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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돌아갈 수 있는 길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가 시를 통해 우리에게 하고 싶은 말
[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131]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집사람이 당혹해하며 "그게 떨어져 나가 아무것도 없네요"라고 한다.

며칠 전 눈이 많이 왔을 때 해를 넘긴 기념으로 절에 갔다가 거기서 받은 작은 진언 쪽지를 다른 책자 사이에 끼고 산길을 돌아서 왔는데 집에 와서 보니 그 가운데 하나가 어느새 빠져나가 없어졌다. 집사람이 은근히 힐난하는 눈초리다. 그 종이라는 게 스프링 사이에서는 빠질 수 있으니 잘 들고 가라고 일껏 당부했건만 그걸 놓쳤냐는 것이겠지. 그래서 그다음 날 어제 온 산길을 다시 돌아가 보니 그게 산길 옆에 그냥 떨어져 있기에 바로 주워서 돌아왔다. 없었으면 절에까지 다시 가서 받아와야 할 판이었다.

 

 

그래도 이건 천만다행이다. 다시 돌아가서 주워올 수가 있었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우리네 사는 것은 그게 안 될 때가 많다. 지나온 길에 뭔가 소중한 것을 빠트리고 왔어도, 그것을 다시 돌아가서 챙길 수가 없기 때문이리라.​

 

우리가 아마도 고등학교 국어시간에 배웠을 것 같은데, '가지 않은 길'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된 미국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1874~1963)의 시 'The road not taken'는 우리에게 꽤 사랑받는 시이다. 숲속에 두 갈래 길이 있어 어느 쪽을 가야 할까 망설이다가 결국 사람들이 덜 다닌 길을 택해서 왔는데 가지 않은 길에 어떤 것들이 있었는지 궁금하고 일종의 아쉬움도 있다는 그런 시로 기억된다. 프로스트가 말한 길도 한 번 지나면 다시 가 볼 수 없는 길이기에. 미처 가 보지 못한 다른 길이 궁금한 것이고, 자기가 걸어온 길이 제대로 온 것인지 회의도 해보게 되는 것이라 하겠다.

 

로버트 프로스트란 시인은 내가 좋아한다. 고등학교 교과서에 시가 나와서만이 아니라 나중에 대학에서 고명하신 피천득 선생님의 영시 강독 시간에 피 교수님이 프로스트의 다른 대표적인 시 '자작나무(Birches)'를 읽게 해주신 덕택이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언젠가 이 시를 우리말로 번역된 것으로 읽다가 뜻이 좀 이상하다고 느낀 곳이 있다. 외국어로 된 시는 번역자에 따라 다 조금씩 표현이 다를 수밖에 없는데 이 '자작나무'란 시의 기존 번역에서 내가 좀 이상하게 느낀 것은 바로 맨 처음에

 

꼿꼿하고 검푸른 나무줄기 사이로 자작나무가

좌우로 휘어져 있는 걸 보면

나는 어떤 아이가 그걸 흔들고 있었다고 생각하고 싶어진다.​

 

라는 부분이다.

 

 

나무가 좌우로 휘어져 있는 걸 보면 어떤 아이가 그걸 흔들고 있다고 생각하고 싶어진다는 것이 무슨 말인가? 그래서 원문을 찾아보니​

 

When I see birches bend to left and right

Across the lines of straighter darker trees,

I like to think some boy's been swinging them.​

 

이다. 여기까지 보면 마지막 줄에 "아이들이 그것을 swinging 한다고 생각하고 싶다"라는 뜻이기에 흔든다고 한 기존 해석이 큰 문제는 없는 것 같은데 그다음 시구를 보면​

 

But swinging doesn't bend them down to stay.

