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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대 일본최고 작가 '아리시마 다케오 단편집'

류리수 작가 번역, 지식을 만드는 지식사 펴내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아리시마 다케오(有島武郞, 1878∼1923)라고 하면 1910년대 일본문학계를 이끌었던 소설가로 그는 2000년도에 아사히신문사가 뽑은 ‘1천 년(서기 1000년~1999년)간 최고의 문인’으로 뽑히기도 한 인물이다. 아리시마 다케오는 한국 근대문학 형성기의 염상섭과 김동인이 일본 유학당시 적지 않은 영향을 준 작가로 그의 대표적인 단편집이라 할 수 있는 <사랑을 선언하다>, <태어나려는 고뇌>, <카인의 후예>가 지난 6월, 지식을 만드는 지식사에서 《아리시마 다케오 단편집(有島武郞 短篇集》으로 출간되었다.

 

이를 번역한 류리수 작가는 한국외대에서 <아리시마 다케오와 염상섭 문학의 ‘근대적 자아’ 비교 연구>(한국외국어대학교 대학원, 2004)로 박사학위를 받은 아리시마 다케오 전문가다. 류리수 작가의 이번 책은 2019년 3월, 일본어판 《백범일지(白凡逸志)》(류의석 번역, 도서출판 하우)을 출판한 지 3년 만에 나온 역작이다.

 

 

사실, 일본어 소설을 한국어로 번역하는 작업은 그리 간단치 않다. 그건 영어나 다른 외국어도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일본어가 어려운 것은, 문장이 간단명료하지 않을뿐더러 주인공을 둘러싼 등장인물들의 심리를 다루는 것일수록 난해하고 복잡하기 일쑤여서 그러하다. 기자 역시 일본어를 전공한 지 40여 년에 이르지만 소설 번역은커녕, 원서 그대로를 읽는 일조차 생소하고 어렵다.

 

“아리시마 다케오의 <사랑을 선언하다>, <태어나려는 고뇌>, <카인의 후예> 세 작품을 번역하여 책으로 내려고 생각한 것은 오래된 일입니다. 그러나 여러 일에 밀려 세월이 많이 흐른 지금에서야 책으로 내놓게 되었습니다. 아리시마 다케오의 작품이 한국 독자에게 잘 전달될 수 있도록 자문해 주신 오쿠다 고지 선생님께 감사드리며 숙원을 풀어서 홀가분합니다. 번역에 힘은 들었지만, 일상을 살아가는 저에게 진실, 사랑, 예술의 아름다운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충만한 시간을 갖게 해준 작품이었습니다.”

 

류리수 작가는 기자에게 책을 건네며 이렇게 말했다. 그녀가 말하는 오랜 세월이란 아리시마 다케오로 박사학위를 받은 2004년 이후니까 적어도 20년은 족히 되었을 것이다. 20년 동안 한 줄 한 줄씩 행간을 읽어 나가며 하나의 낱말에도 수없이 고민했을 작가의 노고에 고개가 수그러든다.


《아리시마 다케오 단편집(有島武郞 短篇集》에는 세 개의 작품이 실려 있다.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되는 단편 <사랑을 선언하다(원제(선언)>을 비롯하여 <태어나려는 고뇌>, <카인의 후예> 는 아리시마 다케오 전공자로서  류리수 작가 특유의 언어적 감각을 되살려 번역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친한 친구 사이인 두 청년 A와 B가 한 명의 여성인 Y를 놓고 벌이는 ‘사랑의 쟁탈전’ 내용이 주를 이룬 <사랑을 선언하다(원제(선언)>는 요즘의 시각으로 보면 삼각관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하지만 의리와 인정을 추구하던 에도시대의 가치관을 지닌 할아버지대(代)부터 내려오는 정서와 정결한 심신을 요구하는 교회 신자라는 틀 속에서 폐병으로 죽음을 목전에 둔 폐병 환자 둘이 성욕을 인정하며 약혼자를 버리고 친구를 배신한다는 것은 육체적인 목숨과 사회적인 파멸을 온몸으로 감내해야 하는 결코 쉽지 않은 선택이다.

