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슬옹 교수] 1506년(연산 12년),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한 뒤 가장 큰 한글 사용 탄압 사건이 벌어졌다. 연산군이 포악한 정치를 펼치자, 백성들은 참지 못하고 한글로 임금의 비행을 적어 폭로했다. 그 일에 분개한 연산군은 즉시 사대문 출입을 통제하고 한양 도성 안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글을 쓰는 사람과 쓰지 않는 사람으로 구분하게 했다. 그리고 만약 한글을 쓰는데 신고하지 않는 사람, 그것을 알고도 고발하지 않는 사람을 엄히 다스린다는 방을 붙였다. 한글을 가르치지도 말고 배우지도 말며, 이미 배운 사람도 쓰지 못하게 한 것이다. 더 나아가 한글로 뒤친(번역) 책을 모두 불사르라고 명을 내렸다. King Yeonsangun Bans the Use of Hangeul In 1506 (the 12th year of King Yeonsan’s reign), one of the most severe crackdowns on the use of Hangeul since its creation by King Sejong. When King Yeonsangun ruled with tyranny, the people could no longer tole
[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집앞 뜰에 있는 모과나무를 한참 바라보았습니다. 하루 사이 눈에 띄게 자라 있었습니다. 가지마다 난 잎들이 수줍게 고개를 내밀고 있었는데, 그 잎을 손끝으로 살짝 스치자 사르르 닿는 느낌이 참 좋았습니다. 그 때 떠오른 말이 바로 ‘보드레하다’입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보드레하다’를 '꽤 보드라운 느낌이 있다'라고 풀이합니다. 여기서 눈여겨볼 말은 ‘꽤’입니다. 아주 물러 흐물거리는 것이 아니라, 적당히 부드러워서 기분 좋게 느껴지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그래서 ‘보드레하다’라고 하면 단순히 만져지는 감촉을 넘어서, 마음까지 편안해지는 알맞은 부드러움이 함께 떠오릅니다. 우리는 흔히 ‘부드럽다’라는 말을 많이 씁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보드레하다’에는 그보다 한결 더 살결 같은 따뜻함과 살가움이 담겨 있습니다. 너무 세지도 않고, 그렇다고 너무 여리지도 않은, 딱 좋은 느낌. 봄날 갓 돋아난 잎사귀가 바로 그런 모습입니다. 지금 막 나온 잎을 보면, 아직은 바람에도 살짝 흔들리고 햇볕에도 조심스레 몸을 맡깁니다. 그렇지만 그 잎은 단지 여리기만 한 것이 아니라,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첫걸음을 내딛고 있는 중입니다. 그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풍물과 함께 살아온, <남사당놀이> 지운하 명인의 입문(入門) 70돌을 기념하는 공연 관련 이야기를 하였다. <남사당(男寺黨)놀이>는 국가가 지정한 무형유산의 한 종목이며, 평생을 몸담아 온 그를 위하여 동료와 후배, 제자들이 서울과 인천의 각기 다른 공연장에서 기념공연을 마련했다는 이야기, 그는 어려서부터 인천 도화동 풍물패의 상쇠였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으며 자랐는데, 1950년대 말, <전국농악경연대회>에서 소속 단체가 대상을 받을 때, 어린 지운하는 12발 상모를 연출하여 최고의 인기상을 수상하였다는 이야기, 결국 그것이 계기가 되어, 인천 <대성목재> 농악단에서 활약하게 되었고, 이후 <남사당-男寺黨>에 입단한 뒤, 70여 년 세월을 다양한 기, 예능들을 익히면서 지내 왔다고 했다. 공연 당일, 예악당 무대의 마지막 순서는 <흥, 멋, 한의 놀판>이었다. 이 대형 무대, 전체를 지휘하는 지운하 상쇠를 비롯하여 그 판굿에 참여한 모든 출연자의 기량이나 율동은 말 그대로 신명의 한판 무대였다. 특히, 이날 무대에 우정 출연자도 매우 인상적이다
