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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변호사의 세상바라기

내 몸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 ‘미생물’일 수 있다

《기생일까? 공생일까?》, 권오길, 지성사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268]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스승의 날 지나 고교동기 선종이한테 전화가 왔습니다. 춘천에 사시는 권오길 선생님께 갔다 오자고요. 그렇지 않아도 선생님께 스승의 날 감사 전화를 드리면서 한 번 찾아뵙겠다고 하였는데, 선종이 덕분에 빨리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한림성심대학교 총장으로 있는 영식이에게도 연락하여 5월 23일 같이 선생님을 뵈었습니다. 제가 글 제목을 《기생일까? 공생일까?》라고 하고는 선생님 이야기를 하니 좀 이상하지요? 이날 선생님께서 주신 책 제목이 《기생일까? 공생일까?》입니다.

 

생물수필 1세대이신 선생님은 그동안에도 수많은 수필을 쓰셨는데, 이번에 책으로 나온 것은 《기생일까? 공생일까?》이군요. 선생님은 그동안 50여 권의 책을 쓰셨으니, 참 대단하시지요? 선생님은 단순한 생물수필을 쓰는 것이 아니라, 글에서 우리 토박이말을 많이 쓰셔서 ‘과학계의 김유정’이라고도 불리십니다.

 

 

자연에 있는 ‘기생’, ‘공생’에 대해서는 학교에서 배웠기 때문에 친숙한 개념입니다. 그래서 복습한다는 기분으로 책을 펼쳤는데, 그동안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기생, 공생관계에서도 잘 모르는 것이 많네요. 그뿐만 아니라 전혀 생각지 못하고 있던 기생, 공생관계도 있구요. 이를테면 말미잘과 흰동가리 공생의 경우 저는 그동안 말미잘이 일방적으로 안전한 집을 제공해주는 편리공생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흰동가리도 작은 물고기를 유인하여 말미잘이 잡아먹게 하고, 또 먹이를 먹다가 흘려 이를 말미잘이 먹도록 해줍니다. 그리고 흰동가리가 말미잘 촉수 속을 들락거리면서 물을 흘려 말미잘의 기생충을 없애주는군요. 선생님은 흰동가리를 재미있게 호객꾼에 비유하십니다. 곧 흰동가리는 상점 앞에서 서서 지나가는 사람을 끌어들여 물건을 사게 하고 주인에게서 삯을 받는 바람잡이 여리꾼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말미잘은 ‘말+미잘’의 합성어인데, ‘미잘’은 미자바리(항문)이란 뜻이랍니다. 저는 말한테 뒷발질 당할까, 봐 자세히 보지는 못했는데, 말미잘이 말 똥구녕과 비슷하게 생겼군요. 재미있습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재미있는 말이 있습니다. 말미잘을 과거 강원도에서는 ‘물보지’라고 불렀답니다. 물속에 있는 보지? 하하하! 혹시 말미잘의 촉수에 독소만 없다면 한 번 자기 거시기를 말미잘 안에 넣어보고 싶은 사람 있는 것 아닙니까?

 

그리고 조개 안에 알을 낳는 물고기가 있다는 것을 아실 겁니다. 납자루나 중고기의 암놈이 조개 출수공(出水孔)으로 산란관을 집어넣어 알을 낳으면 수놈이 달려들어 입수공에 정자를 뿌립니다. 그러면 조개가 물을 빨아들일 때 정자도 빨려 들어가 수정이 되는 것이지요. 이렇게 하여 부화한 새끼는 조개 속에서 안전하게 있다가 약 1달 뒤 출수공으로 나옵니다.

 

그래서 이를 편리공생으로 알기 쉬운데, 조개가 바봅니까? 납자루나 중고기 암놈이 입수공에 산란관을 집어넣을 때 조개도 재빨리 육아낭에 보관하고 있던 유생들을 출수공을 통해 냅다 내뿜습니다. 그러면 이 유생들은 물고기에 착 달라붙어 한 달 정도 물고기의 체액을 빨아먹고 크다가 떨어져나옵니다. 이런 조개 유생을 ‘글로키디움’이라 부르는데, 뜻이 뭔지 아십니까? 바로 ‘갈고리 모양’이랍니다. 이름을 제대로 지었네요.

 

하나만 더 얘기한다면, 뻐꾸기가 뱁새 둥지에 알을 낳는 얌체라는 것은 모르는 분이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물고기 가운데도 그런 얌체가 있네요. 탕가니카 호수에 사는 시클리드는 알을 입에다 넣고 부화시킨답니다. 그런데 얌체 물고기가 옆에서 몰래 지켜보고 있다가 시클리드가 모래에 낳은 알을 입 안으로 넣으려고 할 때, 잽싸게 자기 알도 여기에 뿌립니다. 그러니 시클리드가 아무리 얌체 물고기의 알을 걸러내려고 하여도 얌체 물고기 알은 자기 알과 섞이기 마련이지요. 이 물고기 이름이 뭔지 아십니까? ‘뻐꾸기메기’랍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얘기하겠습니다. 사람은 누구와 공생하겠습니까? 이러면 가축을 먼저 떠올릴지도 모르겠는데, 미생물과 공생합니다. 우리 몸 안에는 많은 세균이 있습니다. 뭘 다 아는 얘기를 하냐고 하실지 모르겠는데, 선생님이 알려주시는 구체적인 수치를 보니까 더 실감이 납니다. 큰창자에 4,000여 종, 코안에 900여 종, 입속에 400여 종이 그리고 여성의 질 안에 300여 종이 삽니다. 숫자로 하면 발바닥에는 1제곱센티미터당 1,000에서 100만 마리의 세균이 있습니다.

