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여기 단원 김홍도의 그림 ‘씨름도’가 있습니다. 두 사람 가운데 오른쪽 사람은 입을 꽉 깨물었으며, 광대뼈가 툭 튀어나왔고 두 다리를 떠억 버티고 선 모양새를 보면 이번엔 이기겠다는 단단한 각오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반면에 왼쪽에 번쩍 들린 사람의 표정을 보면 눈을 똥그랗게 뜨고, 양미간 사이엔 깊은 주름이 잡혀 있으며, 눈빛은 쩔쩔매는 듯 너무나 처절합니다. 더구나 한쪽 다리는 번쩍 들려있어서 이 사람이 분명히 질 것이라고 우리는 짐작을 해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그림에서 왼쪽 사람이 넘어진다면 과연 어느 쪽으로 넘어질까요? 자세히 보면 왼쪽 사람들은 느긋하게 구경을 하고 있는데, 반해 오른쪽 아래 구경꾼들은 몸을 뒤로 젖힌 것은 물론 뒤로 손을 짚은 채 당황하는 표정을 짓고 있지요. 그래서 왼쪽 씨름꾼은 당연히 이쪽으로 넘어질 것이란 짐작을 해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잘못 그려진 부분이 한 군데 있는데 뒤로 몸을 젖힌 구경꾼의 손을 반대로 그려놓았는데 참 어색합니다. 천하의 단원이 이런 실수를 했을까요? 아니면 재미있으라고 의도적으로 그렇게 그린 것일까요? 타임머신 타고 옛날로 돌아가서 단원에게 물어볼 수도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색 소 폰 - 김 태 영 우린 무엇으로 통했을까 어찌 나를 그리도 잘 읽었을까 날 대신해 울어도 주고 손잡고 노래해주는 동반자 오늘같이 우울한 날은 소낙비처럼 쏟아내고 싶다. 얼마 전 길거리를 지나가다가 최백호의 ‘낭만에 대하여’ 색소폰 연주를 들었다. 지긋한 노년은 눈을 감고 스스로 색소폰 소리에 빠져들었다. 정년퇴직한 뒤 그대로 인생이 끝나버릴 것 같아서 잡았다는 색소폰은 이제 그의 동반자가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1846년 앙투안 조제프 삭스가 개발하여 파리에서 특허를 얻었다는 색소폰. 색소폰은 군악대 연주뿐 아니라 대중음악이나 재즈와 같은 다양한 장르의 음악에 널리 쓰이고 있다. 원래 삭스가 색소폰을 개발한 뜻은 목관악기의 작동원리를 금관악기에 옮겨 두 악기의 장점을 모두 갖는 악기를 만드는 것이었다고 전한다. 아예 색소폰만의 오케스트라를 꾸밀 수 있게 다양한 악기를 만들었는데 가장 높은 키의 소프라니노부터 가장 낮은 키의 콘트라베이스까지 모두 일곱 종류에 더해 오케스트라를 위해서 세 종류의 색소폰까지 개발했는데, 이 가운데 최근 일반적으로 쓰이는 건 소프라노, 알토, 테너, 바리톤 색소폰만 살아남았다.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우리 국악기 가운데 ‘거문고’는 이제 그 아름다움을 느낄 기회가 많지 않다. 하지만, ‘백악지장(百樂之丈)’, 곧 ‘백 가지 악기 가운데 으뜸’이라는 찬사를 받는 만큼 그 소리에 한 번 빠지면 헤어날 수가 없다. 