 

 

아리시마 다케오는 이 작품을 통해 본능을 감추고 사회적인 체면을 유지할 것인가 아니면 ‘내면의 진실에 따라 본능적으로 살아갈 것인가’ 라는 주제 앞에 후자의 손을 들어 준다. 그가 말한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살아갈 것’이란 평생 그를 지배한 이념이었으며 그러한 점은 그의 죽음에서도 엿볼 수 있다. 유부녀인 연인 하타노 아키코와의 동반 자살이 그것이다.

 

<태어나려는 고뇌>는 실제 화가인 기다 긴지로를 모델로 한 소설로 그림에 뛰어난 재능을 가졌지만 생계를 위해 가족과 함께 어부로서의 생활을 이어갈 수밖에 없는 고뇌에 찬 예술가의 삶을 다룬 작품이다. <카인의 후예>에서도 주인공 닌에몬은 아리시마 다케오가 지향한 ‘본능에 충실한 삶’을 온전히 담아내고 있다. 홋카이도를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지주와 소작인의 삶을 그린 작품으로 몸은 지주의 땅을 부쳐 먹지만 영혼만은 그 어느 것에도 구애받지 않는 자유의 몸으로 그리고 있다.

 

사실 아리시마 다케오는 유복한 집안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영어를 배웠으며, 외국인이 운영하는 미션스쿨에서 초등학교 과정을 마쳤다. 어린 시절부터 미국인 가정에서 자라며 영어를 배웠던 아리시마 다케오는 10살 때 당시 귀족 명문 자녀들만 다니는 가쿠슈인(學習院)에 입학하여 19살에 졸업한다. 그런 그가 <카인의 후예> 같은 작품을 쓸 수 있었던 배경에는 19세기 말 일본에서 근대사상의 중심지였던 삿포로농학교(札幌農學校, 현 홋카이도 대학)에 진학하게 되면서부터다. 그는 이곳에서 소작인으로 근근이 살아가는 하층계급의 삶에 눈을 뜨게 된다.

 

하층민에게서 ‘본능적 삶’을 발견한 아리시마의 애정과 관심은 이후 <쾅쾅벌레(かんかん虫)>(1910)를 시작으로 <카인의 후예>(1917), <태어나려는 고뇌>(1918)로 이어진다. 이러한 작품들은 단순히 머리로만 그려낸 것이 아니라 아버지로부터 상속받은 대농장의 토지를 소작농들에게 무상으로 나눠주는 실천에서 드러나며 그것은 곧 아리시마 다케오의 ‘내면의 소리대로 실천하는 삶’의 철학이 바탕을 이룬 것이다.

 

《아리시마 다케오 단편집(有島武郞 短篇集》을 낸 류리수 작가는 한국외국어대학교 일본연구소의 연구원으로 활약하고 있으며 지난 20여 년 동안 한국외대에서 일본 문학을 강의했다. 그간 신인논문상(한국일어일문학회, 2004), 신인번역가상(새한국문학회, 2005)을 받았고, 2005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한국 문예계간지 《문학과 현실》에 이어 《착각의 시학》에 꾸준히 일본 문학을 번역하여 소개하고 있다. 이 밖에 번역서로 《어느 멋진 하루》(원작 《신(神樣)》, 가와카미 히로미(川上広美), 2009), <한 송이 포도>, <클라라의 출가>(《일본 명단편선》, 아리시마 다케오, 지식을만드는지식, 2018)이 있다.

 

한편, 류리수 작가는 김구 선생이 쓴 《백범일지》를 아버지(류의석 선생)가 일본어로 번역한 유고작을 보완, 수정하여 일본어판 《白凡逸志》(2019)을 출판하여 일본내 조선인학교에 기증한 바 있다.

 

《아리시마 다케오 단편집(有島武郞 短篇集》 저자 아리시마 다케오, 옮긴이 류리수, 지식을 만드는 지식사 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