 

그리고 뭐니 뭐니 해도 제일 많은 세균이 사는 곳은 큰창자 아닙니까? 큰창자 점액 1밀리리터에는 무려 10억 마리 이상의 대장균이 산답니다! 또 큰창자 안의 내용물 1g에는 무려 천억에서 1조 마리까지의 세균이 산다고 하니, 큰창자는 완전 세균이 점령하고 있군요. 그래서 이런 장 세균을 모두 모아 무게를 재면 무게가 무려 약 1.5kg이랍니다! 1.5kg!! 그리고 말린 똥 무게는 60%가 세균이라니, 이건 완전 세균 덩어리이군요.

 

저는 어려서 생물을 배울 때 우리 몸 안에 수많은 미생물이 산다는 것을 배우며, 이 미생물들이 인간의 몸에 기생하는 것으로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공짜로 인간이 주는 먹이를 먹으며 사는 것이 아닙니다. 장내 세균은 몇 가지 비타민을 만들고 사람이 소화할 수 없는 탄수화물이나 단백질의 소화를 돕습니다. 그리고 면역계를 자극하여 항체의 근원이 되는 물질을 만들어 내기도 하여, 대장 속의 미생물을 ‘제3의 장기’라고 부르기도 한다네요. 그리고 독성이 있는 물질을 먹었을 때 장 세균이 뇌가 구토나 설사를 일으키도록 신호를 보내기에, 장을 ‘제2의 뇌’라고 부르기도 한답니다.

 

그리고 ‘대변이식’이란 말 들어봤습니까? 치료의 수단으로 건강한 사람의 똥을 환자의 큰창자에 집어넣는 것입니다. 물론 똥 그 상태로 집어넣는 것은 아니겠지요. 이젠 짐작하시겠지만, 건강한 사람의 똥에 사는 세균을 환자의 창자에 집어넣는 것은 세균총 변화를 유도하여 이식받은 사람을 치료하는 것입니다. 한편 바짝 마른 사람의 똥을 뚱뚱한 사람에게 넣어 비만을 치료하기도 한다네요. 그 반대로 하여 바짝 마른 사람을 치료하기도 하고요.

 

그리고 보통 목욕이나 샤워를 자주 하면 몸의 청결을 유지해 줘 몸에 좋다고 생각하겠지요? 그러나 너무 자주 하는 목욕, 샤워는 오히려 몸에 안 좋습니다. 특히 비누나 샴푸를 지나치게 많이 쓰면 안 좋습니다. 왜냐하면 피부에는 착한 박테리아가 살고 있어서, 병원균의 영양분이 되는 땀과 피지, 각질 등을 그때그때 먹어 치웁니다. 또 식중독을 일으키는 황색포도상구균을 죽이는 항균, 항생 물질을 분비하기도 하구요.

 

그러니 너무 목욕, 샤워를 자주 하여 이런 착한 세균까지 죽이면 밖에 있는 병원균을 어서 오라고 부르는 꼴이지요. 선생님은 아토피 같은 피부병이나 소아마비도 죄다 너무 몸을 깨끗이 한 탓에 생기는 것이라고 하시네요. 그러다 보니 고1 때 선생님께 배웠던 구절이 생각나네요. “때는 미는 것이 아니라 녹이는 것이다.” 어렸을 때는 그것도 모르고 한 번 목욕탕에 가면 본전 뽑는다고 피부가 벌겋게 될 정도로 빡빡 밀어댔으니...

 

한편 태아가 태어날 때 제왕절개를 하지 않는 한 어머니 질을 통과하여 세상의 빛을 보지요? 그러면 태아는 어머니 질을 통과하면서 수많은 세균을 뒤집어쓰고 나오는 것입니다. 언뜻 생각하면 아기에게 별로 좋을 것은 못 될 것 같은데, 그렇지 않습니다. 이 세균들은 착한 세균이라 무균 상태의 자궁에 있던 태아가 이 세균 세례를 받으면서 세상에 대한 저항력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엄마 젖도 단순한 영양분만 먹는 것이 아니라 엄마 몸 안의 세균도 먹는 것이라, 이렇게 하여 아기의 몸에도 ‘세균 생태계’가 형성되는 것이지요. 그렇기에 제왕절개로 태어나서 우유를 먹고 자라는 아기는 정상적으로 크는 아기보다 튼튼할 수가 없습니다. 이러니 사람이 세균과 공생한다는 것이 절대 과장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겠지요? 그래서 과학계에는 “내 몸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 ‘미생물’일 수 있다”라는 말이 자주 쓰인다고 합니다.

 

권오길 선생님을 고교 은사로 모신 덕분에 선생님이 쓰신 많은 생물수필집을 읽을 수 있었고, 그 덕분에 생물에 대한 제 상식도 많이 늘었습니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오래오래 건강하셔야 합니다. 선생님! 그리하여 앞으로도 계속 후학들에게 재미있는 생물 이야기 많이 들려주십시오! 다음에 또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