어제 7월 1일 서울 강남씨어터에서는 지난 2015년부터 거문고로 합주단을 꾸려오고 있는 '라미 앙상블 더 거문고'의 공연이 펼쳐졌다. '라미 앙상블 더 거문고'는 “거문고는 4세기부터 이어진 한국의 대표적 현악기이며, 전 세계에서 볼 수 없는 매우 독창적인 악기다. <라미 앙상블 더 거문고>는 정통성과 동시대성을 바탕으로 동양과 서양,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폭넓은 거문고 음악을 소개하여 관객과 함께 공감하고 즐길 수 있는 음악을 연주하고자 한다.”라고 이번 공연을 펼치는 뜻을 밝혔다. 이번 공연에 가장 눈길을 끈 것은 뉴욕을 기반으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아시아여성작곡가뉴욕시티협회’ 한진희 예술감독의 작품 ‘Bostonian Lab – 1’이었다. 고지영ㆍ장은경ㆍ김희영ㆍ이선희 연주자는 같은 거문고였지만 각기 다른 연주법과 음색으로 관객을 사로잡았다. 손가락으로 누르고, 술대로 뜯고, 튕기고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지난 6월 29일 문화재청은 서울 종로구 공평동 유적에서 항아리에 담긴 조선 전기에 만든 금속활자 1,600여 점이 발굴되었다고 발표했습니다. 특히 이번에 공개되는 금속활자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훈민정음 창제 당시의 표기가 반영된 가장 이른 시기의 한글 금속활자’입니다. 이번에 출토된 금속활자들은 조선 전기 다종다양한 활자가 한 곳에서 출토된 첫 발굴사례로 그 의미가 크다는 평가지요. 특히, 이 활자는 지금까지 전해진 가장 이른 조선 금속활자인 세조 ‘을해자(1455년)’보다 20년 이른 세종 ‘갑인자(1434년)’로 추정되는 활자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 세종 ‘갑인자’는 세종 당시 천문기계를 제작하는 기술자들이 만든 활자라서 품질이 뛰어나다는 게 국내 서지학계의 평가지요. 조판 기술이 대폭 개선된 이 활자들은 흔들리지 않게 찍혔고 인쇄 속도도 두 배로 빨라졌음은 물론 서체의 세련된 아름다움이 더 큰 특징이라고 평가를 받습니다. 이번 금속활자의 발굴은 훈민정음은 물론 세종에 대한 재발견으로 이어질 전망이라고 합니다. 한글이 소리와 꼴, 뜻이 하나의 이치로 이어진 글자이자 인류의 역사에 없던 새로운 형식과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조선시대 우리 겨레는 밥을 먹을 때나 술을 마실 때 소반을 썼습니다. 그런데 그 소반의 쓰임새에 따른 종류를 보면 임금 수라상을 비롯하여 궁궐에서 쓰던 상을 ‘궐반’이라 하고. 잔치할 때 쓰는 큰상으로 개화기 이후 만들었던 ‘교자상’도 있지요. 또 돌을 맞는 아이를 위해 차리는 상 곧 ‘돌상’이 있는데 이를 ‘백완반(百琓盤)’이라고도 합니다. 그 밖에 점쟁이가 점을 칠 때 필요한 기구인 방울, 살, 동전 등을 올려놓고 쓰는 ‘점상’이 있으며, 머리에 이었을 때 구멍이 나 있어 앞을 내다볼 수 있으며, 다리는 어깨 위에 얹을 수 있도록 만들어진 ‘공고상(풍혈반)’도 있습니다. 그리고 특별히 혼인예식 때 쓰는 ‘합환주상’도 있지요. 전통혼례 때 신랑, 신부가 잔을 주고받는 의식을 합근례라 합니다. 이때 쓰는 술잔은 작은 박을 쪼갠 ‘합환주잔’인데 이 잔에 술을 담았을 때 쏟아지지 않게 하려고 작은 소반 위에 잔이 걸칠 수 있도록 구멍을 뚫어놓은 상이 바로 ‘합환주상’이지요. 구멍이 두 개인 ‘합환주상’과 달리 그저 구멍이 하나 뚫린 것은 ‘잔상’이라고 합니다. 