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고수(鼓手)의 임무나 그 역할에 관한 이야기, 고수는 반주자로 창자의 소리에 맞추어 정확하게 장단(長短), 곧 박자의 조합과 강약(强弱)의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데, 이러한 능력은 소리속을 훤히 꿰고 있지 못하면 불가능한 조건이라는 점을 이야기하였다.
이번 주에는 고수의 추임새가 소리판을 키우는 매우 중요한 요건이라는 점을 이야기한다.
고수가 정확하게 장단을 쳐 주고, 이와 함께 강약 처리를 잘한다고 해서 모두가 유명 고수로 인정을 받게 되는 것일까? 물음에 대한 대답은 “반드시 그렇지 않다.”다. 그것은 바로 ‘얼씨구’, ‘으이’, ‘좋지’, ‘좋다’, ‘잘 헌다’ 등의 조흥사(助興詞), 곧 추임새를 적재적소(適材適所)에 넣어 줌으로 해서 소리꾼에게 자신감을 가지도록 북돋아 주는 역할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때때로 이를 소홀히 하거나 적절하게 구사하지 못하는 고수들이 있다. 이러한 경우에는 명고수(名鼓手)의 대접을 받기 어려울 것이다.
일반적으로 소리꾼의 역할은 <춘향전>이나 <심청전>과 같은 긴 이야기를 소리와 장단, 그리고 다양한 대사와 발림(몸동작) 등으로 소리판을 이끌어가기에 매우 힘든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이에 견줘 고수는 한 자리에 앉아서 북만 쳐 주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쉬운 역할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바로 그 소리에 맞추어 북을 친다는 점이 어려운 사실로, 일반인들의 인식은 이를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무대 위에서 움직임도 없이, 지정된 자리에서 북만 쳐 주고 있기에 육체적으로도 힘들다는 점을 인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앞에서도 말했거니와 고수의 역할이 어렵고 힘들다고 하는 이유 가운데는 소리 길의 느리고 또는 빠른 형태의 정확한 장단을 유지하는 일, 그리고 소리 속을 꿰뚫는 강약의 유지가 쉽지 않은 과정인데, 이러한 과정을 일반인들의 인식으로는 제대로 판단되기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더더욱 창자가 이끌어가는 슬픔의 절정이나 기쁨의 이야기 등등, 사설의 전개 상황에 맞는 적절한 추임새로 소리꾼의 심리를 안정적으로 이끌어 주고, 나아가 소리판을 성공적으로 안내해 주어야 하는 그 역할도 고수에게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고수의 적절한 추임새가 소리판을 성공적으로 이끌 수도 있고, 또한 실패로 몰고 갈 수도 있을 만큼 영향력이 크다는 점은 재차 강조하지 않아도 충분히 공감이 가는 점이라 하겠다. 그래서 하기 좋은 말로, 첫째가 고수, 둘째가 명창이란 말에서 소리꾼보다는 고수를 앞에 세우는 역설적(逆說的)인 말, 일고수 이명창(一鼓手二名唱)이란 표현이 널리 회자(膾炙)되어 오고 있다. 이 말로 고수의 역할이 얼마나 어려운가 하는 점을 짐작하게 만든다.
그런데 지난 시대, 판소리계의 명고수로 이름을 날린 바 있는 김득수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일청중(一聽衆), 이고수(二鼓手), 삼명창(三名唱), 곧 첫쨰가 청중, 둘째가 고수, 셋째가 명창이란 다소 생소한, 그러나 청중을 소리판에서 가장 중요하고 영향력 있는 대상으로 세운 것이다. 소리판이 성공하려면 청중들의 반응은 절대적이다. 그러기에 첫째가 청중이 모여들어야 하고, 둘째 소리꾼과 호흡을 맞출 수 있는 고수, 그리고 명창의 소리가 존재한다는 말인데, 전혀 근거 없는 말이 아닌 듯 하나, 무엇보다도 소리꾼의 소리가 청중들의 가슴을 파고 들어야 청중들이 소리판으로 모여든다는 점은 분명하다.
소리꾼의 소리가 청중들과 호흡을 함께 할 때, 청중들의 추임새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올 것이고 이러한 분위기가 이어진다면 곧 소리판은 성공적이라 하겠다.
지난 시대, 명고수로 활동하면서 창자(唱者)나 주자(奏者)들의 신뢰를 한 몸에 받았던 김동준도 평소 고수에게 있어 적절한 추임새는 소리판을 키우는 절대적 요인이었음을 강조해 왔다. 그가 전해 준 추임새 관련한 재미있는 이야기 한 토막을 소개한다.
청주사대에 출강하고 있던 70년대 말이었다. 충북 청주시에서 성창순 명창과 고수 김동준을 초청하여 판소리 감상회를 성공적으로 끝낸 다음, 사적(私的)인 자리에서 고수에게 물었다.
“선생의 추임새는 너무도 자연스럽습니다. 누구에게나 그렇게 추임새를 해 주시나요? ”
그의 대답이다.
“안 좋은 걸 ‘좋다’ 하는 거이 여간 일이 아니여”
만면에 웃음을 띠면서 열심히 추임새를 넣어 주던 그의 모습이 지금도 잊히지 않고 떠오른다. (다음 주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