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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지원의 우리문화책방

마음을 주어야 옛 그림이 보인다

《속속들이 옛 그림 이야기》, 손철주, 자음과모음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옛 그림.’

어쩐지 근엄하기도 하고, 좀 어렵게 느껴지기도 하고, 뭔가 공부해야 할 것 같은 그런 느낌의 ‘옛 그림’은 한동안 내가 선뜻 다가가기 힘든 대상이었다. 이런저런 그림을 자주 접하면서도, 그리고 심지어 우리나라 ‘옛 그림’을 심심찮게 보면서도, 묘하게 낯설고 어려운 느낌을 지우지 못했다.

 

이렇게 막연하고 조금은 부담스러웠던 ‘옛 그림’은, 이 책을 계기로 계속 친해지고 싶은 친구가 되었다. 처음에는 진중한 느낌 때문에 다가가기가 망설여져도 막상 대화해보면 잘 통하는 친구처럼, 옛 그림에 담긴 오묘한 맛과 신묘한 뜻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됐다.

 

이 책, 《속속들이 옛 그림 이야기》는 뒷면에 있는 소개 문구 그대로, ‘다정한 입담으로 청중을 사로잡은 미술평론가 손철주의 강연집’이다. 그가 강의했던 내용이 네 장으로 정리되어 네 번의 특강을 듣는 기분이다. 지은이는 ‘이야기에 담긴 연희성은 역시 말로 해야 흥이 돋는다. 글로 단장하려 하니 제스처만 남고 교감이 날아간 느낌이다. 귀에 남을 이야기가 얼마나 될지 걱정스럽다.’라며 겸양을 보이지만, 귀에 착착 감기는 강의 덕분에 책장을 덮을 때까지 몰입할 수 있다.

 

 

책의 1장에서는 ‘누워서 구경하니 더욱 신기하여라’라는 제목으로 누워서 감상하는 옛 그림의 멋을 전해주고, 2장 ‘봄날의 상사는 말려도 핀다’에서는 조선의 에로티시즘을 담은 신윤복의 옛 그림을 집중적으로 소개한다. 3장 ‘꽃이 속삭이고 동물이 노래한다’에서는 꽃과 동물을 그린 옛 그림의 매력을 선보이고, 4장 ‘선비는 숨어도 속세는 즐겁다’에서는 선비의 이상과 풍류를 알려준다. 그 가운데 특별히 매력적인 그림 세 점을 골랐다.

 

# 이인상 <와운(渦雲)>

소용돌이치는 먹장구름, 그 힘찬 에너지가 보는 이를 전율시킨다. 이인상이 그린 <와운(渦雲>은 물결치는 파도를 그린 듯, 거친 기세가 약동한다. 그래서 제목도 ‘소용돌이 와(渦)’에 ‘구름 운(雲)’을 써서 ‘와운’이라 이름한 이 그림은 여느 현대미술 못지않은 세련되고도 거친 미감이 으뜸이다.

 

지은이는 이 작품을 가리켜 미국의 유명한 추상표현화가 ‘잭슨 폴록’의 그림을 떠올리게 한다며, 1960년대 이후 전 세계를 휩쓸었던 추상표현주의에 못지않은 기법이 18세기 조선화가의 그림에서도 발견되는 것을 놀라워했다.

 

 

그림 전체를 휩싼 소용돌이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아마 그림을 그린 능호관 이인상의 울분과 한이 아니었을까. 그는 ‘완산 이씨’ 가문의 한 사람으로, 대제학을 3대째 배출한 조선 최고의 명문가에 태어났지만, 증조부가 서출이었던 까닭에 음죽 현감이라는 종6품 벼슬에 그쳤다.

 

조선에서 서출로 태어난 자가 겪어야 했던 설움, 울분, 한… 그것은 그의 가슴에 응어리져 남았을 것이다. 게다가 아들 셋, 딸 하나가 모두 병약했고 사랑하는 조강지처도 일찍 세상을 떠났다. 그래서일까. 그는 자기 인생의 소용돌이를 화폭에 토해놓았다. 소용돌이치는 구름과 함께 한도 날려 보내고 싶었을 것이다. <와운>에 들어있는 글의 내용도 의미심장하다.

 

(p.37)

산중 무더위 속에 비를 뚫고 그대를 처음 찾아갔을 때, 손에 들고 간 종이와 먹이 젖지 않을까 걱정을 했지. 시를 한 수 쓰려고 했는데, 술 한잔 마시고 글을 쓰다 보니, 이처럼 구름 뭉치가 되어버렸네. 정녕 웃음거리에 지나지 않는구려.

 

태연한 척했지만, 사실 괜찮지 않았던 거다. 시를 한 수 쓰려고 점잖게 시작한 붓은 점점 거칠어졌을 거다. 그리고 한참 후, 정신을 차리고 보니 자신의 마음이 비어져 나왔음을 깨달은 화가는 헛웃음을 지으며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심경을 그대로 글로 남긴 것이 아닐까.

