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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지원의 우리문화책방

임인년, 은혜의 빛으로 온 세상 물들이길

《제주의 빛 김만덕》, 글 김인숙, 그림 정문주, 푸른숲주니어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만덕의 성은 김 씨니 탐라국 양가의 딸이다.

어려서 부모를 잃고 의탁할 곳이 없어서 기생집으로 가게 되고…(중략)

번암 채상국(채제공)이 78세에 충간의 담헌에서 쓰노라.”

-머릿말 중에서-

 

김만덕. 아직도 많은 이들에게 생소한 이름이다. 흔히 우리나라 역사 속 여성 인물을 이야기할 때 신사임당, 허난설헌, 유관순 등을 첫손에 꼽는 사람은 많아도, 김만덕을 떠올리는 이들은 여전히 드물다.

 

그러나 김만덕은 우리나라 역사 속 어떤 인물보다 더 대단한 일을 해낸, 추사 김정희의 표현 그대로 ‘은혜의 빛으로 온 세상을 물들인’ 여인이다. 그녀는 4년 동안 이어진 혹독한 기근 가운데 자신의 전 재산을 풀어 곡식 오백 석을 마련했고, 죽어가는 수많은 백성을 살려냈다.

 

이 책 《제주의 빛 김만덕》은 그런 김만덕의 삶을 쉽게, 그러나 깊이 있게 풀어낸 책이다. 마을을 휩쓸고 간 역병으로 갑자기 고아가 된 그녀의 어린 시절부터 모두가 칭송하는 ‘만덕 할머니’가 되기까지,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그녀의 삶을 오롯이 담아냈다.

 

 

그녀는 본디 기생과는 관련이 없는, 양인의 딸이었다. 넉넉한 형편은 아니었지만 자상한 부모, 오라버니 만적, 동생 만재와 함께 다섯 식구가 살던 단란한 가정이었다. 그러나 불행은 예고 없이 닥쳐왔다.

 

영조 26년(1750년, 경오년), 정월부터 찾아든 돌림병은 삽시간에 전국으로 번졌다. 5월 말까지 죽은 사람이 12만 5천여 명에 달했고, 여름을 지나면서 돌림병은 더 거세져 9월 한 달 동안 죽은 사람도 6만 7천 명이었다. 그해 돌림병으로 목숨을 잃은 제주 사람은 882명이나 되었고, 만덕의 부모도 그 희생자였다.

 

만덕은 그때 고작 열두 살이었다. 부모를 잃은 삼남매는 굶기를 밥 먹듯 했다. 남매들을 돌보아 주는 대정 할머니가 있었지만, 형편이 어렵기는 매한가지였다. 살길이 막막했던 삼남매는 뿔뿔이 흩어졌고, 만덕은 기생집에 몸을 의탁하게 되었다.

 

기생 설향은 만덕을 잘 돌보아 주었다. 만덕은 용모가 아름답고 눈썰미가 좋은 데다,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아는 영리한 아이였다. 만덕이 열일곱 살이 되자 설향은 만덕을 관아의 기적에 올렸고, 그렇게 기생이 된 만덕은 시나브로 제주의 명기로 알려졌다.

 

그러나 만덕의 마음은 늘 불편했다. 기생의 삶은, 벗어날 수만 있다면 벗어나고 싶은 삶이었다. 양가의 자식으로 태어나 기생으로 사는 것이 부모를 욕되게 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기회를 보아 제주목사에게 기적에서 빼 달라는 탄원을 올렸다.

 

(p.157)

“부끄럽지만 제주의 기생으로 살아온 세월만도 5년이 넘습니다. 그동안 사람들은 저를 두고 제주의 명기니, 뭐니 했지만 저는 맘속으로 제가 기생이란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양가의 자식으로 기생이 되었으니, 이는 다만 한때의 곤욕이라 여겼을 뿐입니다. 영감마님, 부디 살피시어 다시금 양인으로 돌아가 살 수 있도록 하여 주십시오. 엎드려 탄원 드립니다.”

 

만덕의 탄원은 목사 신광익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는 판관 한유추와 상의하여 만덕을 기적에서 빼고 양인 신분을 되찾아 주었다.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만덕은 때가 오기를 기다린 끝에 첫 번째 소원을 이뤄냈다.

 

그 뒤 만덕은 객주를 차려 큰 성공을 거뒀다. 기방에 있을 때 관청과 양반가에서 사용하던 물품들을 두루 익힌 것이 크나큰 자산이 되었다. 어려운 세월이었지만, 항상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했던 그녀의 성품이 빛을 발한 것이다. 김만덕 객주는 날로 번성했다. 중간에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하기도 했으나 사람을 귀히 여기고, 물건을 잘 고르며 수완이 좋았던 그녀의 거상 DNA는 그 모든 어려움을 능히 극복해냈다.

