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한영 기자] “안동은 산천이 빼어나고 훌륭한 인물이 많았으며, 풍부한 토산과 아름다운 자연, 기이한 옛 유적이 많이 남아 있다. 그러나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실린 안동에 대한 기록은 일부에 불과하여, 사라진 안동의 역사가 몇천 년이 되었는지 모른다.”
1608년에 《영가지》 펴냄찬을 마무리하며 용만(龍彎) 권기(權紀, 1546~1624)가 남긴 서문의 일부다. 권기의 말은 안동이라는 공간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삶이 오랜 역사의 산물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역사를 열어가는 징검다리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한국국학진흥원(원장 정종섭)은 11월 19일(화) 낮후 1시 30분부터 안동예술의전당 국제회의실에서 “《영가지》를 통해 본 지방 지리지의 가치와 의미”라는 주제로, 지방 지리지의 값어치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이를 활용하기 위한 방안을 검토하고자 한다.
조선의 대표 사찬 지리지, 《영가지》
권기는 서애 류성룡의 학식과 품행이 뛰어난 제자로, 류성룡이 안동에 지리지가 없는 것에 안타까워 하자 6년에 걸쳐 《영가지》를 펴냈다. 당시 대부분의 지방 지리지와 마찬가지로, 《영가지》에도 지역의 연혁, 읍호, 자연환경, 사람, 문화, 풍속, 나아가 정치, 경제 및 교육, 종교까지 망라되어 있다.
친필 원본은 청성서원에 보관되어 오다가 1791년에 교정 및 간행 작업이 진행되었으나, 교정만 마친 채 간행이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러다가 1899년이 되어서야 지역 사회의 도움으로 간행이 마무리될 수 있었다. 간행 당시 류성룡의 후손인 류도헌은 “《영가지》는 개인의 것이 아니라 지역 모두의 것이며, 이를 세상에 널리 보급하는 것이 선대들의 뜻”이라고 언급했다.
《영가지》를 통한 자연과 인문의 결합 방안 모색
《영가지》를 포함한 사찬 지리지는 사람과 지리를 하나의 도덕적 원리로 이해하고, 이를 기반으로 지역을 자연과 인문이 결합한 삶의 현장으로 만들고자 노력한 흔적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또 인간이 삶의 공간을 어떻게 활용할지 고민해 온 과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깊다.
이번 학술대회에서는 《영가지》를 중심으로 이러한 부분에 대한 검토가 진행될 예정이다. 특히 17세기를 전후로 중앙의 지리지와 별도로 지방의 지리지 제작이 급격하게 증가한 배경과 그 추이를 확인하고, 《영가지》가 가진 기록유산으로서의 값어치를 심도있게 분석할 예정이다.
한국국학진흥원 정종섭 원장은 “용만 권기 선생의 서거 400돌을 맞아, 《영가지》를 재조명하고, 현대적인 값어치를 발굴할 기회가 마련되어 의미가 깊다”라며, “이번 학술대회를 통해 《영가지》의 현대적 활용 방안을 모색하고, 조선시대 사찬 지리지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위한 기반을 만들게 될 것이다”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