을 충실히 담당해 왔다.

 

 

한방의 지킴이 한약업사의 경험방은 우리 전통의학의 귀중한 문화유산!

 

한약방의 주인, 한약업사는 우리에게는 매우 낯선 이름이지만 우리나라의 약사법에서 규정된 법률적인 명칭이다. 전근대에서는 의사(한의사)와 한약종상(한약업사)의 경계가 거의 없던 시절. 한의사들이 본격적으로 배출되기 이전에는 허준과 허임의 후예라고 할 수 있는 우리 한방의 지킴이였다.

 

대한민국 건국 이래 한약업사들은 준의료인으로서 활약했을 뿐만 아니라, 지역유지로서 사회공헌 및 교육활동에 매진하기도 했다. 한약업사들은 단순히 한약을 파는 데 그치지 않고 선조들의 오랜 임상 경험이 반영된 기성의약서를 근거로 가감을 한 평범하지만 효력이 큰 비방(祕方)으로서 국민 특히 서민들의 질환을 치료해 왔다. 그런 경험방은 유네스코 기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동의보감》에 버금가는 오히려 더 값어치 있는 살아있는 우리 전통의학의 귀중한 문화유산이라고 할 수 있다.

 

시대적 사명을 다한 한약업사들의 기록들은 지금보다는 앞으로 미래를 살아가야 할 사람들에게 남겨져야 할 문화유산이면서 삶의 질을 향상하게 할 수 있는 자료로 활용되어야 할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런데도, 한약업사들은 1982년 이후 실질적으로 사라진 자격시험으로 인해 이제 평균연령이 70살을 훌쩍 뛰어넘는 사라져가는 직업군이 되었다. 대부분 한약방이 자연적인 감소를 했으며, 실제로 영업하는 한약방은 700여 개에 불과하다. 국민의 인식 부족과 대학을 나온 한의사와 한약사들과의 업권 다툼으로 설자리를 거의 잃어가고 있다.

 

이처럼, 20세기 우리나라 의료체계를 굳건히 지켜준 우리 한약업사들이 마지막까지 그 맡은 역할을 잘 마무리할 수 있도록 우리 국민이 보다 소중하게 관심을 가지고 인간문화재처럼 따스하게 지켜줘야 한다.

 

약재 한 첩을 정성스럽게 달이던 우리들의 어머니!

 

우리 선조들의 건강을 지켰던 것은 ‘약재 한 첩에 담긴 정성’이 아닐 수 없다. 산을 넘고 물을 넘어 받아 갔던 소중한 약재 한 첩. 우리들의 어머니는 지극한 정성을 담아 그 약재를 달였을 것이다. 20세기 서민 의료의 지킴이 한약업사 삶과 비전 등을 최초로 조명한 이번 조사보고서는 앞으로 찾을 수 없는 한약방의 타임캡슐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사라져가는 한약방 주인에 대한 기억을 타임캡슐로 기록하는 국립민속박물관

 

우리 국립민속박물관은 이처럼 알지 못하는 순간에 점차 사라져가는 한약방 주인에 대한 기록을 담기로 했다. 세월의 부침 속에 사라져가는 직업군에 대한 기억들은 이미 유명무실해져 우리들의 머릿속에서 지워져만 간다. 하지만 한약방에 대한 기록이 없다면 20세기 아니 그 이전부터의 우리 의료문화사는 설명할 수 없게 된다.

 

이처럼 우리 국립민속박물관은 수제화, 이발사, 목욕탕, 양조장을 비롯하여 사라져가는 직업군의 타임캡슐을 만드는 작업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고 있다. 단순한 유형적인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사람, 곧 우리가 만들어 가고 있는 무형의 물질문화를 생활문화 속에서 기록화하는 작업은 우리 국립민속박물관의 시대적 과제이기도 하다.

 

끝으로 이 조사보고서를 통해서 21세기 마지막 한약업사들이 약재 한 첩 한 첩에 담은 깊은 정성이 우리의 보건 의료 체계를 굳건히 지켜온 장본인이라는 점을 우리 국민 모두 알기를 기대해 본다.

 

이 조사보고서(PDF)는 국립민속박물관 공식 누리집(www.nfm.go.kr) 학술∙정보(자료마당)-발간자료 검색에서 내려받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