[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집앞 뜰에 있는 모과나무가 며칠 사이 몰라보게 달라졌습니다. 겨우내 마른 뼈처럼 앙상하던 가지 끝에 아기 손톱보다 작은 연둣빛 잎사귀들이 올망졸망 돋아난 것이지요. 그 보드라운 잎들이 차가운 바람에 파르르 떨리는 것을 보고 있자니, 가슴 한구석이 뭉클해지면서도 기특한 마음이 앞섭니다. 사람들은 흔히 꽃이 피는 것을 시샘하는 추위만을 떠올리지만, 참일 이 무렵에 부는 바람은 이제 막 기지개를 켠 저 여린 잎사귀들조차 샘을 내며 매섭게 몰아치곤 합니다. '잎샘'은 봄에 잎이 나올 무렵에 찾아오는 추위를 이르는 말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꽃샘'이나 '꽃샘추위'와 짝을 이루는 말로, 이 둘을 한데 묶어 '꽃샘잎샘'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옛 어른들은 이 무렵 추위가 얼마나 매서웠던지 "꽃샘잎샘에 설늙은이 얼어 죽는다"라는 말을 남기기도 하셨지요. 이는 변덕스러운 봄날의 추위가 한겨울 못지않게 매서우니 마음 놓지 말라는 가르침이자, 새 생명이 돋아나는 과정이 결코 쉽지만은 않다는 자연의 깊은 뜻이 담겨 있습니다. 모과나무의 여린 잎이 잎샘을 견디며 짙은 풀빛으로 익어가듯, 우리 삶도 무언가 자라날 때마다 시린 바람을 맞기 마련입니다. 새로
[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얽히고설킨 나날의 시끄러운 소리를 뒤로하고 깊은 골짜에 들어서면, 멀리서부터 들려오는 물소리가 마음을 먼저 씻어내립니다. 느긋하게 흐르던 물줄기가 갑자기 좁아지거나 얕아지는 곳, 그곳에서 물은 비로소 제 목소리를 드높이며 하얗게 부서집니다. 우리는 흔히 어려움 없고 즐거운 삶만을 바라지만, 정작 우리 얼이 가장 깊은 울림을 만들어내는 때는 삶의 바닥이 드러나거나 거친 돌멩이를 만났을 때일지도 모릅니다. 거침없이 흐르다 부딪히고 깨지면서도 끝까지 멈추지 않는 그 힘찬 물결을 마주하며, 사람들은 모두 삶을 배우곤 합니다. '여울'은 강이나 바다의 바닥이 얕거나 폭이 좁아서 물살이 세게 흐르는 곳을 뜻하는 토박이말입니다. 깊은 곳에서는 고요하고 흐름을 어림하기 어렵던 물이, 여울을 만나면 갑자기 빨리 흐르며 거칠게 소용돌이칩니다. 이때 물은 바닥의 돌멩이와 끊임없이 부딪히며 하얀 거품을 일으키고, 그 과정에서 산소를 머금어 더욱 맑고 깨끗해집니다. 곧, 여울은 물에게 있어서는 어려운 곳이자 스스로를 맑히고 생명력을 되찾는 힘이 넘치는 탈바꿈의 장소입니다. 이 말은 그저 땅모양의 특징만을 일컫는 것이 아니라, 걸림돌을 만났을 때 비로소
[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창가에 앉아 저무는 해를 바라보다 보면, 문득 아끼던 기억들이 바다 끝 너머로 몸을 숨기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바로 어제 일처럼 뚜렷했던 얼굴들이 시간의 먼지에 쌓여 모습만 남은 채 흔들리는 모습은, 마치 멀리서 깜빡이는 등대 불빛을 닮았습니다. 잡으려 하면 할수록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그 아스라한 그림자들을 붙잡아두고 싶어 우리는 마음의 눈을 가늘게 뜨곤 합니다. 바쁜 나날에 가려져 잊고 지냈던 마음속 풍경들이 이토록 위태롭게 남아 있었다는 사실이 새삼 마음 한구석을 아리게 만듭니다. '가물거리다'는 '불꽃이나 빛 같은 것이 꺼질 듯 말 듯 자꾸 약하게 흔들리다' 또는 '정신이나 기억이 흐릿해지다'라는 뜻을 지닌 우리말입니다. 이 말의 말밑을 생각해보면 작고 여린 움직임을 나타내는 '가물'에 같은 움직임이 되풀이된다는 뜻의 '-거리다'가 붙어서 만들어졌을 것입니다. 단순히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라지지 않으려고 마지막까지 힘을 다해 깜빡이는 생명의 힘이 담긴 표현이기도 합니다. 빛이 완전히 꺼지기 전의 그 간절한 깜빡임, 혹은 잠들기 바로 직전 꿈결 같은 상태를 이보다 더 섬세하게 나타낼 낱말은 없을 것입니다. 우리 할아
[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눈깜짝할 사이에 답을 건네는 지은슬기(인공지능)과 눈길을 사로잡는 짧은 움직그림들이 넘쳐나는 요즘, 우리는 저도 모르게 '빠름'이라는 홀림에 빠져 살아가고 있습니다. 남보다 앞서지 못하면 뒤처질 것 같다는 마음졸임에 쫓겨 설익은 열매들을 서둘러 거두느라 스스로를 들볶기도 하지요. 하지만 우리가 서두르지 않아도 철은 어김없이 바뀌고,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그 고요한 흐름 속에서 저마다의 빠르기로 부지런히 제 길을 가고 있습니다. 저는 오늘, 이 조급한 발걸음들을 잠시 멈추고 내 삶의 소중한 조각들을 가만히 붙잡아둘 낱말 하나를 꺼내 봅니다. 바로 '적바림'입니다. 본디 '적바림'은 나중에 참고하기 위하여 글로 간단히 적어 두는 일, 또는 그 기록을 뜻합니다. 이는 대단한 외침이나 시끌벅쩍한 소문 없이도 세상의 밑바탕을 바꾸어 놓는 '시나브로'의 힘과 닮아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한 번의 투자로 큰 부자가 되거나 짧은 공부로 실력이 부쩍 늘기를 바라며 '한 방'이라는 끝에만 목을 매기도 하지만, 사실 우리 삶의 무르익음은 그렇게 벼락처럼 찾아오지 않습니다. 수많은 깨달음이 시나브로 쌓여 커다란 흐름을 만들듯, 오늘 내가 읽은 글 한
