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조선일보는 2022년 10월 18일에 “독일도 탈원전에서 유턴... 3개 원전 전격 가동 연장”이라는 제목으로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10월 17일(현지 시각) “현재 가동 중인 엠스란트와 이자르2, 네카베스트하임2 등 원전 3기를 모두 내년 4월 15일까지 연장 운영하겠다”고 전격 발표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로 러시아산 천연가스 공급이 끊기면서 올겨울 전력 부족이 예상되자 올해 말까지 폐쇄하기로 했던 3기의 원전을 연장 운영하겠다는 것이다.
내용을 들여다보면 연말까지 폐쇄하기로 했던 원전 3기를 내년 4월 15일까지 연장 운영하겠다는 뜻인데, 제목만 보는 사람은 독일이 탈원전에서 ‘유턴해서’ 친원전 정책으로 돌아섰다는 뜻으로 오해하기 쉽게 표현했다. (절대로 기사 제목만 읽고서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 잘못하면 낚일 수 있다. 특히 조선일보를 조심해야 한다.)
보수 언론에서 ‘독일도 탈원전에서 유턴’이라는 제목을 단 기사를 보도하자 우리나라의 원전 찬성파는 이 기사를 인용하기에 바쁠 것이다. 그런데 독일은 정말 탈원전을 포기한 것일까? 주간 잡지 시사IN에서 기자를 독일로 보내 현지 취재한 보도(시사IN 2022.10.18. 제787호)에
따르면 우리나라 언론이 침소봉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독일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급진적인 탈원전 정책을 펼쳐온 나라다. 2000년 독일은 재생에너지법(EEG)을 통과시켜 탈원전을 시작하였는데, 단 10년 만에 가동 원자로 수를 33개에서 17개로 줄였다. (우리나라에는 24기의 원전이 가동 중이다.) 2011년 일본 후쿠시마에서 원전 사고가 발생하자 원자로 8기의 가동을 곧바로 중단하기도 했다. 당시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탈원전 시간표를 10년 이상 앞당겨 2022년 말까지 독일 내 모든 원전을 폐쇄하기로 파격적인 결정을 내렸다.
독일 원전 정책에 관한 시비의 발단은 2022년 2월에 시작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전쟁이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유럽 국가들로 가는 천연가스 파이프를 잠가버리면서 유럽에 에너지 위기가 닥친 것이다. 독일은 천연가스의 절반 이상을 러시아에 의존했기 때문에 가장 큰 영향을 받았다.
현재 독일은 33기의 원전 가운데 30기를 폐로하고, 3기의 원전만 남겨 놓은 상태이다. 이런 독일이 탈원전을 포기했다는 언론 보도의 근거는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가 “현재 가동 중인 원전 3기를 모두 내년 4월 15일까지 연장 운영하겠다”라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독일은 우리나라처럼 에너지가 부족한 나라이다. 그렇지만 1986년 체르노빌 원전 사고의 피해를 경험한 독일은 시민단체들이 원전 반대 시위를 시작하였다. 시민들의 원전 반대는 독일 녹색당의 정강에 반영되었다. 그 결과 독일 정부는 2000년부터 재생에너지를 늘리고 원전을 줄이는 정책을 추진했다.
2021년 현재 독일의 전력 생산은 원전 11.9% 재생에너지가 41.9%로서 재생에너지의 절대 강국이다. 같은 해 통계를 보면 한국의 전력 생산은 원전 27.4%이고 재생에너지는 7.5%에 불과하다. 독일은 연간 일조시간이 한국의 60~70%에 불과하다. 한국은 위도가 독일보다 낮아 태양에너지 이용이 유리하다. 그런데도 한국의 재생에너지 발전 비율은 OECD국가들 가운데서 최하위를 차지하고 있다.
독일 싱크탱크인 아고라의 선임연구원은 지난 9월에 방한하여 참여한 세미나에서 “일부 원전의 연장 가동은 겨울을 나기 위한 일시적인 일”이라고 말한 바 있다.
