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과거 남사당패의 은거지로 밝혀진 곳은 경기도 안성과 평택, 충남 당진, 대전시 대덕, 전남 강진과 구례, 경남 진주와 남해, 황해도의 송화와 은율 등지로 알려져 있다. 이곳은 대부분 물산이 집결되고, 유통되던 시장과 관련이 깊은 지역이어서 많은 사람이 모여들어 연희의 판이 성공될 확률이 높았던 곳이었다. 지난주에는 남사당의 제6종목 <인형극> 곧 <덜미> 이야기를 하였다. 이번 주에는 지운하 명인 어떻게 풍물굿을 배우게 됐는지 얘기를 해 보려 한다. <남사당놀이>의 주 내용은 지배층 구조에 항의하거나, 그들의 횡포에 저항하는 이야기가 중심을 이루고 있는데, 이 종목은 1964년도에 처음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가 1988년, 남사당의 나머지 5종목 모두를 갖추게 되면서 그 이름도 <남사당놀이>로 지정받았다. 그러나 문화재 지정, 35여 년이 지난 현재, 이곳에도 심각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구체적으로 지적한다면 새로운 남사당 예인들의 발굴이나 젊은 예인들의 양성 사업이 활발치 못해서 점점 침체하고 있다는 점이다. 전통음악계나 춤, 연희계가 공통으로 겪고 있는 문제들이어서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남사당놀이 6종목 가운데 5종목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다. 판굿과 개인놀음이 일품이며 중부지방의 지역적 특색이 잘 나타나 있는 ‘풍물놀이’를 시작으로 ‘버나돌리기’와 땅재주 넘는 묘기의 ‘살판’, 가슴을 조이며 탄성을 지르게 되는 ‘줄타기’, 그리고 ‘덧뵈기’로 통하는 ‘탈춤’ 등을 소개하였다. 남사당패가 앞에서 말한 여러 종목을 완벽하게 준비하였다고 해서 마음대로 어느 마을이나 출입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반드시 허가받고 마을의 큰 공터나 장터에 들어가 밤새워 놀이판을 벌일 수 있었는데, 그 연희 장소는 주로 장터나 마을 행사, 등에 초청되어 공연을 벌였던 것이다. 현재까지 남사당패의 은거지로 밝혀진 곳은 경기도 안성과 평택, 충남 당진과 대전시 대덕, 전남 강진과 구례, 경남 진주와 남해, 황해도의 송화와 은율 등지로 알려져 있다. 이 지역은 대부분 물산이 집결되고, 유통되던 시장과 관련이 깊은 지역이어서 장소만 허락된다면 연희판의 성공은 큰 문젯거리가 되지 않았다고 한다. 이번 주에 소개할 마지막 종목 ‘인형극’ 또는 ‘꼭두각시놀음’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인형극으로 남사당패 연희자들은 ‘덜미’라고 불러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남사당패의 조직을 이야기하였다. 대표 격인 ‘꼭두쇠가 있고, 그 밑으로 ’곰뱅이쇠‘ㆍ’뜬쇠‘ㆍ’가열‘ㆍ’삐리‘가 있는데, 각각 엄격한 지위와 실력을 인정받는 용어들이란 이야기, 추운 겨울철은 자체적으로 실력을 기르고, 부족한 기술을 연마하는 준비의 시간이라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이번 주에는 남사당놀이 6종목을 간단하게 알아보도록 하겠다. 앞에서도 이야기한 바와 같이, 남사당놀이의 첫 번째 놀이는 <풍물놀이>이다. 여기서는 판굿과 다양한 개인놀음이 일품이다. 중부지방의 지역적 특색이 잘 나타나 있으며, 대체로 꽹과리, 징, 장고, 북, 소고, 무동, 호적, 기수, 잡색(雜色) 등이 참여한다. 어느 마을이나 사물(四物), 곧 꽹과리, 징, 장고, 북이 있고, 이것을 잘 치는 사람들이 있겠으나, 남사당놀이와 같은 놀이집단을 마을에 끌어들임으로써 동네의 남녀노소 모두가 한바탕 놀이판을 통해 화합하고 친목을 다지는 계기가 되었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 지배층과 피지배층이 마음의 화합을 이루는 일은 절대적으로 필요했기에 이른 봄부터 추수가 끝난 늦가을까지는 온 나라가 잔치마당이 되었다. 풍물놀이에 이어 남사당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남사당놀이는 1964년, <인형극>이란 이름으로 국가무형문화재에 지정되었고, 1988년에는 6종목이 포함되어 <남사당놀이>로 재지정되었다. 2009년에는 유네스코 인류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에 올랐으나, 현재는 그 전승이 활발하지 못해 안타깝다고 이야기하였다. 