겨레의 슬기로움이 돋보이는 ‘합환주상’ 참 재미난 상입니다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남북이 갈린 지 어언 70여 년. 분단 뒤 남녘으로 온 실향민들은 그들의 고향에 노래를 두고 왔습니다. 그렇게 두고 온 노래들이 어슴푸레 잊혀가고 있는데 유지숙 명창은 지난 2016년부터 어렵게 어렵게 그 노래들을 찾아 사람들에게 “북녘땅에 두고 온 노래”를 선물하고 있지요. 지난 2019년 12월 11일 그 세 번째 무대에서의 특별한 발견은 북녘의 상여소리입니다. 이제 남녘에서조차 상여소리는 무형문화재로 지정한 것들만 겨우 보존될 뿐 상여 행렬이 없는 거리에서는 전혀 들을 수 없는 노랫소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이렇게 더더욱 들을 수 없는 북녘의 상여소리를 찾아 헤맨 유지숙 명창은 남녘의 메나리조와 육자배기조 상여소리와는 음악적 특징이 다른 상여소리들을 선보였지요. 황해남도 배천, 황해북도 연산, 남포시 강서, 평안남도 둔덕 그리고 평양에서 불리던 상여소리들입니다. 유지숙 명창은 북녘에서 전해온 상여소리 악보를 오랫동안 익히고, 서도소리 선율이 묻어나도록 시김새를 얹혀 무대에 올렸지요. 그동안 애절한 남녘 상여소리에 익숙해 있던 청중들은 남녘 소리보다는 좀 더 씩씩하고 맑은 북녘의 상여소리에 빠져들어 숨을 죽였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襪底江光緣浸天(말저강광연침천) 버선 밑 강 빛은 하늘에 잠겨 푸른데 昭陽芳艸放筇眠(소양방초방공면) 소양강 방초에 지팡이 놓아두고 자네 浮生不及長堤柳(부생불급장제류) 뜬 인생 긴 둑의 버들에 미치지 못하여 過盡東風未脫綿(과진동풍미탈면) 봄이 다 지나도록 솜옷을 벗지 못하네 이는 조선 말기의 한학자, 개화 사상가인 고환당(古懽堂) 강위(姜瑋)가 춘천 소양강의 버들 둑에서 길을 가던 도중 회포를 읊은 ‘수춘도중(壽春道中)’이란 한시입니다. 발아래 소양강 빛은 하늘에 잠겨 푸른데, 소양강가에 피어 있는 방초에 지팡이를 던져두고 잠을 청합니다. 부평초같이 둥둥 뜬 내 인생은 저 긴 둑에 자란 버들보다도 못한데, 봄이 다 지나가지만, 겨울에 입던 솜옷을 벗지 못하고 있습니다. 곧 때를 만나지 못한 울분의 잠재의식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무인(武人) 집안에서 태어난 강위(姜瑋)는 문인(文人)이기를 바랐지만, 신분적 한계 때문에 길이 막힘을 알고 과거를 포기하고 학문과 문학에 전념하게 되는데 이단으로 몰려 은거하던 민노행(閔魯行)의 문하에서 4년 동안 배웠으며, 민노행이 죽은 뒤 그의 유언에 따라 제주도와 북청에 귀양간 추사 김정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조선시대 남녀 사이 자유스러운 접촉을 금하였던 관습 또는 제도를 “내외(內外)”라 했습니다. 내외의 기원은 유교 경전 《예기(禮記)》 내측편(內則篇)에 “예는 부부가 서로 삼가는 데서 비롯되는 것이니, 궁실을 지을 때 내외를 구별하여 남자는 밖에, 여자는 안에 거처하고, 궁문을 깊고 굳게 하여 남자는 함부로 들어올 수 없고, 여자는 임의로 나가지 않으며, 남자는 안의 일을 말하지 않고, 여자는 밖의 일을 언급하지 않는다.”라고 한 예론에서 비롯되었지요. 