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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만 보는 바보, 이덕무

[정운복의 아침시평 187]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실학자 이덕무는 서자 출신입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일정한 벼슬 이상은 오를 수 없는 신분이었기에

좌절감 또한 매우 컸을 것으로 짐작합니다.

그래서 자신을 ‘간서치(看書痴)’라고 표현합니다.

‘책만 보는 바보’라는 뜻이지요.

 

그도 한때 광흥창에서 벼슬을 합니다.

광흥창은 조선시대 녹봉을 주는 창고입니다.

조선시대 관리들은 녹봉을 받았는데

월에 정기적으로 받는 것을 봉(俸)이라고 하였고

부정기적으로 보너스처럼 받는 것을 녹(祿)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을 지급하는 곳이 광흥창이었던 것이지요.

 

이덕무의 호는 청장관(靑莊館)입니다.

그의 문집이 《청장관 전서》인 이유입니다.

청장은 왜가리과 해오라기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해오라기는 강이나 호수에 살면서 먹이를 쫓지 아니하고

제 앞을 지나가는 것만 쪼아 먹는다고 합니다.

 

곧 이덕무 호인 청장관에는

욕심을 부려 남의 것을 탐하지 않는다는 청백함이 들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덕무는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더러는 해가 저물도록 식사를 못 한 적도 있고

더러는 추운 겨울에도 온돌에 불을 지피지 못할 때도 있었습니다.

 

간혹 다른 사람들이 녹봉이 적지 않느냐고 물으면 그는 이렇게 답하곤 했지요.

"내가 한낱 서생으로서 임금을 가까이 모시고 벼슬이 현감에 이르렀는데

위로는 늙으신 어머님을 모시고 아래로 처자식을 잘 거느리고 있으니 이로써 족하다."

낮은 벼슬에 비교적 가난하게 살았지만, 그의 시문은 뛰어났고 인품은 훌륭했습니다.

 

방이 너무 추워서 이불 위에 《논어》를 펼쳐서 덮고

바람은 《한서》를 병풍처럼 펼쳐 세워 막아 겨울을 나기도 했고

책을 살 수 없어 빌려온 책을 베끼고 돌려주는 식으로 소장 도서를 늘리기도 했지요.

훗날 정조가 규장각의 일을 맡겼는데

규장각의 귀한 책을 접할 수 있어서 좋아했다는 기록도 남아있습니다.

 

 

요즘, 추위와 더위 걱정이 없고 도서관에만 가면 책이 즐비한 시대에 살고 있음에도

그 책을 가까이하지 않으니

위대한 조상들을 뵐 면목이 없는 세월을 지내고 있는 것 같아

죄송스러운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