독일 정부는 비상시를 대비하여 3기의 원전을 예비전력으로 남겨두겠다는 의도이며 원전 가동을 계속해서 연장하는 것이 아니다. 한국의 일부 언론 보도처럼 이를 탈원전과 재생에너지 정책의 실패로 규정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번 겨울의 에너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내년 4월까지 임시로 원전 3기의 가동을 연장하기로 한 것에 대해 국내 언론이 ‘탈원전 포기’라고 호들갑을 떨었다고 볼 수 있다.
시사IN 기자가 독일 현지에서 만난 정부 부처, 에너지 협동조합,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에너지 위기라는 데에는 공감했지만, 탈원전 기조와 재생에너지 정책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독일 정부의 에너지 정책 목표에도 흔들림이 없다. 오히려 에너지 안보를 위해서 원전 확대가 아니고 재생에너지를 확대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메르켈 총리 시절에 발표한 2030년까지의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 목표치는 65%였는데, 숄츠 총리는 목표치를 80%로 끌어올리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발표했다. 특히 독일 연방 정부는 2032년까지 전체 국토의 2%를 풍력발전 단지로 만들기로 하고 각 주정부에 이를 할당했다. 특히 베를린시는 태양광 도시계획(Solarcity Master Plan)에 따라 2023년 1월 이후 상업용, 주거용 등 모든 신축 건물에 대해 태양광 패널 설치를 의무화하기로 했다. ‘기후 총리’로 불리던 메르켈 시절보다 더 급진적인 정책들을 숄츠 총리가 추진하는 것이다.
필자가 보기에 새 정부의 에너지 정책이 매우 불안하다. 윤석열 대통령은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두고 “5년간 바보 같은 짓을 했다”라고 표현했다. 산업통산자원부가 2022년 8월 30일 발표한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는 2030년까지 원전 비중을 23.9%에서 32.8%로 높이고 재생에너지 비중을 30.2%에서 21.5%로 낮추었다, 독일과는 정반대 방향의 에너지 정책을 발표한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6월 22일 경남 창원에서 원전산업 협력업체와 가진 간담회에 참석하여 동행한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이영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등 정부 관계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금 여기 원전 업체는 전시다. 탈원전이라는 폭탄이 터져 폐허가 된 전쟁터다. 비상한 각오로 일감과 선발주를 과감하게 해 달라. 그러지 않으면 원전 업계 못 살린다. 전시엔 안전을 중시하는 관료적인 사고는 버려야 한다.”
이 발언이 보도되자 대통령실에서는 “선발주 등 과감한 조처를 하라는 취지로 원전 안전을 경시하라는 맥락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장관들에게 “안전을 중시하는 관료적 사고를 버리라“고 주문한 것은 원전 안전에 대한 우려를 키우고 공직 사회에 좋지 않은 신호를 줄 수 있다는 점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원전 전문가들은 “원전 사고가 나면 국가적 방사능 재난으로 이어질 수 있으므로 어떤 경우에도 안전을 포기해서는 안 되는 원전을 두고 해서는 안 될 위험한 말을 했다.”라고 지적했다.
특히 강정민 전 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장은 “만약 고리 원전 사용후 핵연료 저장조에서 불이 나면 우리나라의 절반 이상이 피난구역이 될 수 있다는 분석 결과도 있는데, 대통령이 원전의 안전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 같다”라고 우려했다. 그는 이어서 “대통령의 발언은 원자력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조차도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윤석열 정부는 비극적인 이태원 참사를 계기로 현재 운영 중인 24기의 원자력발전소들의 안전에 대해서 더욱 철저하게 점검해 보기를 바란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친원전으로 돌아선 에너지 정책을 독일처럼 탈원전으로 되돌리기를 요구한다면 우이독경(牛耳讀經)이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