Ice-storms do that.​

 

라고 되어 있어 나무가 휘어져 있게 한 것이 swinging이 아니라 사실은 얼음덩어리라고 말하고 있다. 말하자면 자작나무 가지들이 굽어있는데 그게 swing 때문에 그리된 것이 아니라 얼음덩어리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때 swing 이란 단어의 뜻은 '흔들다'라기 보다는 '그네를 타다'라는 뜻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난 것이다. 이 시를 안 읽은 분들이 많을 테니까 다소 동떨어진 이야기가 될지 모르지만 복잡한 이야기를 줄여서 말하면 자작나무 가지들이 휘어버린 것은 아이들이 흔들어서가 아니라 아이들이 나뭇가지를 타고 올라가서 그 끝에서 매달려 나뭇가지들이 그네줄처럼 휘어지게 되어서 생긴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그게 나뭇가지에 눈이 와서 엉겨 붙어 그 무게로 가지들이 점점 휘어지게 되었다는 뜻으로 보는 것이 옳은 것 같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이 시의 뒷부분에 나뭇가지들이 다시 돌아온다는 묘사가 있다. 그것은 아이들이 자작나무 끝에 올라가면 가지들이 한쪽으로 휘어지게 되어 있어 그것이 땅에 닿기 전에 아이들이 나뭇가지에서 뛰어내리면 그 가지가 원위치로 다시 올라가는 상황을 묘사하면서 ‘우리 인생도 그렇게 다시 돌아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 것인가...’라고 끝을 맺기 때문이다. 내 말은 swing이라는 영어단어를 그냥 흔든다고만 해석을 하면 뜻이 안 통하고, 이 경우에는 '그네를 타다'라는 뜻으로 풀어야 한다는 것인데 그렇게 해석한 것을 볼 수가 없더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영시 번역을 잘했니 못 했니 하는 것은 이 시에서 말하는 대로, "우리의 인생이 다시 돌아올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냐"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다. 앞에서 뭘 떨어트리고 왔지만 되돌아가서 다시 주워올 수 있어서 다행이듯이 우리네 삶도 되돌아가서 다시 걸어올 수 있으면 얼마나 멋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우리네 삶이라는 게 그렇게 다시 돌아와 다른 삶을 살 수 없다는 것이 한계이기도 하지만 그것 때문에 우리가 매일의 삶이 소중하고 또 조심스럽고 최선을 다해야 하는 이유일 것이고, 그것은 한계이면서도 동시에 축복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 만일에 우리가 지나온 길을 얼마든지 다시 가서 다른 길로 걸어올 수 있다면 우리는 매일 매일의 이 삶을 열심히 소중하게 살지 않을 것이다. 대충대충 살다가 실수를 하면 툭툭 털고 아무일 없었던 척 할 수 있겠지만 우리의 삶에 놓여있는 시간은 일직선으로 계속 흘러가는 것이고 그것이 빙 돌아서 다시 오지 않으니 그때는 시간이 없다 그러니 다른 삶을 택할 수가 없고 그렇기에 우리들의 삶은 매 순간, 매시간이 소중한 것이다.

 

 

 

지나간 길을 다시 걸어가 볼 수 없고 지나간 시간을 다시 불러올 수는 없으니 우리의 선택은 지나온 길, 지나간 시간에 대해 자주 되돌아보고 혹 잘못한 것이 없는가를 반성하는 것이고, 그것이 아마도 우리네 삶을 되돌리는 가장 좋은, 아니 유일한 방법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그 반성을 10년 단위로 할 수도 있지만, 연말연시처럼 일 년 단위로 하는 것이 보통이고, 필요하다면 그보다도 더 자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그 반성이란 것은 결국에는 내가 나만을 위하다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준 것은 아닌지,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이나 기회가 있었는데도 그것을 외면한 것은 아닌지, 그리고 우리 주위를 포함해서 다 같이 더 좋은 길로 갈 방법이 있었는데도 지나쳤다면 그것을 반성하고 그 답을 찾아내고, 그것으로써 우리 앞으로 제대로 된 길을 걸어가겠다는 결심을 하는 것이리라. 나만을 위해 이웃을 속이고 사기 치고 빼앗는 것을 하지 않고, 나와 우리 모두에게 다 유익한 일을 찾아 나가는 것, 그것이 이 되돌아갈 수 없는 우리의 삶의 길을 제대로 가는 길이라는 생각이 이 연초에 드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로버트 프로스트라는 미국의 시인이 '가지 않은 길' 과 '자작나무'라는 그의 대표되는 시를 통해 우리에게 하고 싶은 말일 것이다.

 

 

 이동식                                     

 

 전 KBS 해설위원실장

 현 우리문화신문 편집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