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답사 날자> 2021년 5월 25일(화) <답사 참가자> 이상훈 박인기 우명길 이규석 원영환 최돈형 모두 6명 <답사기 작성일> 2021년 6월 3일(목) 이날 걷는 제7구간은 평창군의 마지막 구간이 된다. 그다음 구간부터 영월군이다. 이날 평창읍 응암리 응암굴 앞 펜션에서 11시 30분에 5명이 출발하였다. 중간에 시인마뇽이 참가하여 모두 6명이 평창읍 대하리 연화사 입구까지 12km를 걸었다. 응암리는 평창읍에서 남쪽 5km 지점에 자리 잡고 있다. 평창강에 둘러싸인 외진 마을이다. 마을을 통과하는 도로는 없고, 1.5km 정도 산길로 들어가야 마을에 갈 수 있다. 마을의 지형이 ‘매화낙지형(梅花落地形)’이라고 하여 매화라는 속명을 붙여 매화마을이라고 불렀다. 응암리 동쪽으로 절개산(876m)이 우뚝 솟아 있다. 우리가 묵었던 숙소에서 맞은편 절벽을 바라보면 2개의 굴이 보인다. 임진왜란 때에 노산고성이 함락되기 직전에 평창군수 권두문이 남은 병력 그리고 가족과 피난민들을 이끌고 이 굴로 피신하였다. 《평창군 지명지》> 134~135쪽에는 “위쪽에 있는 관굴(官窟)은 백여 명의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기독교 내에서 환경문제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열심히 환경운동을 하는 기독교환경운동연대라는 단체가 있다(아래 ‘기환연’이라고 줄여 부름). 기환연에서는 환경부와 기후환경네트워크의 후원을 받아 ‘한국교회 탄소중립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기환연에서는 2021년 지구의 날인 4월 22일부터 세계환경의 날인 6월 5일까지 7주 동안 누리집과 유튜브를 통해 기후위기 비상 행동을 소개하고 홍보하는 운동을 진행하였다. 기환연은 “탄소중립을 위한 일곱 가지 실천으로 창조세계를 온전히 회복합시다”라는 구호 아래 기독교인이 따라야 할 행동 지침으로 7가지(생명경제, 녹색서재, 그린에너지, 녹색교통, 기후미식, 슬로우패션, 미니멀라이프)를 내보였다. 그 가운데서도 ‘기후미식’이라는 말이 생소하다. 기후미식이란 무엇인가를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았다. 기후미식(氣候美食, Climate gourmet)은 “탄소 배출을 최소화하는 건강하고 아름다운 식생활”을 뜻한다. 기후미식이 필요한 근거로서 기환연에서 제시하는 논리는 다음과 같다. 식품의 생산과 운송, 보관, 폐기 과정에서 많은 양의 탄소가 배출되고 있다. 특히 육류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생태마을 옆 산 쪽으로 길이 나 있다. 이 길은 매화마을 녹색길과 만나는데, 생태마을에서는 순례길이라고 부른다. 천주교 신자들이 생태마을에 2박3일로 피정(필자 주: 기독교의 수련회와 비슷한 천주교 신자들의 신앙 수련회)을 오면 순례길을 걷는 일정이 포함되어 있다. 한 사람이 겨우 갈 수 있는 좁은 산길을 따라 조금 걸으니 매화마을 녹색길과 만난다. 매화마을 녹색길은 쉽게 말해서 응암리 매화마을에서 만든 둘레길이다. 포장된 길을 따라 동쪽으로 계속 내려가다가 왼쪽의 오솔길로 접어들었다. 오솔길을 따라 계속 가니 평창강 둑방길이 나타난다. 낮은 보와 작은 양수장 건물이 보인다. 둑방길을 따라 강 따라 계속 걸었다. 한적하고 물소리가 들리고 녹색 산이 보이는 좋은 산책길이 이어진다. 걷다 보니 오른쪽에 표시판이 나타난다. 밭 가운데 돌무더기가 쌓여있다고 하여 ‘뒤다미’라고 하는데, 쌓여있는 돌무더기는 한강변 중심 최남단에 있는 철기시대 무덤(무기단식 적석총)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그리고 또 하나의 설은 임진왜란 때 죽은 왜군의 무덤이라고 하여 이담(왜담)터라고도 한다. 조금 더 내려가니 강 건너에 높은 절벽이 나타난다. 약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오면서 가양이 길가에 피어있는 고들빼기와 씀바귀의 차이점에 대해서 알기 쉽게 설명을 했다. 가양은 대학 교수가 되기 전에 한국교육개발원 과학교육연구실에서 근무하였다. 가양은 초.중.고 과학교과서를 여러 권 만들었기 때문에 식물의 종류와 특성에 대해서 많이 알았다. 고들빼기와 씀바귀는 대표적인 봄나물이다. 두 식물의 같은 점은 꽃잎이 작고 여러 갈래로 갈라지고 노란색이라는 점이다. 