다행스럽게 인천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던 지운하, 남기문 등이 <인천 남사당놀이보존회>를 설립하였고, 특히 제26회 부평풍물축제에서 6종목 전 과정을 선보였는데 일반 시민들의 반응이 대단했다는 이야기도 하였다. 첫 번째 종목인 <풍물놀이>는 판굿, 그리고 다양한 개인놀음이 일품이다. 특히 남사당패 풍물놀이의 개인놀음은 각 악기의 연주력이 돋보이는 대목으로 지역적 특색이 잘 나타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풍물을 구성하고 있는 면모를 보면 소리가 크고 강렬한 꽹과리(小金)를 비롯하여 징(大金), 장고(杖鼓), 북(鼓), 소고(小鼓), 무동(舞童), 호적(胡笛), 기수(旗手), 잡색(雜色) 등이 편성되는데, 그 바탕은 경기지방과 충청지방의 풍물놀이를 중심으로 한다는 점이다. 참고로 남사당패의 조직은 어떠한가? 하는 점을 먼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제26회 부평 풍물축제>에 초대되어 남사당의 고유 6종목 완판공연을 펼친 <인천 남사당놀이보존회> 이야기와 이들의 공연에 운집해 있던 관객들이 대단한 반응을 보였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이번 주에는 ‘남사당(男寺黨, 男寺堂)놀이’의 역사와 특징적 활동 등에 관한 이야기를 이어가 보기로 한다. 앞에서도 잠깐 말한 바와 같이 남사당이라는 말에서 남(男)이란 남자, 곧 사내라는 의미로 해석되어 남성들만의 조직이란 점을 알 수 있다. 이 조직이 딱히 언제부터 존재해 왔는지는 분명치 않다. 다만 남사당패, 사당패, 광대패, 솟대쟁이패, 초라니패, 풍각쟁이패 등과 같은 다양한 놀이패들이 있었다는 점, 이들은 무리를 지어 다니며 다양한 소리, 악기, 춤, 연희의 재주를 펼치며 살아왔다는 점은 분명하다. 이러한 유랑 예인집단 가운데는 재승(才僧)계통, 곧 불교와 관련된 연희집단도 있었는데, 《고려사(高麗史)》와 같은 문헌에 따르면, 고려시대에는 불교에 속한 무리이면서도 장사치들과 물건을 매매하고, 잡인(雜人)들과 술을 마시거나, 속인(俗人)의 복장을 하고 다니면서 절을 짓는다는 명분 아래 악기를 연주하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천년가무악》의 대표, 최영희의 광대 인생을 소개하였다. 춤꾼으로 시작해서 소리꾼의 영역까지 아우르고 있는 그는 2004년, <천년가무악>이라는 연희단을 창단하면서 부평풍물대축제, 잔치마당과 함께 나라 밖 공연 프로그램을 진행해 왔다는 이야기, ‘명인 명창전’에 초청된 그는 춤으로 시작해서 소리, 연기까지 섭렵한 연예인데, 경서도 명창들에게 소리를 배웠고, 황해도 무형문화재 난봉가와 산염불의 이수자로 활동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또 2016년에는 <대한민국 평화통일국악경연대회>에서 소리꾼으로 명인부 대통령상을 받았고, 국악뮤지컬로 ‘탁영금이나 수표교 연가, ’사자가 물고 간 꽃신‘ 등을 무대에 올려 그 실력을 인정받았다는 이야기, 최영희는 춤과 노래, 소리극의 파수꾼으로 전통문화를 최일선에서 지켜가는 자랑스러운 예인이라는 이야기도 하였다. 이번 주에는 <26회 부평 풍물축제>에 초대된 <인천 남사당놀이보존회>가 펼친 6종목 완판공연 이야기를 소개해 보기로 한다. 2022년 10월 1일 부평역 앞에는 대로를 막아 교통을 통제하고, 대축제를 마련했는데, 축제에 초대된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작고한 이매방 명무의 제자, 김묘선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다. 승무의 국가무형문화재 보유자 인정에서 김묘선이 탈락하여 무용계와 국악계, 문화계가 시끄러웠다는 이야기, 나이 든 무용수나 음악인들에게 실기 평가보다는 정통성과 전승활동, 긍정적 영향 등이 중요하다는 이야기, 대중화와 세계화를 위해 노력해 온 김묘선의 실력이나 정통성이 인정받기를 응원한다는 이야기도 하였다. 이번 주에는 춤꾼이자, 소리꾼으로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연희국악단 <천년가무악>의 대표, 최영희의 광대 인생을 소개해 보기로 한다. 그는 춤꾼으로 시작하여 소리꾼의 영역까지 아우르고 있다. 