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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수의 토박이말 이야기

[하루 하나 오늘 토박이말]도르리

따뜻한 마음이 돌고 도는 겨울 밥상

[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옷깃을 파고드는 찬 바람 탓인지 마음마저 움츠러들기 쉬운 요즘, 들려오는 기별은 그리 따뜻하지 못합니다. 치솟는 몬값(물가)탓에 밥집(식당)보다는 집으로 사람을 불러 저마다 먹거리를 조금씩 싸 와서 나누는 모임을 하는 사람들이 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 살가운 바람빛(풍경)을 두고 너나없이 ‘포트럭(Potluck) 파티’라고 하더라구요. 다른 나라에서 들어온 온 낯선 말이 아닌, 우리 삶이 배어 있는 토박이말을 꺼내어 봅니다. 오늘 여러분과 나누고 싶은 말은 바로 ‘도르리’입니다.

 

‘도르리’라는 말은 ‘여러 사람이 음식을 차례로 돌려 가며 내어 함께 먹는 일’ 또는 ‘음식을 똑같이 나누어 주거나 골고루 돌려 주는 일’을 뜻합니다. 그 짜임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물레방아가 돈다 할 때의 ‘돌다’에서 비롯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저 먹거리를 먹는 자리가 아니라, 서로의 마음을 돌리고 마음을 나눈다는 뜻이 이 낱말 속에 오롯이 담겨 있습니다.

 

 

이 말은 우리 말꽃 지음몬(문학 작품) 속에서도 잘 쓰였습니다. 벽초 홍명희 님의 소설 <임꺽정>을 보면 옛사람들의 삶 속에 녹아있던 도르리의 바람빛(풍경)이 생생하게 그려집니다. “한 집에 가서 보니 동네 사람 네댓이 모여 앉아서 쇠머리 도르리를 하는데 정작 술이 없데그려.”라는 대목이 나옵니다. 넉넉하지 않은 살림살이에도 이웃끼리 먹거리를 장만하여 둥글게 모여 앉아 나누던 모습, 그 안에서 피어나던 거칠지만 따뜻한 마음이 느껴지지 않으시는지요.

 

 이 멋스러운 말을 오늘날 우리 나날살이에서는 어떻게 부려 쓸 수 있 수 있을까요? “고물가 시대, 가성비 좋은 포트럭 파티 인기”라는 말을 쓸 수 있겠지만 “어려운 살림살이, 서로 먹거리 나누는 ‘도르리’ 모임으로 따스함을 나누다”라고 하면 좋겠습니다.  

 

가까운 벗들과 나누는 마주 이야기에서도 이 말을 써보세요. “이번 연말엔 돈도 아낄 겸 우리 집에서 포트럭 파티 할래?”라고 묻는 대신 이렇게 건네는 겁니다. “요즘 밖에서 사 먹기도 부담스러운데, 저마다 맛난 것 하나씩 들고 와서 우리 집에서 오붓하게 ‘도르리’ 하는 게 어때?” ‘도르리’라는 말 한마디가 모임의 자리느낌(분위기)를 훨씬 더 푸근하고 살답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또, 마음을 써 차린 먹거리를 찍어 누리어울림마당(에스엔에스)에 올릴 때도 좋습니다. 저마다 가져온 도시락과 그릇이 모여 있는 찍그림(사진) 아래에 이렇게 적어보세요. “화려한 호텔 뷔페는 아니지만, 동무들이 싸 온 김치전과 내가 끓인 어묵탕이 만난 따뜻한 저녁. 올겨울, 우리들의 마음이 ‘도르리’합니다.” 읽는 이들의 마음까지 따뜻하게 데워줄 것입니다.

 

저마다의 접시를 채워 와 서로의 배고픔을 달래주는 바람빛(풍경), 그것이 바로 ‘도르리’입니다. 추위가 더해가는 해끝(연말), 낯선 남의 나라 말이 아닌 우리 토박이말 ‘도르리’로 여러분의 밥상 위에 따뜻한 마음을 돌려보시는 건 어떨까요? 먹거리가 돌고, 이야기가 돌고, 마침내 서로의 따뜻한 마음이 도는 기쁜 날들이 이어지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