[우리문화신문=김슬옹 교수] 1485년(성종 16년)에 호조 판서 이덕량에게 종로 시장 상인들의 한글 투서가 전해졌다. 영의정부터 판서까지 고위 관리들이 종로의 도로 정비 사업을 한다며 제 잇속을 챙기느라 백성들을 괴롭힌다는 내용이었다. 이덕량은 그것을 읽고 곧바로 성종에게 보고를 올렸다. 이에 성종은 판내시부사 안중경과 한성부 평시서 제조 등을 보내 상인들의 요구 사항을 듣게 했다. 이 사건으로 당시 하층민에 속한 상인들도 쉽게 한글을 배울 수 있었으며, 한글이 널리 보급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Merchants in Jongno Criticize the Authorities Using Hangeul In 1485 (the 16th year of King Seongjong’s reign), a petition written in Hangeul by merchants from the Jongno market was delivered to Lee Deok-ryang, the Minister of Finance. The petition criticized high-ranking officials, from the Prime Minister to the Min
[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꽃샘잎샘이 옷깃을 여미게 하지만 어느덧 짙어진 봄기운이 땅의 틈새마다 삶의 숨결이 차오르는 요즘입니다. 차가운 겨울을 지나온 탓에, 세상이 건네는 다정한 손길 하나에도 마음이 쉽게 흔들리곤 하지요.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사물과 사람들 사이에는, 사실 우리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살가운 온기가 가득합니다. 오늘은 닿는 것마다 정겨운 숨결을 불어넣는 우리말, '살갑다'를 통해 우리 삶의 결을 다시금 톺아보려 합니다. '살갑다'는 참으로 여러 가지 낯빛을 지닌 낱말입니다. 먼저 마음씨가 부드럽고 상냥할 때 우리는 이 말을 씁니다. 살가운 정을 나누는 사이란, 상대의 허물을 탓하기보다 그 마음의 결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깊이에서 피어납니다. 또한 물리적으로 닿는 느낌이 가볍고 부드러울 때도 살갑다고 말합니다. 살랑이는 봄바람이 뺨을 스치듯, 그 촉감이 마음에 닿을 때 우리는 비로소 평온을 느낍니다. 때로는 오랫동안 머문 집이나 물건처럼, 정이 듬뿍 든 대상에게도 이 말을 건넵니다. 더 나아가 속이 너르고 넉넉한 대상에게도 쓰이니, 결국 살갑다는 것은 바깥의 차가움을 이겨내고 내면의 따스함을 밖으로 길어 올리는 모든 정성을 뜻하는 셈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산타령> 전승에 진력(盡力)하고 있는 방영기 명창의 발표회 이야기를 하였다. 이 종목은 1960년대 말, 국가 무형유산으로 지정된 종목이란 점, 그는 전국 명창대회에서 동(同) 종목으로 대통령상을 받으며 “매해 개인 발표회를 열어 보답하겠다는 결심”을 지금까지 실행해 오고 있다는 점, 어린 시절, 남달리 춤과 소리를 좋아해 이를 배우려 할 때, 집안 어른들의 반대가 심했으나, 자신의 주장을 존중해 준 부모님과 그리고 당대 으뜸 명인 명창에게 배울 수 있었던 계기가 오늘의 자신을 있게 했다는 이야기도 하였다, 그밖에 국악인으로는 드물게 성남 시의원, 경기 도의원을 지내면서 관련하여 <성남 아트센터 건립>이나, <성남 시립국악단> 창단 등도 끌어냈다는 이야기도 전했고, 현재 그는 국가무형유산 선소리 산타령의 <전승교육사>로 활동하면서 <이무술 집터 다지는 소리 보존회> 회장, <방영기 국악연수원>을 운영하면서 시민들에게 <경기소리>, 특히 <경기 산타령>이 어떤 노래인가? 하는 점을 직접 노래와 강의를 통해, 그리고 무대 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