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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미국 역사학계 호평 최병헌의 영문판 《징비록》

18년 동안 영문학 전공하면서 우리 역사와 눈으로 걸러
[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191]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일본 큐슈의 무사들이 1868년에 메이지유신을 성공시키고 국제사회에 문을 연 뒤 먼저 추진한 사업이 북해도를 농업기지로 바꾸는 계획이다. 유신 8년만인 1876년에 삿포로 농학교를 설립해 운영한 것도 그 하나인데 이때 2기생으로 입학해 영어로 진행하는 수업을 열심히 받은 2명의 동급생이 있었으니, 바로 우치무라 간조(內村監三 1961~1930)와 니토베 이나조(新渡戶稻造 1862~1933)다.

 

 

우치무라 간조(內村鑑三)는 5년 만에 이 학교를 졸업한 뒤 3년 뒤 자비를 들여 미국 유학길에 올라 신학공부를 하다가 귀국해 고등학교 영어 선생을 거쳐 1897년에는 한 신문의 영어판 주필이 되어 일하면서 잇달아 영어로 된 글들을 발표한다. 1900년에는 《성서연구》지(誌)를 창간하고 1901년에는 《무교회(無敎會)》라는 잡지를 펴내면서 무교회주의 사상을 전했다.

 

미국에서 돌아온 이후 이미 영어로 자기 생각을 충분히 표현하고도 남을 수준이 된 우치무라는 1894년에 《Japan and The Japanese》(日本及び日本人)란 제목으로 책을 쓰고는 이 책을 1908년에 《Representative Men of Japan》(代表的日本人)으로 이름을 바꾸어 다시 펴낸다. 이 책에는 무사인 사이고 다카모리(西鄕隆盛, 1827~1877), ‘탁월한 농촌경영자’라고 할 우에스기 요잔(上杉鷹山, 1751~1822), ‘농민 성자’로 불리는 니노미야 손토쿠(二宮尊德,1787~1856), 유학자인 나카에 도쥬(中江藤樹,1608~1648), ‘일본 불교의 상징’이라고 할 니치렌(日蓮, 1222~1282) 등 5명의 삶과 생각을 소개하고 있다.

 

그렇지만 국제적으로 잘 알려진 토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같은 사람, 또는 러일전쟁을 승리로 이끈 노기 마레스케(乃木希典,1849~1912) 대장이나 도고 헤이하치로(東鄕平八郞,1848~1934) 같은 동시대의 군인들은 전혀 다루지 않는다.

 

이들 5명은 각 분야에서 뛰어난 생각과 정책으로 성공한 사람들인데, 이런 일본인들이 일본을 대표한다고 하는 그의 책은 미국과 유럽의 정치가와 학계와 언론계 등에 큰 영향을 준 것으로 나타난다. 이 책을 읽은 외국인들은 일본이란 사회가 참 좋은 사람들이 이끄는 사회고, 일본인들이 괜찮은 사람들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하며 실제로 케네디 대통령은 취임한 뒤 일본 기자들과의 회견에서 존경하는 인물로 이 책에 소개된 우에스기 요잔을 거명해 기자들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우치무라의 절친한 친구로서 삿포로 농학교부터 미국 유학생활까지 같이 한 니토베 이나조(新渡戶稻造)는 1900년에 미국에서 《Bushido》(武士道)라는 책을 영어로 펴낸다. 니토베는 동서양의 주요 문헌을 섭렵하며 일본의 무사도가, 사랑이라는 개념은 없지만, 기독교와 흡사하다는 논지로 일본이 적어도 기독교에 준하는 높은 윤리수준을 갖고 있음을 주장한다.

 

여기에다 27살에 도쿄 미술학교 교장이 될 정도로 높은 미술적 감식안을 자랑하는 오카쿠라 덴신(岡倉天心 1862∼1913)이 1906년 미국 보스턴에서 펴낸 《The Book of Tea》(茶の本)이라는 책도 동양을 전혀 알지 못하던 서양인들에게 당신들의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고 일갈하고는, 다도(茶道)라고 하는 지극히 간결한 음차법(飮茶法)을 미(美)를 추구하는 고도의 정신세계로 설명함으로써 미국과 유럽인들을 놀라게 했다. ​

 

1900년대 초는 일본이 한창 경제, 군사적으로 팽창하는 시기인데 이때 일본의 전통문화와 사상을 소개하는 글이 일본인들에 의해 쏟아져 나왔고 그 가운데 앞에서 소개한 3권의 책은 미국과 유럽을 흔드는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킨다. 이 책들은 세계인들의 머리와 가슴에 일본인과 일본문화에 대한 이해와 존경심까지를 줌으로써, 어찌 보면 2차 대전 때 군사적인 도발을 한 것 이상으로 서양인들에게 영향을 준다.