최영희 명인은 2004년도에 무용과 소리, 타악 그리고 무속 분야까지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는 <천년가무악>이라는 연희국악단을 창단하면서 점차 그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그 이후, 자연스럽게 잔치마당의 풍물패와도 공연을 함께하거나 봉사활동을 하면서 관계를 돈독하게 유지해 왔다. 그 대표적인 활동으로는 2007년 부평풍물대축제 기획공연에 함께 참여한 것이 계기가 될 것이다. 잔치마당과 함께 한 나라 밖 공연으로는 2018년 북유럽 라트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잔치마당 소극장》의 기획 프로그램으로 김묘선의 승무 이야기를 하였다. 1900년대 초, 원각사에서 <춘앵전>, <검무>와 함께 <승무>를 추었다는 증언이 있는 점으로 이 시기에 이미 대중 예술로 확산했다는 점 등을 이야기하였다. 이번 주에는 춤꾼 김묘선의 활약상에 관한 이야기를 해 본다. 그는 한 시대를 승무와 살풀이의 명인으로 국가 무형문화재의 예능보유자로 활동하다가 세상을 뜬 이매방 명무의 제자이다. 스승의 자리를 이어받는 승무의 국가무형문화재 보유자 인정 예고가 2019년, 9월 초에 있었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예능보유자 0순위였던 김묘선이 탈락한 것이다. 전통 무용계는 물론이고, 국악계, 문화계가 시끄러웠다. 보통은 예능보유자가 세상을 뜨면 그 뒤를 잇는 자리는 전수조교 가운데서 뽑아 왔으나, 승무의 경우에는 유일한 전수조교인 김묘선이 배제되고, 그 아랫급인 이수자 가운데서 한 사람이 예능보유자로 인정받게 된 것이다. 어떠한 필연이 존재하는지는 구체적으로 알 수 없지만, 무형문화재 전승제도에 관한 필자의 의견은 그가 한 분야에서 얼마나 많은 활동을 해 왔는가 하는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잔치마당에서 활동하고 있는 오승재, 신희숙, 이새봄 단원을 소개하였다. 오승재는 타악기 전공으로 <우도농악>과 <진도 북놀이>, <남사당놀이>,《잔치마당》단무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핵심단원이고, 행정 팀장 신희숙은 잔치마당의 기획공연을 운영해 온 문화 행정통으로 성실하고 책임감이 강한 직원이고, 이새봄은 어린이 국악극 <금다래꿍>의 배우, 퓨전 국악뮤지컬 <탈>의 작가 겸 연출, 출연까지 맡고 있는 능력있는 단원이란 이야기를 하였다. 이번 주에는 국악전용극장인 <잔치마당 소극장>의 기획 프로그램이었던, ‘명인 명창 초청’ 관련한 이야기를 시작해 보도록 하겠다. 앞에서도 말한 바 있듯이, 인천지방에서 전통음악 관련 공연이나 춤, 또는 전통연희의 명인명창을 초대하여 프로그램을 진행한다는 기획은 무대의 조건이나, 출연자 선정이나 섭외과정의 문제에서 말처럼 쉽게 이루어지기 어려운 상황이다. 하지만, 그렇게 어려운 상황에서도 <잔치마당 소극장> 명인명창전을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었다. 그 결과 2013년에 시작된 제1회 명인명창전은 인천과 관련있는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8도 아리랑 부르기 축제> 이야기와 코로나 상황에서 유튜브 중계가 예상 밖으로 반응이 좋았다는 이야기, 그리고 잔치마당의 유일한 창업 공신 김호석 부단장을 소개하였다. 김호석은 진도 북놀이와 남사당놀이, 부평구 연합 풍물단의 강사와 단장, 인천지역의 청소년 풍물단, 옹진군, 연평도, 백령도, 등 외지를 순방하며 풍물을 지도해 오고 있다는 이야기도 하였다. 이번 주에는 잔치마당에서 활동하고 있는 오승재, 신희숙, 이새봄 단원을 차례로 간략하게 소개한다. 먼저, 오승재 단원은 국악의 타악기를 전공한 사람으로 교육대학원을 졸업하였다. 오래전에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제17호인 <우도농악>의 설장구 예능과 동 제18호 <진도 북놀이>의 예능을 이수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국가무형문화재 제3호 남사당놀이의 전수자로 활동하면서 전통연희단《잔치마당》의 단무장으로 서광일 단장을 도와 소극장을 운영하고 있는 핵심단원이다. 현재 부평구 부개1동과 십정2동, 그리고 산곡동의 동 사물놀이팀의 지도강사를 맡고 있으며 열심히 지도하는 강사로 정평이 나 있다. 오승재는 잔치마당과 인연을 맺기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