 

재난의 그림자가 제주를 덮기 시작한 것은 정조 16년(1792년) 겨울부터였다. 몇 년째 이어진 흉년으로 굶주리는 사람이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만덕은 객주 앞에 솥을 내걸고 죽을 끓여 죽어가는 사람들을 살렸다.

 

그러나 상황은 점점 나빠져 정조 18년(1794년, 갑인년)에는 섬 인구 전체가 굶어 죽을 위기에 처했다. 목사 심낙수는 조정에 구호 곡을 청하는 장계를 올렸고, 조정에서 보낸 구휼미로 간신히 위기를 모면했다. 그러나 그 이듬해, 나머지 구휼미를 실은 배 5척이 풍랑에 침몰하자 더는 방법이 없었다. 만덕은 깊은 고뇌에 빠졌다.

 

(P.124)

가난 구제는 나라도 못 한다고, 할 만큼은 했다고 생각했지만, 만덕은 죽어가던 아이의 모습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 눈 뜨고 볼 수 없는 모습들, 그건 만덕의 모습이기도 했다. 죽어가는 목숨을 놓고 더 이상 망설일 일이 아니었다. 만덕은 궤를 열었다. 그리고 평생 모아온 돈을 모두 꺼냈다. 들메를 뭍으로 보내 곡식을 들여올 생각이었다. 서둘러야 했다.

 

배는 열흘 만에 천금 같은 곡식 오백 석을 싣고 돌아왔다. 만덕은 그중 450석을 관아로 보냈다. 전 현감 고한록을 비롯한 지역 유지들이 각각 삼백 석, 일백 석 등을 내놓아 위급한 사정을 넘기고 있을 때, 만덕이 보낸 450석은 천금보다 귀한 도움이었다.

 

이 곡식은 그저 여유 있는 자가 베푼 관용이 아닌, 자신이 평생 자냥해(절약해) 모은 전 재산을 들인 선행이었다. 그녀는 여자여서 벼슬을 받기도 어려웠다. 가족이 있어 대신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사람 목숨이 가장 중하다는 생각으로, 사심 없이 재산을 희사한 것이다.

 

구호가 끝난 후뒤 새로 부임한 목사 유사모는 만덕이 전 재산을 내어 죽어가는 사람들을 살린 것을 알고 크게 감동했다. 만덕 외 곡식을 내놓은 전ㆍ현직 관리들은 벼슬을 받거나 땅을 받았지만, 만덕에게는 보답이 주어진 것이 없었다. 그는 이 사실을 자세히 써서 조정에 알렸다.

 

이는 임금마저 감동하게 했다. 정조는 만덕의 소원을 들어주었다. 만덕이 나이 쉰여덟, 좌의정 채제공을 따라 궁에 들어간 그녀는 마침내 정조를 알현한다. 그리고 한평생 꿈이었던 금강산 유람을 하기 전까지 서울에 머무는 동안, 장안에 만덕의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

 

상인들은 물론, 벼슬이 높은 관리나 선비도 만덕을 칭송했다. 그 가운데는 병조판서 이가환처럼 찬시를 지어주는 사람도 있었다. 채제공은 특별히 종이 두어 장 분량의 ‘만덕전’을 지어 만덕에게 선물했다. 이 만덕전은 그의 문집인 《번암집》에 실려 그녀의 발자취를 보여주는 소중한 사료가 되었다.

 

금강산 유람까지 마친 만덕은 더는 바랄 것이 없었다. 제주 사람들은 모두 그녀의 덕을 칭송하며, ‘만덕 할머니’로 사랑하고 존경했다. 덕이 가득 차게 살라는 뜻의 이름, 만덕(萬德)이 실현된 것이다.

 

(p.147)

순조 12년(1812년) 10월 22일, 만덕은 일흔네 해 동안 살았던 이 세상을 떠났다. 사람들은 만덕을 성안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가으니마루에 안장했다. 동풍이 세차게 불기 시작한 늦은 가을이었다. 사람들은 큰 별이 진 듯 슬퍼했고, 오래도록 만덕을 잊지 못했다.

그 뒤 헌종 6년(1840년), 제주로 유배 온 추사 김정희는 만덕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만덕의 양손 김종주가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무판에 글을 새기어 보냈다. 거기에는 이렇게 써 있었다.

은광연세(恩光衍世)

은혜의 빛이 온 세상에 번진다.

 

이렇듯 제주를 뒤덮은 은혜의 빛은 바다를 건넜고, 계속해서 사람들을 매료시켰다. 죽어가는 사람을 구하기 위해 그녀가 냈던 용기, 그것은 그대로 빛이 되어 남았다.

 

덕을 쌓는 길은 여러 가지가 있다. 그 가운데서도 사람을 살린 은혜는 실로 천년을 간다. 새해에는 어떤 방식으로든,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해 보면 어떨까. 따뜻한 말 한마디, 좋은 낯빛도 사람을 살린다. 새해에는 모두, 자신만의 덕으로 세상을 물들여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