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창(唱)이란 목소리의 울림으로 시작되지만, 부르는 이의 마음가짐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이야기 하였다. 그래서 갑(甲)이 부르면 공감이 크나, 을(乙)이 부르면 그렇지 않은 현상을 보이는 것도 창자(唱者)의 마음가짐에 따라 다양한 소리 색깔이 나타나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하였다. 인천소재 무형유산 전수교육관 <풍류관>에서 첫 발표회를 열게 된 유춘랑은 어려서부터 가족들이 불러주는 서도의 소리들을 들으며 자라났다고 했다. 그만큼 환경적 영향은 누구에게나 중요하다는 점을 입증하고 있다. 우리 어린이들에게 어려서부터 좋은 음악을 들려주어야 하는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는 당위의 이유가 여기에 있음을 증명해 주고 있는 것이다. 유춘랑이 그가 지도해 온 제자들과 함께, 그리고 찬조 출연자들과 함께 무대]에 올린 주요 곡목들은 서도좌창, <초한가(楚漢歌>를 비롯해서 <초로인생(草露人生)>, <봉황곡(鳳凰曲)>, <전장가(戰場歌)>, <공명가(孔明歌)>, <장한몽(長恨夢)>, <영변가>, <연지도 가무> <맹꽁이타령&g
[우리문화신문=김광옥 수원대 명예교수] 상대를 믿는다는 한마디가 사람을 바꾸어 놓을 수 있다. 세종 14년(1432)에 황희가 나이가 많아 사직을 요청했을 때 세종이 하신 말씀이다. (황희가 고령을 이유로 사직하자 허락하지 않다) 영의정 황희가 사직(辭職)하여 말하기를, "엎드려 생각하건대, 잘못 태종께서 선택하여 후히 대우해 주신 은혜를 입어 여러 어진 이들과 섞이어 벼슬에 나아갈 수 있었으나, 수년 동안 죄를 마음으로 달게 받으면서 궁촌(窮村)에서 몸을 보전하고 있었더니, 하루아침에 착한 임금의 세상에 다시 거두어 쓰실 줄 어찌 생각이나 하였겠습니까. 그래서 그대로 우물쭈물하며 지금에 이르도록 애써서 관직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귀는 멀고 눈도 또한 어두워서 듣고 살피는 일이 어려우며, 허리는 아프고 다리는 부자유하여 걸음을 걸으면 곧 쓰러집니다. 더군다나 신은 올해의 생일로 이미 만 70살이 됩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신의 나이가 노쇠에 이른 것을 가엾게 여기시며, 신의 정성이 깊은 충정에서 나온 것을 살피시고, 유음(兪音)을 내리시어 직위에서 물러나게 허락하소서...."라고 하였으나, 윤허(允許)하지 아니하고, 비답(批答)하기를, "어려운 것을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인천(仁川)지방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서도 소리꾼 유춘랑 명창이 그의 제자들과 함께한 2025년 정례 《서도소리 발표회》 관련 이야기를 하였다, <서도 소리>란 말에서 <서도(西道)>는 우리나라 서쪽 38 이북의 서해안 지대를 의미하는 황해도와 평안남북도를 포함한 지역의 개념이고, <소리>는 가악(歌樂), 또는 성악(聲樂)이란 의미를 지닌 순수 우리말의 통칭이다. 그러므로 우리나라‘서쪽 지역에서 불러온 황해도나 평안도 지방의 노래’를 뜻하는 말이 된다. 지역의 노래로는 서울, 경기, 충청남북도 일부를 포함하는 <경기소리>도 있고, 호남의 <남도소리>도 있으며, 태백산맥을 중심으로 하는 <동부소리>, 그리고 <제주소리>도 있다. 이들 각 지역의 노래들은 그들의 독특한 언어를 구사하며 그 위에 가락이나 창법, 표현법, 장단, 멋스러움 등을 표출해 온 것이다. 오래전부터 인천시와 인근의 도서지방은 서도소리를 잘하는 소리꾼들이 많았다. 그러한 영향으로 인해 서도의 한(恨) 많은 소리를 좋아하는 애호가층도 다른 어느 지방, 어느 도시보다도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단가 <홍문연가(鴻門宴歌)>를 소개하며 그 연회장에서 항장(項莊)이란 장수가 칼춤을 추며 유방을 제거하려 했는데, 이것이 <항장무項莊舞>로 전해온다는 이야기, 한패공은 인품과 신의가 두터워서 장자방이나 번쾌(樊噲)와 같이 목숨을 걸고 그를 따르는 부하들이 많았다는 이야기, 항장무는 조선 후기, 무극(舞劇)의 하나로 무대에 올려졌는데, 이는 평안남도 선천지방의 연희물이 처음으로 궁중에서 공연된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였다. 