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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조조는 죽일 사람이 아닌고로, 장군을 보냈으니

[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634]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판소리 <적벽가> 가운데 화용도 좁은 길에서 만난 조조와 관우의 이야기를 하였다. 조조가 안전하다는 화용도 좁은 길로 들어서자마자, 매복해 있던 관우에게 잡히게 되었다. 조조와 수하 장수들의 생사가 관우 장군에게 달려있으니 별반통촉해 달라고 애원하는 대목이 눈물겹기만 하다. 조조는 옛날 유공지사와 자택유자, 두 사람 사이에 있었던 일을 상기시키며 살려 달라고 간청한다.

 

판소리에서 확인되는 이야기의 전개는 너무도 사실적이다. 사설의 처리를 아니리와 발림(동작이나 연기)으로 더욱 구체적으로 펼치고 있어서 훨씬 이해가 빠르고 재미있다. 같은 사설의 동일한 내용을 노래한다고 해도 경기좌창으로 감상하는 적벽가와는 대조적이다.

 

위에서 유공지사와 자택유자 두 사람을 생각해서 제발 덕분에 살려 달라는 대목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일까?

 

중국 춘추 전국시대 정(鄭)나라의 자택유자가 위나라를 쳐들어갔는데, 위나라의 유공지사에게 쫓기게 되었다. 두 사람은 모두 활을 잘 쏘았는데, 유공지사는 자택유자에게 직접 활 쏘는 법을 배우지는 않았지만, 활쏘기를 지도해 준 간접적인 선생이 된다고 해서 그를 예우하여 죽이지 않고 살려 준 이야기이다. 그러나 적을 막아내라는 임금의 명은 어길 수가 없어서 활촉을 뺀 화살 몇 개를 마차에 쏘고 돌아갔다고 한다.

 

화용도 좁은 길에서 만나게 된 조조와 관우의 대화는 “살려 달라.”와 “칼 받아라.”의 싸움이 처절하게 펼쳐진다. 그러다가 조조의 수하 장졸 모두가 다 꿇어 엎뎌,

 

“장군님 덕행으로 우리 승상 살려 주시면, 여산 여해 깊은 은혜,

천추만세를 허오리다.”

 

 

수만 장졸들이 모두 다 꿇어 엎드려, 앙천(仰天) 통곡을 한다. 마지막 부분의 아니리는 아마도 판소리 적벽가의 핵심적 값어치를 조용히 가르치듯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진행되고 있다.

 

<아니리>

관공의 어진 마음, 조조를 쾌히 놓아주고,

“ 중군은 하산하라”

회마(回馬)하여 돌아와 공명께 복지 주 왈,

“ 용렬한 관모는 조조를 놓았사오니, 의율(법에 따라) 시행하옵소서.”

공명이 내려와 손을 잡고 회답하되,

“조조는 죽일 사람이 아닌 고로 장군을 보냈으니 그 일을 뉘 알리요.”

 

세인이 노래하되,

<엇중몰이> 제갈 양은 칠종칠금하고, 연인 장익덕은 의석 엄안하고, 관공은 화용도 좁은 길에 조맹덕을 살으란 말가. 천고의 늠름한 대장군은 한수정후 관공이라, 더질더질.

 

위에서 제갈 양이 칠종칠금(七縱七擒) 한다는 말은, 그가 남쪽의 오랑캐 우두머리인 맹획을 일곱 번 잡았다가 일곱 번 놓아줌으로써 남쪽의 오랑캐들을 끝내 복종시켰다고 한다. 여기서도 관공이 화용도 좁은 길에서 만난 조조를 살려주었기에 천고의 늠름한 장군은 바로 관우 장군이라 칭하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특히 인상에 남는 구절은 “연인 장익덕은 의석 엄안하고”라는 말이다. 장익덕은 장비이고, 엄안은 촉나라 유자의 장수 이름이다. 이 말의 의미는 장비가 강주에 이르러서 파군 태수인 엄안을 삼로 잡았는데, 엄안이 항복하지 않고 감히 맞서 싸웠다고 장비가 비웃었다는 것이다.

 

이에 엄안이 말하기를 “이 고을에는 머리를 잘리는 장수는 있어도, 비굴하게 항복하는 장수는 없을 것이다”라고 결연한 태도를 보였다는 것이다. 이 모습에 장비는 그 충성된 마음을 높이 사서 그를 놓아주었다고 하는 말이 전해온다.

 

이제까지 판소리 적벽가의 마지막 대목인 화용도 좁은 길에서 만나게 된 조조와 관우의 인간관계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소개해 왔다.

 

판소리의 한 바탕이 끝날 경우, 그 끝말로 쓰이고 있는 <더질더질>이란 말의 의미는 분명치 않다. (다음 주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