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철원 고석정 꽃밭은 탱크가 기동훈련을 하고 포성이 가득한 군 훈련지였습니다. 주민들은 꽃을 심고 나무를 깎아 투박한 조형물을 만들어 꾸미기 시작했습니다. 고석정 꽃밭의 꽃들은 어린이들의 평화롭고 행복한 웃음소리를 들으며 자랍니다.'
- 강원특별자치도 철원군 '2025 철원 고석정 꽃밭 가을개장' 홍보물 -
한가위 명절을 앞두고 포천 사는 동생을 만나러 갔다. 서로 사는 일이 바빠 거의 반년 만에 만난 동생은 가까이에 유명한 꽃밭이 있으니 함께 가보자고 해서 따라나섰다. 동생 집에서는 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이 꽃밭 이름은 '철원 고석정 꽃밭'이다. 처음에 꽃밭을 보러 가자고 했을때 내심 대단한 꽃이 있을 것 같지 않아 '그냥 선정호수나 걷자'라고 했는데...아뿔사, 주차장에 차를 대고 정문으로 걸어가는 길 건너편에 펼쳐진 끝없는 꽃밭이라니! 눈이 휘둥그레졌다.
붉은 맨드라미, 노랑 맨드라미, 천일홍, 백일홍, 보랏빛 버베나, 가우라, 해바라기, 코스모스, 핑크뮬리, 억새, 코키아.... 가도 가도 끝없이 펼쳐진 꽃밭이 황홀하여 연신 탄성이 터졌다. 가끔 뉴스에서 해바라기꽃밭이라든가, 백일홍꽃밭, 샤스타데이지(구절초 모양의 꽃) 등등 각 지자체에서 드넓은 꽃밭을 조성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으나 내 눈앞에 펼쳐진 철원 고석정의 드넓은 꽃밭은 규모로 보나 심어놓은 꽃의 종류로 보나 예사롭지 않았다. 정문에서 표를 사서 드넓은 꽃밭을 천천히 구경하며 사진도 찍고 곳곳에 세워둔 원두막 의자에 쉬며 돌아보는 데 두 시간이 모자랄 정도였다.
고석정꽃밭을 돌아보며 문득 오래전 가보았던 홋카이도(北海道) 후라노(富良野), 비에이(美暎) 지역의 꽃밭이 떠 올랐다. 끝없이 펼쳐진 홋카이도 대자연을 아름다운 꽃으로 가꾼 덕에 이곳에는 봄부터 여름에 걸쳐 수많은 관광객이 꽃향기에 취해 찾아든다. 5월에는 무스카리, 히야신스, 튤립 등이 볼만하고 6월 하순부터는 샐비어, 라벤더(노시하야자키), 해당화, 루피너스 7월 상순에는 라벤더(오마쿠라사키, 요테이), 맨드라미, 베고니아, 백일홍 하순에는 라벤더(하나모이와, 라반진) 8월에는 풍접초 등 계절별로 관광객을 불러들이기 위한 홍보와 작업이 활발했던 기억이 난다.
기자가 찾았던 곳은 ‘팜 도미타’라는 대규모 농원으로 1903년, 도미타 도쿠마 씨가 개척하여 1958년부터 향료용으로 라벤더를 전문적으로 재배하기 시작하여 보랏빛 라벤더가 그야말로 일품이다. 꽃밭은 여러 구역으로 나눠 관리되고 있었는데 특히 ‘사계절언덕’에는 꽃도 꽃이지만 전시된 꽃 사진과 라벤더 상품이 즐비하여 눈요기도 그만이었던 기억이 새롭다.


홋카이도 꽃밭을 구경하고 와서 우리나라에도 이런 다양한 꽃을 심어놓은 꽃밭이 없나 했었는데 바로 그제 그런 꽃밭을 딱 만난 것이다. 규모면에서는 철원 꽃밭이 더 넓은 듯해보였다. 곳곳에 적당한 꽃들을 배치해 놓은 모습은 오히려 홋카이도 꽃밭보다 더 짜임새 있어 보였다. 적어도 내 눈에는 그렇다.
다만, 아쉬운 부분도 있었다. 철원 고석정에 심은 꽃들 가운데 우리나라꽃을 찾아보기 어려웠다는 점이었다. 빨강, 노랑 맨드라미(아시아 원산), 천일홍(중남미), 백일홍(멕시코), 버베나(남미), 가우라(미국), 해바라기(중앙아메리카), 코스모스(멕시코), 핑크뮬리(미국중서부), 억새(동남아), 코키아(유럽).... 이상은 철원고석정꽃밭 홍보물에서 소개한 꽃과 원산지다.
또 ‘우리나라 것 타령이냐’라고 질책할 독자가 있을지 모르겠으나, 나는 가끔 요즘 유행하는 지자체의 꽃축제 소식을 들 때마다 ‘우리나라꽃’에 대한 의문을 품게 된다. 내 어렸을 적 주변에서 흔히 보았던 봉숭아, 분꽃, 민들레 같은 꽃들은 요즘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환상적인 보랏빛의 버베나(남미 원산지)꽃은 정말 아름답다. 가우라(미국원산지)라는 꽃은 요즘은 바늘꽃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데 자잘하면서도 자세히 보면 볼수록 귀여운 녀석이다. 분홍빛 하늘거리는 핑크뮬리도 무리 지어져 있는 모습이 아름다워 전국에서 사랑받는 식물이다. (2019년 12월 환경부는 핑크뮬리를 생태계 위해성 2급 식물로 지정했다. 이 식물은 당장 큰 위해를 주진 않지만, 확산하면 토종 생태계에 영향을 줄 수 있어 지속적인 관찰과 관리가 필요하다)
아름다운 꽃밭을 가꾸고자 하는 지자체의 노력을 나는 높이 사주고 싶다. 다만, 무조건적인 외래종만으로 채우지 말고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꽃들을 찾아 작은 공간에라도 심어주었으면 어땠을까 하고 바라본다. 당장이야 이름 모를 외래종이 신비스럽고 예쁠지 모르지만, 누천년, 이 땅에서 우리와 함께 호흡하던 꽃들을 이러한 대규모꽃밭에서 만날 수 있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

그럼에도, 이 꽃밭을 가꿔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큰 기쁨과 탄성을 자아내게 만든 철원군과 군민들의 노력에 큰 손뼉을 쳐 드리고 싶다. 덧붙여 부탁한다면, 정문 입구의 휴게시설 확충과 드넓은 꽃밭이니 만치 곳곳에 긴의자 등등 약간의 시설 보완도 주문하고 싶다.
긴 한가위 연휴기간에 서울에서 접근성이 좋은 ‘2025철원 고석정 꽃밭나들이’를 권해본다.
<2025 철원 고석정 꽃밭 가을 개장> 안내
*8월 27일-11월 2일(매주 화요일 휴일)
*강원특별자치도 철원군 동송읍 태봉로 1769
*주최ㆍ주관: 철원군, 철원문화재단
*전화 033- 452- 19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