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찬 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하는 아침입니다. 목도리를 잊고 나오는 바람에 목이 더 서늘하게 느껴졌습니다. 오늘 온나라 배곳(학교)에서는 202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표를 나누어 준다는 기별이 들습니다. 받아 든 성적표를 보며 웃음을 짓는 이도, 아쉬움에 고개를 떨구는 이도 있을 겁니다. 나라 안팎이 입시라는 큰 일을 두고 떠들썩한 이때, '눈치 작전'이니 '전략'이니 하는 날 선 말들을 갈음해 우리 마음을 차분하게 어루만져 줄 토박이말 하나를 꺼내 봅니다. 오늘 여러분과 나누고 싶은 말은 '다스름'입니다.
이 말은 우리 소리꽃(음악), 국악에서 쓰이는 말입니다. 바탕 타기(본 연주)에 들어가기에 앞서 소리꽃틀(악기)의 줄을 고르고 타는이(연주자)의 숨을 가다듬으려고 하는 짧은 소리꽃(음악)을 뜻합니다. 낱말의 짜임을 살펴보면 그 맛이 더 깊어집니다. 이 말은 '다스리다'라는 움직씨(동사)의 줄기인 '다스리-'에 이름씨(명사)를 만드는 뒷가지(접미사) '-ㅁ'이 붙어서 된 '다스림'이 뀐 것으로 보입니다. 소리꽃틀(악기)의 소리를 '다스리고', 타는이(연주자)의 들뜬 마음을 '다스린다'는 뜻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우리네 다꽃지음이(예술가)들의 삶과 글 속에서도 그윽한 맛을 내곤합니다. 가야금 산조나 판소리 한 마당을 하기 앞서 반드시 이 '다스름'을 거칩니다. 듣는이의 숨소리조차 잦아든 고요 속에서, 줄을 퉁기며 소리를 맞추고 숨을 고릅니다. 엉킨 마음을 풀어내고 흐트러진 기운을 바로잡는 일, 그것이 바로 다스름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멋진 말을 우리 나날살이에서는 어떻게 부려 쓸 수 있을까요? 먼저 오늘 아침 신문이나 방송에서 본 입시 관련 소식부터 토박이말로 다듬어 보겠습니다. "성적 발표 후 정시 모집 눈치 작전 치열"이라는 메마른 말 대신, "배움이 여러분, 지난 꼲기(시험)는 본 연주를 앞둔 '다스름'이었습니다. 이제 숨을 고르고 참 꿈을 펼쳐 보세요"라고 말해준다면 어떨까요? 점수로 줄을 세우는 차가운 겨루기보다, 저마다의 삶의 소리꽃(음악)을 갖추는 데 힘이 될 것입니다.
가까운 사람들과 나누는 마주이야기(대화)에서도 이 말을 써보세요. 시험 열매를 받고 언짢아하는 사람이 곁에 있다면 어깨를 토닥이며 이렇게 건네는 겁니다. "너무 마음 아파하지 마. 네가 겪는 이 일은 그르친(실패한) 게 아니라, 더 멋진 소리꽃을 피우려고 소리를 맞춰보는 '다스름'일 뿐이야." 이 한마디가 그 어떤 달램보다 깊은 울림을 줄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우리는 갖춤길(준비 과정)을 쓸데 없다고 여기거나, 바로 열매(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조바심을 내곤 합니다. 하지만 이름난 소리꽃(명곡)일수록 그 앞의 다스름은 더 가볍지 않고 깊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 동안 책상 앞에 앉아 보낸 그 뜨겁고 거셌던 날들은 여러분의 삶이라는 소리꽃(음악)을 타려는 값진 때새(시간)였습니다.
성적표를 받아 든 여러분, 그리고 새로운 일을 앞둔 모든 분. 오늘 하루는 바쁜 마음을 내려놓고, 나만의 '다스름'을 즐겨보시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