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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지원의 우리문화책방

이 시대 검사들에게 죽비를 치는 이준 열사

《양심을 지킨 사람들》, 김형민, 다른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한 시대를 뒤흔든 양심선언!

어느 시대나, 양심을 깨우는 죽비 소리를 내는 이들이 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면서도 불의에 동조하지 않고 바른말, 옳은 행동을 하는 이들이 있다.

 

세상은 그런 사람을 보며 미쳤다고들 한다. 그냥 눈 질끈 감고, 입 한번 닫으면 편하게 살 수 있는데 뭐하러 고생길을 자처하냐고, 누구는 그게 틀린 줄 몰라서 가만히 있는 줄 아느냐고 반문한다. 이들의 용기는 아직 ‘세상 물정 모르는’ 순진한 사람의 객기 정도로 치부되기도 한다.

 

그럼 그는 과연 모두를 각성시킨 그 외침은, 부질없는 만용이었을까. 설사 그 뒤로 바뀐 게 없더라도, 그들이 이건 아니라고 외치지 않았다면 역사는 어떻게 흘러갔을까. 이 책의 지은이, ‘산하’라는 필명으로 더 유명한 김형민 PD는 그들이 용기를 낸 덕분에 역사가 퇴보하지 않고 여기까지라도 올 수 있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는 그의 책 《양심을 지킨 사람들》에서 교과서에도 잘 나오지 않는, 양심을 지킨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신라시대부터 근현대까지, 넘나드는 시대도 다양하다. 책에 소개된 15인 가운데는 이준이나 남자현, 박종철처럼 비교적 알려진 이들도 있고, 검군이나 김성기, 강상호처럼 역사에 제법 관심이 있는 이들도 생소하게 느낄 법한 인물도 있다.

 

 

그 가운데 특히 감동을 주는 한 사람이 있으니, 바로 ‘헤이그 밀사’로 잘 알려진 이준 열사다. 그는 자신이 편히 누릴 수 있었던 온갖 특권을 마다하고 불의에 맞서 싸웠다. 잃을 것이 많은 사람일수록 그 모두를 잃을지도 모르는 선택을 하기가 더 어려운 것이 인지상정일진대, 그의 용기는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이준 열사는 함경도 북청에서 조선 태조 이성계의 이복형 이원계의 후손으로 태어난다. 함경도는 조선 세조 때 이시애의 난이 일어난 뒤로 ‘반역향’ 곧 ‘임금을 배반하고 반란을 일으킨 고장’으로 낙인찍혔고, 가끔 과거 급제자가 나오면 ‘파천황(좀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뜻)’으로 불릴 만큼 출세와는 거리가 먼 지역이었다.

 

(p.75)

함경도 사람들은 혹독한 기후와 잦은 외침, 중앙 정부의 노골적인 차별과 착취를 견뎌야 했던 만큼 억센 기질의 소유자였는데, 그중에서도 북청 사람들은 ‘덤비 북청’으로 유명했다. ‘덤비’는 옳다고 생각하는 일이나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일에는 물불을 가리지 않고 ‘덤빈다’에서 나온 말이다.

 

‘덤비 북청’의 기질을 그대로 가지고 자라난 이준은 일본 와세다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하고 독립협회, 보안회, 국채보상운동 등 활발한 사회운동을 펼치는 한편, 일본이 1905년 을사늑약으로 조선을 삼키려 하자 을사늑약 반대 운동과 애국 계몽 활동을 펼쳐 나간다.

 

그리고 1906년, 그의 기질에 가장 맞는 역할을 맡게 된다. 바로 평리원 검사, 곧 오늘날의 검사와 이름도, 하는 일도 비슷한 관직에 임명된 것이다. 그는 다른 검사처럼 기득권의 비리를 눈감아주지 않았다. 황족인 이재규가 문서를 위조하는 등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경기도 가평군에 있는 토지를 빼앗자 자그마치 징역 10년을 구형해 거만한 황족을 기겁하게 만든다.

 

이준 검사의 진짜 활약은 그때부터였다. 1906년 황태자인 순종의 재혼 가례를 맞아 고종 황제가 특사령을 내리자, 그는 을사늑약 반대 운동을 했거나 매국노 처단을 시도하다가 체포된 이들을 특별 사면 명단에 끼워 넣었다. 이때는 1906년, 나라가 외교권을 빼앗긴 뒤였다. 결국 법부의 상관들은 이준이 제출한 명단에서 문제가 될 만한 몇몇 이름을 지워버린다.

 

(p.79-80)

“이보시오, 김낙헌 국장님(형사국장). 제가 올린 명단에서 곡산 민요(民擾) 사건 장두형 등 3인, 매국노 모살 미수 사건 김일제 등 10인의 이름이 왜 빠졌습니까?”

“어허, 그들을 특사시켜 보게. 일본인들이 가만히 있겠는가. 대신들도 자기를 죽이려 한 사람들을 풀어주는데 얌전히 있겠나? 왜 이리 세상 물정을 모르는가.”

“공식적으로 제출된 특사 명단을 함부로 삭제하여 위로는 황제 폐하의 은혜를 배신하고, 아래로는 죄수를 원통케 해서 나라에 불화를 일으켰으니, 국장님은 형법대전 제331조에 따라 처벌 또는 파면되는 죄를 저지르신 겁니다!”

“뭐라고? 아니, 이 사람이! 지금 상관을 고발하겠다는 거야?”

 

이준은 정말 그렇게 했다. 법부 형사국장을 기소했고, 법부가 하극상이라며 이준을 구속하자 부당한 체포를 이유로 동료 검사와 법부 관리를 고소하는 등 투쟁을 멈추지 않았다. 결국 태형 100대를 선고받아 자동 파직될 위기에 처했지만, 이준의 의기를 눈여겨본 고종이 태형을 70대로 감해주어 검사직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 뒤로도 일제의 앞잡이가 된 법부에 맞서 각종 저항을 계속하던 그는 결국 면직된다.

 

면직된 이준은 고종의 은밀한 부름을 받고 만국평화회의가 열리는 네덜란드 헤이그에 밀사로 파견된다. 그 이후부터는 우리가 아는 대로다. 그는 나라의 명운을 걸고 헤이그로 갔지만, 일본의 훼방으로 회의 참석이 좌절되자 결국 분노와 상심을 이기지 못하고 헤이그의 한 호텔방에서 숨을 거둔다.

 

헤이그에 파견된 ‘밀사 이준’을 아는 이는 많지만, 그 이전에 일본의 침략에 소리 높여 저항하던 의기를 가진 ‘검사 이준’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오늘날에도 검사의 본분을 망각하고 권력에 영합하는 ‘가짜 검사’들이 많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준 검사가 보여준 의기는 백 년이 훌쩍 흐른 오늘날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움직이는 모든 것은 관성이 있다. 그래서 그 관성에 맞서 제동을 걸기란 쉽지 않다. 한 번의 제동으로 달리는 권력이 멈추지도 않는다. 그러나 한 사람, 두 사람, 세 사람... 이렇게 마찰이 커지다 보면 폭주하는 권력은 비로소 멈추고, 그때부터 방향을 바꿀 수 있다.

 

이들이 세상을 바꾸기 위해 냈던 ‘미움받을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이 책은 ‘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한국사 속 용기를 낸 이들에 대해 바치는 헌사와도 같은 책이다. 독자를 뭉클하게 만드는 지은이 특유의 글솜씨도 훌륭하다. ‘미움받을 용기’를 얻고 싶은 모든 이에게,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