 

# 김홍도 <표피도(豹皮圖)>

평양의 조선미술박물관에 소장된 김홍도의 <표피도>는 북한에서도 국보로 지정된 그림이다. 이 그림을 크게 확대해 보면 표범의 잔털까지 보일 정도다. 김홍도는 수만 번의 붓질을 해가며 사이사이에 있는 잔털을 다 그려냈다.

 

 

그럼 이런 표피도를 왜 그렸을까. 지은이는 주역에 나오는 ‘군자표변(君子豹變)’에서 그 의미를 찾는다. 군자는 표범이 털갈이하듯, 스스로 끊임없이 변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것이 바로 개혁! 자신을 끊임없이 쇄신해 새로운 사람이 되어야, 진정 군자로 오래 남을 수 있다.

 

(p.85)

그러니까 단원의 이 그림은 아마도 사대부 집안에서 자기를 개혁하기 위해 목표를 정한 벼슬아치가 이런 그림을 부탁해서 걸어 놓고 자기 교훈으로 삼지 않았는가, 이런 생각이 듭니다.

 

문자 그대로 ‘표피를 새로이 하다’라는 뜻의 혁신(革新)은 바로 이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매일매일 새롭게 자신을 바꿔 나가는 자기 혁신, 그것은 선비의 엄정한 자기관리 방식이자 군자의 도리였다.

 

# 강세황 <자화상>

강세황은 18세기 당시 문화예술에 대한 높은 안목과 식견으로 이름났던 선비다. 단원 김홍도 또한 표암 강세황에게 어릴 때부터 그림을 배웠을 정도다. 그는 학식과 경륜이 풍부했음에도 벼슬길에 큰 뜻을 두지 않아 예순이 넘어서야 오늘날의 서울시장 격인 한성부 판윤, 병조참판 등을 지냈다. 강세황의 자화상에서는 이런 그의 인생길이 잘 나타난다.

 

 

(p.109-110)

여러분, 눈으로 얼른 보시기에 뭔가 좀 낯선 요소가 발견되지 않나요. 그게 무엇인지 아시겠습니까? 패션에 문제가 있습니다. 바로 모자와 옷의 언밸런스입니다. 저 모자는 아시겠지만 ‘오사모’라고 합니다. 벼슬을 한 사람들이나 쓸 수 있는 관모입니다. 그러면 오사모를 쓴 사람은 관복을 입어야 하잖아요? 이분은 어떤가요. 야인의 복장을 하고 있어요. 강세황의 <자화상>은 무사로 따지자면 머리에는 투구를 쓰고 아래에는 베잠방이를 걸친 꼴하고 똑같은 겁니다.

 

그럼 그는 왜 이런 ‘반관반민’ 같은 자화상을 그렸을까? 그는 그림과 함께 쓴 글에서 ‘마음은 산림에 있는데, 이름은 조정에 올랐다’라고 했다. 조정에 출사해 나라의 녹을 먹으면서도, 마음은 정작 초야에 묻히고 싶었던 거다.

 

옛 선비 가운데는 강세황처럼 ‘어쩌다 출사’를 했어도 내심은 은거를 원하는 인물이 많았다. 모두가 원하는 입신양명의 꿈, 그러나 너무나 위험한 권력의 본질을 꿰뚫고 있었기 때문일까. 이렇게 관모를 쓰면서도 한편으로는 편안한 옷을 입고 있다는 건, 언젠가 내려놓아야 할 권력과 그때 돌아가야 할 ‘자연인 강세황’을 준비하는 마음을 드러낸 것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옛사람들은 그림을 통해 자신을 가다듬고, 속마음을 표현하고, 한을 풀어놓았다. 화폭이 주는 시각적인 충격은 글을 능가할 때가 많다. 한눈에 볼 수 있는 그림은 자신의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도구다.

 

지은이는 옛 그림을 잘 이해하려면 미술사 강의를 듣고 책을 사서 보는 것은 기본이요, 무엇보다 화가의 마음에 내 마음을 얹을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마음이 실리지 않으면 봐도 보이는 게 없고 들어도 들리는 게 없으며 먹어도 그 맛을 모르기 떄문’이라며, 마음을 그림 위에 얹으라 당부한다.

 

각 장이 금방 끝나는 것이 아쉽지만, 지은이가 안내하는 대로 그림에 마음을 뺏겨보자. 내 마음을 먼저 주면 그림도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아는 만큼 보이고, 마음을 주는 만큼 알아볼 수 있다. 그림이 건네는 옛사람들의 회한과 꿈, 다짐을 하나하나 마주하다 보면, 어느새 우리 그림이 다정한 벗이 되어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