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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나들이

[화보] 임진왜란 의병장 조헌을 기리는 옥천 이지당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충북 옥천군 군북면 이백6길에 있는 보물 2107호로 지정된 건물 이지당(二止堂)은 조선 중기의 성리학자인 중봉 조헌(1544∼1592)이 제자들을 가르치던 서당이다. 조헌은 임진왜란 당시 옥천에서 의병을 일으켜 청주성 탈환에 성공하여 육지에서 첫 승리를 이룩한 의병장으로 우뚝 선 인물이다.  이지당(二止堂)은 처음에는 각신마을 앞에 있어서 각신서당이라고 하였다.

 

그 뒤 우암 송시열(1607∼1689)이 이 고장의 영재를 모아 교육하여 많은 인재를 배출하였다. 송시열은 “산이 높으면 우러러 보지 않을 수 없고, 큰 행실은 그칠 수 없다(高山仰止 景行行止)”라는 문구의 끝자인 지(止)를 따서 ‘이지당’이라 서당의 이름을 고치고 현판을 써서 걸었다. 지금 있는 건물은 세월이 흘러 퇴락한 것을 광무 5년(1901)에 옥천의 금씨·이씨·조씨·안씨 네 문중에서 다시 지은 것이다.

 

이 집은 뒤로는 낮은 구릉이 뒤를 받쳐주고 있으며, 건물은 바위를 펑퍼짐하게  다듬은 곳에 세운 것이 특이하다. 건물 앞으로는 금강상류인 서화천이 유유히 흐르고 있으며, 서화천 건너편에는 기름진 논밭이 있어, 배산임수로 전형적인 풍수의 명당터에 지어진 서당이다.  


이지당 본채는 정면 7칸 측면 1칸인데 본채의 좌우로는 날개처럼 달아낸 익랑이 있고, 건물의 평면은 'ㄷ' 자 모양이다. 좌우 익랑은 2층에 누각을 설치한 것으로 누각에 올라앉아 서화천을 굽어보며 심신을 달래기에 안성맞춤이라는 생각이 든다. 본채는 강당건물로,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이다. 가운데 3칸은 대청이고 양쪽 2칸은 거실이다.

 

누각은 앞면 1칸·옆면 1칸 규모의 팔작지붕집으로, 높은 단 위에 누마루를 두고 주변에 난간을 둘렀다. 대청에는 조헌이 직접 쓴 ‘각신서당(覺新書堂)’의 현판을 비롯하여 「이지당기」, 「이지당강학조약」 등이 남아있다. 서당이 문을 닫은 지 오래이고 이지당에서 글공부에 열심이던 이들도 모두 세상을 떠난 지금, 서화천을 흐르는 물줄기 만이 세월의 더깨를 이겨낸 이곳의 역사를 기억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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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성 기자

최우성 (건축사.문화재수리기술자. 한겨레건축사사무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