차이점은 고들빼기는 꽃 중앙의 꽃술이 노란색인데, 씀바귀는 꽃술이 검은 색이다. 잎으로도 구별할 수 있다. 고들빼기는 잎이 줄기를 빙 둘러 감싸는데, 씀바귀는 잎이 줄기를 감싸지 않는다. 출발점으로 돌아온 후에 (구)평창교를 건너갔다. 이제 우리는 강의 오른쪽 둑방길을 걸었다. 기온은 서서히 오르고 있었다. 그래도 덥지는 않고, 걷기에 상쾌한 봄날씨다. 걷기 시작한지 1시간 이상이 지나서 점심을 먹을 시간이다. 나는 전에 가본 냉면집으로 일행을 안내했다. 12시 30분에 냉면집에 도착하였다. 냉면을 주문하면 숯불에 구운 불고기가 서비스로 나온다. 가성비가 매우 높은 점심을 먹고 모두들 좋아했다. 식사 후에 커피를 마시러 중앙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공정무역 운동은 주로 개인의 소비 차원에서 이루어졌다. ‘각성’한 개인이 공정무역 제품 판매처를 알아보고 방문하여 물건을 사는 식이다. 공정무역 제품을 사는 소비행동은 ‘윤리적 소비’ 또는 ‘착한 소비’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근래에 개인이 아니라 공동체 차원으로 공정무역 운동의 질적 변화를 꾀하는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공정무역 마을운동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공정무역 마을운동은 2000년 영국의 작은 마을 가스탱에서 시작됐다. 그 뒤 이웃나라들로 퍼져 지금은 세계 35개 나라에 2,030개의 공정무역 마을이 있는데, 유럽에 95% 이상이 몰려 있다. 독일이 687개로 가장 많고, 영국(425개), 오스트리아(207개) 등이 뒤를 잇는다. 국제공정무역마을위원회가 제시하는 다섯 가지 기준을 달성하면 심사를 거쳐 공정무역 마을로 오른다. 심사의 기준이 되는 다섯 가지 기준은 1) 지방정부 및 의회의 지지 2) 지역 내 공정무역 제품 판매처 확보 3) 공동체에서 공정무역 제품 사용 4) 미디어를 통한 홍보와 대중의 지지 5) 공정무역위원회 구성 등이다. 지방정부의 지지와 지역 내 주민들의 참여를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답사 날자> 2021년 5월 11일 화요일 <답사 참가자> 이상훈 박순희 봉만호 서혜숙 신영란 오종실 이규석 최돈형 홍종배 모두 9명 <답사기 작성일> 2021년 5월 19일 수요일 이날 걸은 평창강 제6구간은 평창읍 상리 평화길 입구에서 시작하여 평창읍 응암리 응암굴 앞 펜션에 이르는 11km 거리다. 이날 우리가 걸은 답사길이 속한 지명은 상리, 중리, 하리, 유동리, 약수리, 응암리 등인데 이들은 모두 평창읍에 속한다. 이날 걸으면서 평창읍 시가지를 통과하였다. 평창군은 1읍과 7개면으로 구성된다. 평창군지에 나오는 자료 등을 조사하여 평창군에 대해서 약간 자세히 알아보았다. 먼저 년도별 평창군 인구수를 조사하여 <표1>을 작성하였다. 평창군의 인구수는 1967년 10만 명으로 최고치를 기록하였는데 이후 점점 줄어들어 2020년에는 4만을 겨우 넘기고 있다. 인구수 4만은 서울, 부산, 인천 같은 대도시의 1개 동의 인구수보다 적을 것이다. 도시의 팽창과 시골의 몰락은 우리나라가 장기적으로 해결해야 할 중요한 문제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된다. 평창군의 인구가 줄어든 가장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우리는 중간에 31번 도로를 건너지 않고 계속 남진하였다. 이 부근 평창강은 강폭이 매우 넓고 하중도(河中島, 강 한 가운데 있는 섬)가 보였다. 식생으로는 갈대와 버들이 많이 보였다. 조금 가다 보니 길이 좁아져서 차는 다닐 수가 없다. 조금 더 가니 이제는 사람도 가기 어려울 정도로 길이 좁아진다. 나는 며칠 전 사전답사 차 이곳에 다녀간 적이 있다. 지도상에는 길 표시가 없지만 갈 수는 있다. 한 사람이 겨우 다닐 수 있을 정도의 공간은 계속 이어진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가면 여만교 다리에 도달한다. 여만리는 이 구간 평창강의 동쪽 들을 말한다. 고려 때부터 양곡이 많이 나던 곡창지대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곡식이 만 명이 먹고도 남는다고 하여 ‘여만리(餘萬里)’라고 했다. 평창강가에 있어서 들이 넓고 길어서 ‘여마니’라고 했다는 설도 있다. 