 

그 책을 읽으면 사람들은 “아니 이런 일본인들이 있단 말인가? 그렇다면 일본인들은 툭하면 칼을 꺼내어 사람 목을 치고 배를 가르는 호전적인 집단이 아니고 매우 평화적이고 성실하며 인정 많은, 그러면서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그리고 정신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들이구먼!”이라는 인식을 준 것으로 평가받는다. ​

 

필자는 이런 역사를 보면서 안타까워했다. 어떻게 해서 1900년을 전후해서 일본에서는 자기들의 문화와 인물을 세계에 알리는 중요한 영문서적들이 쏟아져 나올 수 있었는지 궁금했고 또 부러웠다. 그 까닭을 찾아보면 ​

 

첫째는 그들이 모두 가장 고급스러운 영어를 마음껏 구사할 수 있었다는 점일 것이다. 일본이 페리 제독에 의해 강제로 미국에 문을 연 뒤에 메이지 유신이 일어났고 그 이후 일본은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서양의 문화를 받아들이게 되었는데, 불과 30~40년의 세월이 지나면서 당시 도쿄나 멀리 홋카이도에 세워진 학교들이 영어만으로 수업을 진행해서 많은 인재를 길러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자연스럽게 영어를 거의 모국어 수준으로까지 터득하게 된다. 그들은 미국에 가든, 유럽에 가든, 그 영어 실력으로 자연스럽게 그들의 생각을 펼칠 수 있게 된다.

 

둘째는 그 책들은 단순히 일본 이야기만을 해놓은 것이 아니라 동양과 서양이 함께 어우러지고 견주고 설명된다는 점이다. 동양의 고전, 공자나 맹자의 어록만이 아니라 서양 고금의 철학과 역사로부터 적절히 인용되어 서양인들에게도 공감을 주었다는 점이다. 그들은 밀려오는 서양 문물의 파도 속에서도 정신을 잃지 않고 자신의 것을 함께 배우고 지키려 했던 정신상태가 있었다.

 

그들은 서양의 문명에 매몰되지 않고 자신의 역사와 문화를 주목하고 그 장점을 찾아서 이를 세계에 알렸다. 그것을 뒷받침한 것이 뛰어난 영어 실력이었고 그것을 위해 젊은 날을 헌신했다. 그렇지만 우리의 역사와 인물을 외국에 소개하며 큰 반향을 일으킨 책은 사실상 없었기에 그런 생각만 하면 한숨이 나오곤 했다. ​

 

그러다가 지난주 한 언론의 보도로 우리나라에도 그런 영문학자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호남대 교수를 지낸 최병현 한국고전세계화연구소장이 주인공이다. IMF 외환위기가 닥친 1997년에 우리도 400년 전 임진왜란을 실질적으로 이끈 서애 류성룡(1542~1607)이 생각나서 그의 《징비록》 뒤치기(번역)을 시작했다. 5년 만에 번역을 끝내고 2002년 미국 버클리대 동아시아연구소에서 《징비록》 영역본《The Book of Corrections》을 펴냈다.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다고 한다.

 

“임진왜란 관련 한국 역사를 이해할 수 있는 완벽한 텍스트”(루이스 랭커스터 버클리대 교수)를 시작으로 미국 역사학계의 호평이 잇따랐으며. 케네스 스워프 미국 해군사관학교 교수는 임진왜란을 소개하는 책 10권을 꼽으면서 첫 번째로 이 책을 추천했다. 지금도 동양학을 가르치는 미국 주요 대학들이 필수 교재로 사용하고, 아마존 독자 평가에도 별 다섯 개가 붙어 있다.

 

 

‘징비록’의 성공으로 우리 고전의 세계화 가능성을 확인한 그는 이후 본격적인 고전 번역 외길로 들어섰다. 한국 실학을 집대성한 다산 정약용의 《목민심서》(2010)를 10년 각고 끝에 영역해 캘리포니아대에서 펴냈고, 조선왕조실록 가운데 《태조실록》(2014) 영역본을 하버드대에서, 조선후기 실학자 박제가의 《북학의》(2019) 영역본을 하와이대에서 펴냈다. 우리 역사를 본격적으로 알릴 수 있는 영역의 고전을 세계에 올린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번역이 아닌 평전을 영어로 내놓았단다.

