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런치 데이트>는 미국에서 1989년 만들어진 흑백 단편영화입니다.
"사람들이 붐비는 기차역에서
어느 백인 귀부인이 흑인과 부딪쳐 쇼핑백을 떨어뜨립니다.
쏟아져 나온 물건들을 주워 담느라 기차를 놓치고 말았지요.
하는 수 없이 주변 음식점에 가서 샐러드 한 접시를 주문하고
식탁에 자리 잡은 그녀는 포크를 가지고 오지 않은 것을 깨닫습니다.
다시 주방으로 돌아가서 포크를 가지고 돌아옵니다.
그사이에 어떤 흑인이 자기 식탁에 앉아 샐러드를 먹고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녀는 화가 났지만, 포크를 들고 같이 샐러드를 먹습니다.
서로 한 포크씩 집어서 말이지요.
샐러드를 먹고 난 뒤 흑인이 커피를 두 잔 가져와 한 잔을 그녀에게 건넵니다.
커피를 마신 귀부인은 기차를 타러 갑니다.
허걱~~ 그만 쇼핑백을 놓고 온 것이었습니다.
급히 음식점으로 뛰어갔지만, 흑인도 쇼핑백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당황한 귀부인은 음식점 여기저기를 찾아보던 중에
아까 샐러드를 먹었던 곳 바로 뒤의 식탁에
손도 대지 않은 자기 샐러드 접시와 쇼핑백이 있는 것을 발견하지요.
귀부인은 자신이 자리를 잘못 잡은 탓에
흑인의 음식을 빼앗아 먹었고 커피도 한 잔 얻어먹었다는 사실을 깨닫고서
실소를 금치 못합니다.
그 귀부인은 진실을 알기 전까지 얼마나 흑인 여자가 미웠을까요?
그래도 화내지 않고 샐러드를 나누어 먹은 자신이 장하다고 생각했겠지요.
이 영화는 자기 샐러드를 빼앗아 먹는 귀부인을 보면서도 화를 내지 않고
오히려 커피까지 대접하는 흑인의 여유롭고 너그러운 마음에 초점을 맞춥니다.
어쩌면 사회적으로 귀부인은 그 위치 덕에 귀한 대접을 받았을 것이고
흑인은 그렇지 못할 가능성이 큽니다.
하지만 마음에 여유를 갖고 남을 배려하는 흑인의 모습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이 영화는 흑백의 대결을 통하여 못 가진 자의 배려를 더 부각하려 애썼겠지만
흑백이 영화의 본질은 아닙니다.
관대함과 너그러움, 그리고 주변의 실수에 대한 성숙한 삶의 태도가 중요한 것이지요.
사자성어에 ‘반구제신(反求諸身)’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어떤 일이 잘못되었을 때 그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으라는 것이지요.
활을 쏠 때 과녁을 맞추지 못한 것은 과녁의 잘못이 아닙니다.
활 쏘는 자세, 조준, 호흡 마음가짐 등 원인을 자기에게서 찾아야 하는 것이지요.
남 탓으로 하루가 저무는 삶보다 불행한 것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