여만교를 지나 둑방길로 들어섰다. 우리는 강의 왼쪽 둑을 따라 걸어갔다. 강 건너편이 노산(魯山)이다. 노산의 높이는 해발 419m이지만 여만리 자체가 높은 지대라서 노산은 높아 보이지가 않았다. 그렇지만 노산은 평창의 진산(鎭山, 관아의 뒷산)으로서 전략적 요충지에 해당되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이길상 교수가 지난주 8월 19일에 ‘커피 세계사+한국 가배사’라는 제목의 책을 출간했다. 저자는 “고종이 아관파천(1896년)으로 러시아 공사관에 머무는 동안 커피를 즐긴 것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커피 역사라는 주장이 오랫동안 받아들여졌다”라면서 “고종이 커피를 좋아한 것은 역사적 사실이지만 커피를 최초로 마신 조선 사람일 가능성은 희박하다”라고 책에 썼다. ‘우리나라 커피 역사의 기원 고찰’이라는 논문을 발표한 이길상 교수는 천주교를 통해 한국에 커피가 들어왔을 거라고 본다. 한국에 부임한 프랑스인 베르뇌 주교가 1860년 홍콩 주재 파리외방전교회 극동대표부에 보낸 서신에 다량의 커피를 주문한 기록이 있다. 당시 파리외방전교회는 중남미와 동남아 포교에 커피를 활용했다. 베르뇌 주교가 주문한 커피가 조선 땅에 도착한 것이 1861년이었으므로 이때 주교 주변의 신자들이 조선인으로선 처음으로 커피를 마셨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길상 교수의 논문에 따르면 한국 커피 역사는 160년이나 되는 것이다. 커피는 이제 전통차를 제치고 전 국민이 애용하는 음료가 되었다. 필자가 사는 강원도 평창에서는 대부분 음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용항교를 건너면 주진리이다. 《조선지지》에 주진리(舟津里)라고 표시되어 있는 마을이다. 주나루라고도 부르는데, 나루 둘이 있으므로 두나루라 하던 것이 변하여 주나루가 되었다. 옛날에는 뱃터거리에서 나룻배로 사람과 우마차가 강을 건넜다. 그러다가 일제강점기 때(1934) 주진교가 놓였고, 80년대 초에 새 주진교가 건설되었다. 그렇다면 소년 이효석은 봉평에서 평창읍으로 갈 때 분명히 주나루에서 나룻배를 타고 강을 건넜을 것이다. 배를 타고 평창강을 건너는 소년 이효석을 상상해 보았다. 그의 작품 중에 배를 타고 강을 건너는 장면을 묘사한 글이 나오는지 궁금하다. 주진리에서 평창강 따라 동쪽으로 계속 걷다가 작은 하천을 만나 왼쪽 둑길로 돌아가니 주나루라고 쓰인 큰 비석이 나타난다. 공원 입구에 주진게이트볼장이라고 표시되어 있다. 비석의 아래에 주나루의 유래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주나루란 나룻배로 강을 건너다니던 뱃터거리를 말하는 이곳의 옛 지명입니다. 주변에는 선사시대부터 선조들의 주거지로 추정되는 유물인 토기, 돌 연모, 고인돌 등이 산재해 있고 앞산 용산(龍山)은 용산정(龍山亭)이라는 정자가 있었던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용항리 경로당이 오른쪽에 나타나자 용항교가 왼쪽으로 평창강을 가로지르고 있다. 다리 입구에는 효석문학100리길 제5구간 표시판과 안내도가 있다. 여기서 남쪽에 보이는 작은 고개를 넘어가면 후평리를 지나 노산을 거쳐서 평창읍으로 들어갈 수가 있다. 소년 이효석은 지금부터 100여 년 전에 지금 내가 걷는 걸을 걸었고, 내가 보는 산을 보았고, 내가 듣는 강물소리를 들었을 것으로 생각하니 감회가 인다. 나는 서울에서 친구들이 봉평으로 찾아오면 꼭 이효석 문학관으로 안내한다. 문학관에는 2명의 문화해설사가 근무하는데 단체 관광객에게는 해설해준다. 이효석(1907~1942)은 문학관 근처인 봉평면 창동리 남안동 681번지에서 출생하였다. 그의 부친은 진부면장을 했다. 그는 1914년에 평창읍에 있는 평창공립보통학교(지금의 평창초등학교)에 입학하였다. 봉평에서 평창읍은 거의 100리 길이므로 이효석은 초등학교에 다닐 때 평창읍에서 하숙을 했다. 이효석은 1920년에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유학하였다. 그는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지금의 경기고)를 1925년에 졸업하고 이어서 경성제국대학(지금의 서울대) 법문학부 영문학과를 1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