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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지원의 우리문화책방

혜경궁 홍씨의 눈부신 처세 속 칠십 년 궁중생활

《혜경궁 홍씨, 회한의 궁중생활 칠십 년》, 정병설, 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어머니께서는 젊어서부터 한 번 보거나 들으신 것은 종신토록 잊지 않으셨으니, 궁중의 옛일부터 국가 제도, 다른 집 족보에 이르기까지 기억하지 못한 바가 없으셨다. 내가 혹시 의심스러운 바가 있어서 질문하면 하나하나 지적해 가르치지 않은 적이 없으셨으니, 그 총명과 박식은 내가 감히 따라갈 수 없다.

「혜경궁지문」, 《순조실록》, 1816년 1월 21일 / 20쪽

 

혜경궁 홍씨. 정조의 어머니이자 순조의 할머니인 그녀는 죽은 다음 ‘헌경(獻敬)’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총명하다고 해서 ‘헌’, 늘 조심스러웠다고 해서 ‘경’이라는 글자를 썼다. 칠십 년 가까이 계속된 그녀의 궁중생활은 살얼음판을 걷는 것과 같았다.

 

이런 살얼음판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지혜로워지고, 조심스러워지는 수밖에 없었다. 열 살에 입궁한 혜경궁은 빨리 어른이 되었다. 1744년 가례를 올리고 1762년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기까지 약 18년 동안 이어진 불안한 혼인 생활, 아들 정조가 즉위한 뒤 외척 척결에 따른 친정의 몰락, 그리고 마침내 손자 순조가 즉위하기까지 파란만장한 칠십 년 궁중생활이었다.

 

정병설 작가가 쓴 이 책 《혜경궁 홍씨, 회한의 궁중생활 칠십 년》은 혜경궁 홍씨가 어떤 연유로 이러한 책을 쓰게 되었는지, 그녀가 굽이굽이 풀어헤친 칠십 년의 궁중생활은 어떠했는지 상당히 학술적이면서도 흥미로운 시각으로 분석한다. 연구자의 눈높이와 일반 대중의 눈높이 사이를 맞춘, ‘잘 읽히는’ 교양 학술서다.

 

 

혜경궁은 이 책을 왜 쓰게 되었을까? ‘한가로운 가운데 쓴 기록’이라 하여 ‘한중록’이라 불렀지만, 사실 그녀의 마음은 절박했다. 손자 순조가 열한 살의 나이로 즉위하자, 수렴청정을 시작한 정순왕후가 혜경궁의 친정에 복수의 칼날을 휘둘렀던 것이다. 결국 남동생 홍낙임은 제주도에서 사사되고 말았다.

 

(110쪽)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혜경궁이 취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때가 오기를 기다리고 준비하는 것이었다. 관례로 보면 정순왕후에게 주어진 권력은 삼 년 반 정도의 한시적인 것이었다. 그 기간 크나큰 정국 변화가 없으면 순조가 집권하게 되고 순조의 마음을 사로잡는 사람이 권력을 얻게 된다. …(줄임)… 그러니 삼 년 남짓한 시간 동안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순조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이 필요했다. 혜경궁은 장문의 회고록을 준비했다. 단순한 회고록이 아니라 순조의 마음을 잡는 회고록이어야 했다. 마침 순조도 선조들의 일을 궁금히 여겼다.

 

그리하여 희대의 궁중문학 걸작, 한중록이 탄생한 것이다. 차기 권력인 순조가 혜경궁의 친정에 최대한 호의적인 시각을 갖게 하는 것이 집필의 가장 큰 목적이었다. 한중록이 효과를 본 덕분인지, 정순왕후의 수렴청정이 끝나고 순조가 집권한 뒤에는 혜경궁의 친정도 별 탈이 없었다.

 

‘탄생과 성장’, ‘입궐’, ‘남편 사도세자’, ‘정조 키우기’, ‘친정의 몰락’, ‘말년의 위기’로 나뉜 이 책의 결을 따라가다 보면 가장 감탄하게 되는 부분은 혜경궁 홍씨의 눈부신 처세다. 결국 사도세자가 ‘대처분’을 받아 죽은 뒤 그녀가 보여준 처세는 눈부셨다. 정조마저 사도세자의 아들이라는 까닭으로 영조의 눈 밖에 날까 걱정한 그녀는 아예 정조를 영조가 데려가서 키우게 한다.

 

(p.72)

혜경궁은 사도세자가 죽은 지 몇 달 후에 처음으로 영조와 만났다. 이때 혜경궁은 시아버지에게 “저희 모자 보전함이 다 성은이올소이다.”라고 말했다. 죄인의 처자이니 죽일 수도 있으련만 살려 주시니 그 은혜가 고맙고, 죄인의 자식인 정조를 여전히 후계자로 인정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뜻이다. 그랬더니 영조 역시 감동하여 “너 이러할 줄 내 생각지 못하고, 내 너 볼 마음이 어렵더니 내 마음을 펴게 하니 아름답다.”하고 답했다.

 

혜경궁이 사도세자의 죽음에 불만을 품고, 정조에게마저 아버지의 복수를 해야 한다며 영조에 대한 미움을 주입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세손 정조의 지위마저 위태로워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혜경궁은 사도세자가 부왕과 사이가 멀어진 까닭이 어릴 때 가까이 살며 정을 붙이지 못해서라고 여겨, 창경궁에 함께 살던 정조를 경희궁에 살던 영조가 데려가 키울 것을 간청한다.

 

영조가 “네 세손 보내고 견딜까 싶으냐?”라며 남편도 죽은 마당에 아들마저 떠나보내야 하는 며느리를 위로했지만, 혜경궁은 “떠나 섭섭하기는 작은 일이요, 위를 모셔 배우기는 큰일이올소이다.”라며 눈물을 머금고 정조를 떠나보낸다. 정조는 엄마와 헤어지기 싫어 울면서 경희궁으로 갔지만 말이다.

 

혜경궁의 이런 현명한 처세가 훗날의 정조를 있게 했다. 과연 어릴 때부터 할아버지와 붙어 지내며 살뜰한 정이 쌓인 정조는 사도세자를 죽인 무리로부터 많은 공격을 받으면서도 무사히 왕위에 오를 수 있었다.

 

‘한중록’은 어찌 보면 시아버지의 손에 남편을 잃은 기구한 가정사를 가진 한 여성이, 살얼음판을 걷는 정세 속에서 어떻게 아들을 임금으로 키워냈는지를 알 수 있는 한 편의 대하드라마다.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궁중 속에서 기가 막힐 일을 겪고도 살아남아, 아들 정조가 즉위한 뒤 최고로 존귀한 여인이 된 한 여성의 비장한 회고록이기도 하다.

 

이 책은 ‘한중록’에 대해 약간 지식이 있던 독자라면 더 재밌게 읽을 법하고, 한중록을 전혀 접한 적이 없다고 해도 입문서로 탐독할 만하다. 혜경궁 홍씨가 칠십 년 만에 풀어놓은 기억의 갈래를 따라가다 보면 그 세월이 성큼 곁으로 다가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