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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지원의 우리문화책방

조선의 선비들은 어떻게 공부했을까

《선비들의 평생 공부법》, 이랑, 김병완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공부(工夫).

이 단어 하나에 무수한 애환이 녹아있다. 공부는 예로부터 한국인에게 숙명 같은 존재였다. 공부에 울고 웃는 한국인, 그 ‘공부 DNA’를 추적해보면 선비의 공부가 있다. 선비에게 공부는 응당 해야 하는 것이었고, 평생 갈고닦아야 하는 거울 같은 것이었다.

 

이 책, 《선비들의 평생 공부법》은 이런 선비들의 공부법을 정리한 책이다. 중요한 내용은 옮겨 쓰며 공부했던 정약용의 초서 공부법, 거울을 닦듯 매일 꾸준히 공부했던 이황의 반복 공부법, 스스로 생각하고 이치를 구하며 사색을 중요시했던 서경덕의 사색 공부법 등 오늘날 적용해도 무리가 없을 많은 공부법이 유형별로 잘 정리되어 있다.

 

 

지은이가 분석한 선비들의 공부법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공부는 사람다운 사람이 되기 위해 누구나 마땅히 해야 하는 것이고, 둘째, 공부는 배움의 기쁨을 누리는 것이지 출세의 수단이 될 수 없으며, 셋째, 공부한 것을 반드시 실천하여 앎과 행함이 어우러지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누구나 배움의 기쁨을 누리고, 또 배운 것을 실천하는 것이 선비의 공부법이라는 것이다. 사실 조선시대에는 워낙 과거제도가 치열했던 만큼 과거 합격을 위해 오늘날 수능을 여러 번 보는 장수생처럼 ‘과거 낭인’도 많았지만, 기본적으로 선비라면 공부를 출세의 수단이 아닌 자신을 완성하는 도구로 삼아야 한다는 인식이 있었다.

 

이 책에 실린 열네 명의 조선 선비들- 다산 정약용, 연암 박지원, 담헌 홍대용, 퇴계 이황, 율곡 이이, 화담 서경덕, 남명 조식, 성호 이익, 백곡 김득신, 청장관 이덕무, 명재 윤증, 서애 류성룡, 우암 송시열, 혜강 최한기 – 는 모두 자신만의 공부법으로 공부에서 일가를 이룬 ‘공신’, 곧 ‘공부의 신’이다.

 

그 가운데 특히 눈여겨볼 것은 타고난 둔재였지만 지독하고 꾸준한 글읽기로 마침내 자신의 운명을 바꾼 백곡 김득신의 이야기다. 어렸을 때 그는 조금 이해가 느린 정도가 아니라 심각하게 우둔하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공부에 소질이 없었다. 그와 비슷한 또래는 스무 살에 과거에 합격하여 이름을 날릴 때 그는 겨우 글이나마 짓게 될 수 있었을 정도로 학습속도가 느렸다.

 

그러나 백곡에게는 누구와도 견줄 수 없는 장점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책을 읽고 또 읽는 끈기였다. 결국 그는 둔재로 태어났지만 59살에 과거에 합격할 수 있었고 당대를 대표하는 시인이 되었다. 수많은 이들이 백곡보다 훨씬 빠르게 출사했지만 역사에 이름을 남기지 못한 반면, 백곡은 우직한 책 읽기로 오늘날에도 뚜렷이 기억되는 선비가 된 것이다.

 

또 한 명 주목할 만한 선비는 혜강 최한기다. 혜강 최한기는 다른 선비들과 견주어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지만, 그는 1,000권에 달하는 방대한 저술을 남긴 조선 으뜸 집필가였다. 그가 다룬 학문 분야도 무척 다양해서 철학, 정치학, 천문학, 행정학, 역사학, 지리학, 수학, 공학 등 거의 전 분야를 망라했다.

 

(P.236)

혜강에게 공부는 ‘평화로운 것’이었다. “모든 사람이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고 분쟁을 해결하며 혼란을 막고 위기에서 구하며 어리석은 사람을 깨우치는 것”이 공부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릇된 학문을 하는 사람들이 남을 이기려고 공부하고 자신의 부족함을 덮고 감추기 위해 공부한다”며 공부의 뜻이 오용되고 있음을 지적했다. 또한 이런 사람들이 “붓끝으로 사람을 죽이기까지 한다”고 애통해하기도 했다.

 

이렇듯 혜강은 수신, 제가, 그리고 치국을 넘어 ‘평천하’를 위한 공부를 했다. 남을 이기고 홀로 영화를 누리기 위한 공부가 아닌, 결국 인류사회에 보탬이 되는 공부를 하고자 했다. 그리고 그는 1,000권에 달하는 책을 집필함으로써 자신의 지식을 후세대에 전하고 평화로운 세상을 만드는 데 일조했다.

 

이러한 공부의 목적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공부가 오로지 출세의 수단이 되고 나 자신의 완성을 위한 공부는 점점 멀어져가는 가운데서도, 혜강 최한기처럼 후속세대를 위한 저술과 집필을 계속하고 백곡 김득신처럼 꾸준히 책을 읽는 이들이 많다.

 

조선의 으뜸 지식인, 선비계층이 어떻게 지식을 경영하고 배움을 실천했는지를 살펴보면 오늘날의 공부에도 적용할 점이 많다. 책의 편집이 조금 거친 점은 아쉽지만, 예나 지금이나 지식인이라면 평생 해야 하는 ‘공부’, 이 끝없는 배움의 길을 선비들은 어떻게 걸어갔는지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