이 내외법에 따라 여성들은 바깥나들이를 쉽게 할 수도 없었지만, 꼭 나들이해야 할 때는 내외용 쓰개를 써야만 했고, 가마를 타거나, 귀신을 쫓는 나례(綵棚儺禮)와 같은 거리행사 구경을 금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내용용 쓰개의 종류를 보면 얇은 검정 깁으로 만든 너울[羅兀], 치마와 같은 것으로 끈이 달린 쓰개치마, 두루마기와 비슷한 형태로 겉감은 초록색, 안감은 자주색을 쓴 장옷, 방한을 겸한 내외용 쓰개 천의, 비나 볕을 피하기 위한 삿갓, 주로 기녀들이 바깥나들이 용으로 머리에 썼던 전모 따위가 있었습니다. 쓰개 가운데는 주로 장옷과 쓰개치마가 많이 쓰였는데 조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은 장 도 - 김남희 가까이 오지마라 나는 시퍼렇게 독기 품은 조선의 여자다 굽힐 줄 모르는 정절 당당함이 미덕이다 가슴에 숨기고 살아온 꽃다운 순애보 조선 여자의 자존심이다 맺히고 맺힌 한 올올이 풀어 흰 버선코 날 세운 도도함으로 그대 앞에 선 수호신이다 지난 1982년 8월 5일부터 1982년 10월 29일까지 방영된 MBC 텔레비전에서는 여인열전 세 번째 시리즈로 이혜숙, 유인촌 주연의 <은장도>가 방영되었다. <은장도>는 사대부 가문에서 양반집 여인이기에 겪어야 하는 정한 속에서 굴하지 않고 새로운 인생을 개척해 나가는 여인의 역정을 그렸다. 은장도는 은으로 장식한 작은 칼로 고려시대부터 성인 남녀들이 호신용으로 지니고 다녔으며 특히 임진왜란(1592) 이후부터는 사대부 양반가문의 부녀자들이 순결을 지키기 위해 몸에 지녔다. 여인들의 장도는 이후 노리개 장식으로도 쓰여 화려한 모습도 나타나게 되었다. 여인들이 몸에 지녔던 것은 은(銀)장도가 주였지만 은장도 말고도 칼자루와 칼집의 종류에 따라서 백옥(白玉)장도, 죽(竹)장도, 먹감장도, 오동(烏銅)장도, 대모(玳瑁, 바다거북의 등딱지)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인간과 예술의 만남은 구도의 완성점으로 지극히 창조적이다. 예술은 인간의 깨달음의 경지를 열어주고, 깨달음은 창조적 깊이를 더해준다. 여기 그런 경지에 다다른 스님 한 분이 있다. 스님 김태황 작가가 그분인데 그는 15살 때 부산 선암사에서 불문에 입문하여 40여 년 동안 수행과 더불어 그림과 돌로서 부처님의 가피를 표현해 오고 있다. 돌과 그림에 온 정성과 영혼을 담아 정진하던 차 마침내 부처님을 뵐 때마다 소이부답(笑而不答, 그저 웃기만 하면서 답을 하지 않는 것)과 염화시중(拈華示衆,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는 일)의 화답(和答)을 느끼는 경지에 이르렀다고 한다. 무심한 듯 흘러가는 구름조각, 시냇가 물소리, 홀연히 작은 바람에 뎅겅거리는 풍경소리, 길가에 이름 모를 풀 등 만사일체가 부처님의 설법이요 법문소리로 듣는 경지가 되었다. 30대 청년시절 강원도 화천 해산에서 천일기도를 시작한 지 300여 일쯤, 용(龍)의 형체가 하늘을 날아다니는 모습의 기이한 선몽(先夢)을 받고 7년 3여 개월 동안 꾸준히 재현 정진한 끝에 일필휘지(一筆揮之) 기법으로 단숨에 우주의 선하고 아름다운 기를 응축하여 그려내는 자신만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