또 《정재무도홀기(呈才舞圖笏記)》, 『교방가요(敎坊歌謠》. 《이왕직아악부기록》들을 통해서 대략적인 절차, 등장인물과 복식, 의물(儀物) 등을 알 수 있으며 음악은 <대취타(大吹)打>가 연주되었다는 점도 특징이라는 이야기. 또한 항장무에 출연하는 인물들로는 항우와 우미인을 비롯하여, 패공, 범증, 장량, 항장, 항백, 번쾌, 그리고 집사와 기수(旗手), 세악수(細樂手), 취고수(吹鼓手)등 등이 등장한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남도(南道)의 단가(短歌)와 관련한 이야기들은 여기서 잠시 쉬어 가기로 하고, 이번 주에는 인천(仁川)지방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서도 소리꾼, 유춘랑
[우리문화신문=김광옥 수원대 명예교수] 세종이 정치를 하며 신하들과 대화를 많이 하려 하고 일을 처리함에 신중히 하려는 노력은 여러 곳에서 보아왔다. 그 가운데 하나가 의론 끝에 결론에 이루지 못하는 경우다. 이때 몇 가지 대안이 나올 것이다. 다시 생각하여 훗날 재론하든가 아니면 그 안건을 일정기간 연기하든가 아니면 파기하든가 일 것이다. 먼저 ‘여경상량’을 실록에서 보면 전체적으로 많은 횟수는 아니나 세종 때 8번 나와 빈도수로는 조선시대 임금 가운데 가장 많다. <세종실록>에 보이는 내용의 개요를 보자. 1. 세종 7년 5월 14일: “장리 최맹온의 부정을 징계하자는 집의 김타 등의 상소문이다.” 2. 세종 7년 6월 2일: “좌의정 이원 등과 관리의 승급·수령 파면의 일을 의논하다.” 3. 세종 10년 5월 26일: “김효정이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범하는 것을 엄히 다스려야 한다고 하는 상소를 올리다.” 4. 세종 11년1월 4일: “중국 황제가 구하는 석등잔의 헌납 방법과 학문진흥책을 의논하다.” 5. 세종 12년 8월 13일: “현재 강경법의 《육전》에 기재를 허락지 않는다.” 6. 세종 14년 3월 15일: “상장소 제조 맹사성ㆍ권진ㆍ허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항우의 부하인 항장(項莊)이 칼춤을 추며 유방을 죽이려는 계획을 세웠으나 유방의 부하, 장자방에 의해 실패로 돌아갔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홍문연가>라는 단가의 노랫말에서 항우를 향해, “은혜를 망각하는 배은(背恩)이라든가, 또는‘망의(忘義)“라고 하는 배경도 알고 보면, 유방과의 경쟁 결과에 승복하지 못했기 때문에 받게 되는 비판이라 할 것이다. 그러므로 결과론적인 이야기이지만, 항우가 그의 부하를 통해 유방을 죽이려 했던 연회에서 유방이 살아날 수 있었던 결정적 요건은 무엇보다도 그의 사람 됨됨이, 곧 인품과 신의가 두터워서 목숨을 걸고 유방을 따르는 충성심 강한 부하들이 다수 존재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그 가운데는 특히 장자방의 역할이 커서 근거리에서 유방을 지켜주었고, 번쾌(樊噲)의 존재도 한몫했다는 점이다. 그런데 <홍문연가>라는 노래 속에는 잔치에 모인 무인들의 이름이 일일이 열거되지 않은 채, 주로 그들의 옷차림을 엮어 살벌한 분위기만을 띄우고 있어 아쉽다. 여기에 등장하는 대표적인 장수로는 나이 70살에 항우의 모사가 되어, 홍문연회에서 패공을 죽이도록 권한 범증(范增)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불볕더위가 이 같은데 성 쌓는 곳에서 감독하고 일하는 많은 사람이 끙끙대고 헐떡거리는 모습을 생각하니, 밤낮으로 떠오르는 생각을 잠시도 놓을 수 없다. 이러한데 어떻게 밥맛이 달고 잠자리가 편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이처럼 생각한다고 해서 속이 타는 사람의 가슴을 축여 주고 더위 먹은 사람의 열을 식혀 주는 데 무슨 보탬이 되겠는가. 따로 한 처방을 연구해 내어 새로 약을 지어 내려보내니, 나누어 주어서 속이 타거나 더위를 먹은 증세에 1알 또는 반 알을 정화수에 타서 마시도록 하라” 위는 《정조실록》 18년(1794) 6월 28일의 기록으로 정조 임금이 화성을 쌓는 공사장의 일꾼들이 더위에 지쳐 몸이 상할 것을 걱정한 나머지 더위를 씻어준다는 ‘척서단(滌暑丹)’ 4천 정을 지어 내려보냈다는 내용입니다. 오늘은 삼복의 마지막 말복(末伏)입니다. 