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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보은 거현리에 '한일문화도서관' 등불 밝혀

최재철 한국외대 전 일본학대학 학장이 직접 꾸린 '한일문화사랑방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오늘 화창한 봄날, 제가 태어나 자란 고향 거현(巨峴, 거리고개) 돌담집에서 마을 주민과 가족 친지, 종친, 거현교회와 지역 유지, 은사, 선후배 동료, 지인 여러분을 모시고 거현산방 도서관(한일문화도서관)을 개관하고 졸저의 출판기념회를 열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돌이켜보면, 선대 계당(최흥림)께서 금적산 아래 선곡(仙谷)에 서당 [계당(溪堂)]을 지어 독서 수양하며 후학을 양성하고, 당대 대학자 남명 조식과 대곡 성운, 보은현감 동주 성제원 등과 교유하며 거현(巨峴)을 일으킨 이래 대략 500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이는 지난 16일(일) 낮 12시, 충북 보은군 수한면 거현리 마을에서 진행된 ‘한일문화도서관’ 개관식에서 관장인 전 한국외대 일본학대학 학장 최재철 교수의 인사말 가운데 한 토막이다. ‘한일문화도서관 개관식을 시골 마을에서?’라고 의아해할 사람들이 있겠지만 그건 편견이다. ‘문화도서관’이 꼭 대도시에 있어야 까닭이 없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이곳에 개관한 도서관은 이름 그대로 한일(韓日) 관련 서적을 완비한 ‘한일문화도서관’이라는 데 그 특색이 있다.

 

 

한국 천년의 고찰(古刹) 법주사가 가까이에 있으면서 달고 맛있는 대추의 명산지 보은 소재의 거현산방 도서관(한일문화도서관)을 만든 사람은 한국외국어대학교 최재철 명예교수(일본언어문화학부)다. 최재철 교수는 한일비교문화와 비교문학의 대가(大家)로 알려진 분으로 2017년 정년 이후 곧바로 한일비교문화연구소를 만들었고, 지난해는 역작인 《일본근현대지식인・문학자의 한국인식(日本近現代知識人・文学者の韓国認識)》(일본 도쿄 勉誠出版, 2022.8.)을 도쿄에서 출판하는 등 왕성한 문필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학자다.

 

 

“거현리는 평범한 시골이지만 제가 나고 자란 고향입니다. 정년 이후 고향집에 드나들면서 독서하고 글을 쓰는 과정에서 평생 곁에 두고 읽고 연구하던 자료들을 이곳에 모아서 작은 도서관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굳히게 되었습니다. 동네 이름이 거현(巨峴)이라 저의 독서공간을 거현산방(巨峴山房)이라 이름 지었고 내친김에 ‘한일문화도서관’이라고 현판을 써서 이번에 유지 여러분을 모시고 현판식을 거행한 것이지요.”

 

최재철 교수는 한일문화도서관을 만들게 된 경위를 그렇게 설명했다. 기자 역시 일본문학을 전공한 사람으로서 늘 ‘일본 관련 문헌이나 연구서’에 갈증을 느끼던 차라 이번 최재철 교수의 한일문화도서관에 거는 기대가 크다. 아무리 좋은 책이라도 자신의 서재에 쌓아두고 ‘혼자만 읽는다’라면 그 값어치는 반감될 것이지만 최 교수는 평생 모은 연구서들을 아무런 조건 없이 거현산방에 찾아오는 이들에게 제공한다고 하니 벌써 일본 근현대 관련 자료에 목말라 하는 이들의 기대가 클 수밖에 없다.

 

 

 

‘한일문화도서관’ 개관 기념일 행사는 거현1리 마을 김문기 이장의 사회로 진행되었으며 최재형 보은군수, 최부림 보은군의회 의장, 박철 전 한국외대 총장을 비롯하여 마을 유지와 전국 곳곳에서 모여든 120여 명의 축하객으로 작은 시골 마을이 잔치 분위기였다.

 

거현산방 주인인 최재철 교수는 이곳을 "수한초등학교 어린이들의 현장체험학습 장소로도 활용하도록 하고, 마을 주민과 이웃이 서로 소통하도록 책과 차를 자유로이 이용할 수 있게 할 생각입니다. 올가을에는 일본 학자들이 거현산방을 방문하여 졸저 《일본근현대지식인・문학자의 한국인식(日本近現代知識人・文学者の韓国認識)》에 대해 토론할 예정입니다. 그들과 허심탄회하게 한일문학 이야기를 나누며 한일관계에 관해서도 대화할 계획입니다. 요즈음 귀농ㆍ귀촌(우리 마을은 70퍼센트 정도)이란 말도 있지만, 저처럼 고향 마을에서 평생 하던 연구 작업을 이어가는 것도 의미 깊을 것입니다. 재직 시절에는 늘 시간에 쫓겼지만, 이제는 충분한 시간을 두고 한일비교문화와 비교문학에 관해 관심있는 국내외 사람들과 소박한 산나물 한 접시와 막걸리를 마시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라는 포부를 밝혔다.

 

거현(巨峴)은 최재철 교수의 호이기도 한데 그의 선대인 계당(溪堂) 최흥림(崔興霖, 1506~1581) 선생은 남명 조식, 대곡 성운과 더불어 당대(16세기) 거유(巨儒) 들과 함께 교류하며 《계당유고(溪堂遺稿)》를 남기고 청빈한 삶을 산 것으로 유명하다.

 

문득 일본 속담, ‘소리를 내지 않아도 사람이 모인다(声なくして人を呼ぶ: 훌륭한 인물은 스스로 찾지 않아도 자연히 주위 사람이 모이는 것을 비유하는 속담)’라는 말이 떠오른다. 최재철 교수의 삶을 잘 대변하는 말 같다. 그 선비에 그 후손, 최재철 교수의 거현산방에 차린 ‘한일문화도서관’이 한일문화와 한일문학을 사랑하는 나라 안팎 사람 모두에게 사랑받는 문화사랑방으로 자리 잡게 되길 바란다. 

 

   【거현산방(한일문화도서관)】 안내

 ◆도서관 개방 일정: 당분간은 매월 10일 정도씩 개방하며, 매월 초 한일문화도서관 블로그(blog.naver.com/gh-clkj) 공지를 통해 개방일을 확인할 수 있다.
 ◆거현산방(한일문화도서관): 충북 보은군 수한면 거현3길(거현 1리)

 ◆전자우편: gh-clkj@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