 

최근 버클리대 동아시아연구소에서 펴낸 서애 류성룡의 영문 전기 《조선의 재상 류성룡: 전쟁과 기억(Ryu Sŏngnyong, Chancellor of Chosŏn Korea: On the Battlefield and in Memory)》이다. 철저한 자료 조사와 연구를 통해 류성룡의 생애는 물론 16세기 임진왜란을 둘러싼 한ㆍ중ㆍ일 삼국의 갈등과 역사적 배경까지 560쪽 분량에 담았다. 이 책에는 퓰리처상을 탄 전기 작가이자 역사학자 존 미첨은 “류성룡은 정치가이자, 전략가, 학자로서 한국뿐 아니라 아시아 전체 역사에서 중요한 인물”이라며 “저자는 고통스러울 만큼 철저한 연구를 거쳐 우아하게 써 내려갔으며, 심오하게 분석적인 저술로 이 역사적 인물을 되살려냈다”라고 추천사를 썼다. 그만큼 그의 역작이 인정받은 것이다.

 

최병현 소장은 그렇게 해서 고전 번역에 대해서 밭은 갈아놓았다고 보고는 이제는 ‘인물의 세계화’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한국엔 훌륭한 역사적 인물이 많지만, 나라 밖에선 여전히 무명(無名)에 가까운데 그것은 영문으로 된 전기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1900년대 일본인들이 매진했던 바로 그 영역을 최병현 소장이 본격적으로 파고 들어간 것이다. ​

 

필자도 인물 평전을 쓴 것이 있지만 평전은 단순히 있는 역사만을 정리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에 관한 역사서뿐 아니라 문집 등 모든 기록을 섭렵하고 그의 생각을 더듬고 그의 정신을 추려야 한다. 책을 쓰는 데 꼬박 7년이 걸렸다고 언론 인터뷰에서 밝힌 최 소장은 역사적 인물의 전기는 그 인물의 초상화이면서도 시대의 초상화이기 때문에 우리나라뿐 아니라 중국과 일본 상황들도 다 고려하고 반영해야 해서 지극히 고통스러운 작업이었다고 회고한다.​

 

이 책에 대한 평가는 별개로 하고, 나는 이 최병현 소장께서 우리가 영어를 배우는 가장 중요한 까닭을제시하고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그가 이만한 정도로 번역을 해낼 수 있었던 것은 ​하와이대를 나와 컬럼비아대 석사, 뉴욕시립대 박사까지 18년 동안 유학하며 영문학을 전공하면서 영어에 매몰되지 않고 우리의 역사와 눈으로 걸러낼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영어를 잘한다는 것은 국제무대에서 그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이 일차적 목표라고 할 수 있지만, 우리의 것을 그들에게 영어로 잘 알리는 것이 더욱 근본적인 목적이라고 할 수 있다. 바로 그 점에서, 지금까지 우리가 등한시했던 우리 고전과 역사를 제대로 외국에 알리는 일에 매진하고 그것을 우선 이뤄낸 분이 있다는 게 고마운 것이다,

 

 

 

 

최병현 소장은 외국에서 공부할 때 영문으로 된 한국 문학이나 역사책을 찾을 수 없었다고 말한다. 당시 한국에 대한 영문 텍스트는 ‘6·25 전쟁’ ‘한강의 기적’ 같은 책뿐이었기에 외국 학생들은 고사하고 외국의 우리 동포 자녀들도 책을 통해 조상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으니 그들이 자기의 뿌리를 알 수 있는 길이 없다고 한다.

 

지금은 조금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전 세계 700만 나라 밖 교포 자녀들을 생각해도 우리 고전을 영어로 제대로 번역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인식해야 할 것이고, 최병현 소장과 같이 우리의 고전과 역사를 나라 밖에 제대로 알릴 영문서적 펴냄이 필요한 일이지만 현실에서는 전망이 밝지 않다. 지난해 말 필자가 싱가포르의 대형서점에 가서 보니, 한국어나 한국요리, 한국 드라마, 서울관광 책들은 늘어났지만, 한국인을 제대로 알리는 책은 별로 보이지 않았다. ​

 

나는 100년 전 일본에서 일어난 가장 큰 사건은 청일전쟁이나 러일전쟁이 아니고 바로 이 세 권의 책이 출간된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 책은 일본을 바꾸어 놓았고 세계를 바꾸어 놓았다. 그 100여 년 전 일본의 사례는 아직도 우리에게는 큰 거울이 아닐 수 없다. 그런 가운데 최 소장은 우리 영어영문학계와 역사학계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알려주는 《징비록》을 펴낸 것이라 하겠다. 이 소식을 듣고 필자는 기쁜 나머지, 100년 전 일본인들이 일으킨 일본 고전의 영역화, 일본 정신을 영어로 살린 역사를 다시 소환하며 고전 번역만이 아니라 국제언어인 영어로 우리의 생각을 제대로 쓰고 알리는 일의 중요성을 다시금 일깨워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