가을로 들어선다는 입추가 지난 지 이틀이 되었고, 더위를 처분한다는 처서가 보름 밖에 남지 않았지만, 아직 혹독한 불볕더위가 온 지구촌을 뒤흔들고, 밤에는 열대야로 잠 못 들게 하는 날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요즘처럼 복지경(伏地境, 더위가 한창인 때)엔 자칫하면 열사병이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오늘은 가을이 시작된다는 24절기 열셋째 ‘입추(立秋)’입니다. 이제 절기상으로는 가을철로 들어서는 때지만 아직 불볕더위는 기승을 부립니다. 《고려사(高麗史)》에 보면 “입하(立夏)부터 입추까지 백성들이 조정에 얼음을 진상하면 이를 대궐에서 쓰고, 조정 대신들에게도 나눠주었다.”라고 나와 있는데 이를 보면 입추까지 날씨가 무척 더웠고 더위를 얼음으로 겨우 버티고 있음을 알려줍니다. 또 “입추에는 관리에게 하루 휴가를 준다.”라고 하여 된더위에 고생한 것을 위로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최근 기사에는 “'입추' 무더위 여전‥. 주말, 남부 또 폭우 최대 120mm”라는 기사가 보입니다. 얼마 전에도 물폭탄으로 재산 피해는 물론 인명 피해까지 일어나 사람들은 불볕더위와 물폭탄으로 이중 고생을 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영조실록》 113권, 영조 45년(1769년) 7월 7일 기록에는 “사문(四門)에서 영제(禜祭)를 행하도록 명하였는데, 장마가 졌기 때문이었다.”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여기서 ‘영제(禜祭)’는 입추 뒤까지 장마가 계속되거나, 오랜 장마로 고통이 심한 때 날이 개기를 빌던 나라의 제사로 ‘기청제(祈晴祭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더워도 너무 덥다. 여름은 원래 더운 것이지만, 지구온난화인가 뭔가로 더위도 추위도 극심할뿐더러 비가 내리면 물폭탄 수준이다. 올 여름들어 한낮의 수은주는 낮과밤 가리지 않고 섭씨 40도에 육박하는 날이 연일 계속되고 있다. 들리는 말에 따르면 우리나라가 동남아보다 더 덥다고들 한다. 시원한 곳이라고 하면 에어컨이 빵빵 돌아가는 집이나 사무실이 최고겠지만, 옛 선조들은 전기도 없던 시절에 여름을 어떻게 견뎠을까 싶다. 이열치열(以熱治熱)이란 말은 말 그대로 열로써 열을 다스린다는 말이다. 이무성 화백의 위 그림을 감상해보자. 한무리의 사람들이 물가에 솥을 걸고 불을 때고 있다. 솥에 불이 꺼지지 않도록 장작을 나르는 사람도 있다. 이 사람들은 왜 이 무더위에 가마솥에 불을 때는 것일까? 고것이 바로 이열치열과 관계가 있는 것이다. 더울지라도 한솥 가득 물고기를 잡아 매운탕을 끓여 먹는다면 구슬땀을 흘리는 가운데서도 무더위쯤 날려보낼 수 있다고 옛 사람들은 믿었던 것이다. 이런 것을 천엽(철렵)이라고 들었다. 천렵(川獵)이란 내 천(川)자와 사냥할 엽(獵)자를 쓰는 낱말로, 물가에서 사냥한다는 뜻이다. '물가에서 물고기를 잡아 매운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항우(項羽)와 유방(劉邦), 두 사람이 형제의 결의도 맺고, 진(秦)나라 수도인 관중에 먼저 들어가 공을 세우는 사람이 왕(王)을 하기로 언약했으나, 항우의 불이행으로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다는 이야기와 겸해서 약속은 하기는 쉽지만, 의무와 책임이 전제되어야 하는 대상이어서 이를 지키지 못한다면 신뢰를 잃고, 관계가 절연되기 쉽다는 점도 강조하며 “이미 정한 약속은 갚지 않은 부채”, “사람은 자기가 한 약속을 지킬만한 좋은 기억력이 필요하다”, “약속을 지키는 최고의 방법은 약속하지 않는 것”이라는 명언(名言)들을 소개하였다. 이번 주에는 항우의 부하인 항장(項莊)이라고 하는 무인(武人)이 홍문(鴻門) 연회에서 검무(劍舞), 곧 칼춤을 추며 유방을 죽이려던 계획은 장자방에 의해 실패로 돌아갔다고 이야기한다. 앞에서도 잠시 말한 바와 같이, 항우와 유방, 두 장수는 각기 다른 지방에서 일어나 세력을 키우고 있었는데, 초회왕이 제의한 대로 먼저 들어가 공을 세우는 사람이 왕을 하기로 합의하고 군사들을 이끌고 진(秦)나라의 수도인 관중(關中)으로 들어갔다. 결과는 유방의 승리로 끝이 났지만, 왕위 자리를 놓고는 순조롭게 약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