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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최잔디, 심사위원 7명 중 5명으로부터 99점

[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609]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해 10월, <임방울 국악제>가 임방울 선생의 고향, 광주에서 열렸는데, 후원단체도 많고 상금액도 많았다는 이야기, 출전 분야는 판소리를 비롯하여 기악, 무용, 가야금 병창, 시조, 퓨전국악 등 다양하였으며 심사위원 선정 방법도 객관적이고, 더더욱 ‘심사참관제 실시’로 신뢰를 받고 있다는 이야기, 제30회 대회의 대통령상은 판소리 명창부의 최잔디 명창이 차지하였는데, 그는 병상 아버지의 쾌차를 비는 마음으로 불렀다는 감동적인 수상 소감을 소개 하였다.

 

대상에 오른 최잔디 명창은 광주 출생으로 중학생 시절, 그러니까 20년 전, 2002년 제6회 대회에서 판소리부문 중등부에 출전하여 금상을 받았다. 그 뒤 3년 후에는 고등부에 출전, 또다시 금상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니까 20년째 <임방울 국악제>와는 자연스럽게 인연을 맺어온 셈이다.

 

그의 각오가 남달랐다는 이야기를 최 명창에게 들어 보기로 한다.

 

“어린 시절부터 참여해 왔던 <임방울 국악제>였지만, 이번 대회에 임하는 저의 각오는 정말 남달랐어요. 과거 대통령상을 받은 선생님들이나 선배 명창들을 보며 나도 성인이 되면 꼭 대통령상을 받을 것이라고 다짐했지요. 대회 당일에는 지나치게 긴장이 되어 걱정을 많이 했지만, 다행히 소리가 그런대로 나와 주어서 대상을 받을 수 있었어요. 이 모든 것이 저를 가르쳐 주신 선생님과 도움을 주신 소리 선배님들, 그리고 연습 때나 발표회 때, 정성껏 북을 쳐주신 선생님, 누구보다도 열렬히 성원해 주시고 응원해 주신 청중 여러분들의 추임새 덕분입니다. 그래서 더더욱 기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소리가 그런대로 나와 주었다는 말이 그의 겸손한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소리가 나와 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평소의 훈련으로 인해 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다. 훈련하고 연습하며 몸 조건을 조절하지 않았는데도 소리가 저절로 나오겠는가!

 

최잔디 양은 어린 시절, 동네 국악학원에서 들려오던 판소리가 인연이 되어 소리의 길을 걷게 되었다고 한다. 어려서부터 소리를 배웠다고 해서 누구나 명창의 반열에 오르는 것은 아니다. 노력도 남달라야 하고, 타고난 재능이나 환경도 매우 중요하다.

 

 

최 양의 친할아버지는 설장구의 최막동 명인이고, 고모인 최연자 명창도 판소리 심청가의 이수자여서 국악 가문이라 볼 수 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자라나며 누구보다 소리를 좋아하게 되었고, 그래서 많은 시간을 소리 연습에 할애해 왔기 때문에 명창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을 것이다.

 

최잔디 양은 어린 시절부터 벌써 판소리 분야에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였다는 소문이다. 소리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인데, 어찌 된 영문인지 국악의 영재로 주목을 받아왔다고 한다. 전국적인 국악경연대회에 참가해서 입상도 여러 차례 하였다고 하는데, 그의 나이 15살 무렵, 당시 한국의 최고 명창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성창순 명창에게 소리를 배우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그러면서 판소리 전공으로 <국립국악고등학교>를 졸업하게 되었고, 이어서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에 입학하여 판소리 전공으로 졸업하였으며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의 이수자 자격도 획득하였다.

 

누구에게나 한 때의 시련이 찾아오듯, 순탄하기만 하던 최잔디의 일상에도 스승의 문제, 앞으로의 진로 문제, 가정이나 가족 문제, 등등을 놓고 고민하며 방황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여기에 더더욱 집안 형편이 어려워지면서 소리에만 전념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을 때, 매우 심각하게 고민이 깊어졌다고 한다. 이러한 고민을 안고 얼마의 기간이 지났을 무렵, 실로 우연한 기회에 판소리만이 마음의 고향이란 점을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고 한다.

 

판소리 말고도 그 어떤 것도 자기 마음을 안정시키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확인하게 된 것이다. 방황의 시간이 끝나면서 다시 판소리를 듣고, 판소리를 불러야 마음이 안정되는 것을 느끼면서 다시 학교로 돌아가 석사 과정을 공부하게 되었고, 더더욱 소리 공부에 전력을 다하게 되었다고 한다.

 

지난 2022년 임방울 국악제에서 그가 부른 소리는 <심청가> 가운데서 ‘심봉사, 눈뜨는 대목’이었다. 이 대목은 심청가의 끝부분으로 심봉사가 드디어 눈을 뜨게 된다는 대목을 재미있게 표현하고 있다. 임방울 국악제 본선 무대에서 그는 경쟁자들을 제치고 관객들의 귀를 사로잡는 소리로 심사위원 7명 가운데 5명으로부터 최고점인 99점을 받아내 대상을 차지하게 되었다.

 

 

이제 정상에 오른 최잔디는 더더욱 소리 공부에 매진해야겠다는 결심을 하면서 무엇보다도 판소리의 완창(完唱)무대를 준비하겠다고 의욕을 내보인다. 완창 무대란 글자 그대로 춘향가나 심청가와 같은 긴소리를 한 무대 위에서 혼자 처음부터 끝까지 부르는 연창 형태를 말한다. 매우 힘든 과정이 아닐 수 없다.

 

심청가 끝부분에 나오는 ‘심봉사 눈 뜨는 대목’은 어떻게 진행되는가? 궁굼증을 풀어드리기 위해 이 대목을 잠시 소개해 보도록 하겠다.

‘아니리’는 가락이 아닌 ‘말로 하는 부분’이고, 아래의 ‘중몰이’는 ‘장단형이나 빠르기 말인데, 중간 정도의 빠르기로 부르는 소리.

 

(아니리) “심 황후 부친을 살펴볼 적, 백수풍신 늙은 형용, 슬픈 근심 가득헌 게, 부친 얼굴이 은은허나, 또한 산호 주렴이 앞을 가려 자세히 보이지 아니허니, ’그 봉사 거주를 묻고 처자가 있나 물어보아라.‘ 심봉사 처자 말을 듣더니 만은 먼눈에서 눈물이 뚝 뚝 뚝 뚝, 떨어지며,”

(중모리) “예, 소맹이 아뢰리다, 예, 아뢰리다, 예, 소맹이 아뢰리다.

소맹이 사옵기는 황주 도화동이 고토옵고, 성명은 심학규요.”(다음 주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