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위 내용은 엘리엇이 황무지라는 시에서 읊조린 내용입니다. “일화즉사(日花即死)”란 말이 있는데 이는 하루 피고는 바로 떨어지는 꽃을 의미합니다. 꽃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 양귀비라고 합니다. 어린 시절 어머니는 텃밭 쑥갓 밭에 양귀비를 몇 뿌리 심으셨습니다. 쑥갓과 양귀비의 생김새가 비슷하여 발각될 염려가 적었기 때문이지요. 물론 양귀비는 모르핀이라는 마약 성분의 주원료이지만 의료시설이 변변치 않았던 시절에는 가정상비약으로 양귀비만 한 것이 없었습니다. 특히 배앓이에는 특효였던 것으로 기억하니까요. 가끔 양귀비꽃을 보았는데.. 참으로 예뻤습니다. 문제는 하루만 지나면 꽃이 지는 일화즉사의 꽃이라는 것이지요. 그 짧은 생의 붉음이 꽃의 아름다움을 배가시켰는지 모를 일입니다. 지금 교정에 목련이 막 꽃망울을 터뜨리려 하고 있습니다. 봄의 순결 목련을 보고 있노라면 가슴이 벅차고 숨이 가빠옵니다. 참으로 멋진 봄날의 한 장면이 결코 가볍지 않은 이유이지요. 문제는 그 목련이 그리 오랜 감상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올해는 평년보다 열흘 정도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그릇은 인류 문화와 그 궤를 같이합니다. 아마도 인류가 처음으로 만들어 쓴 그릇은 나뭇잎 이었을 것이고 그것이 목기로 연결된 것이 아닐까합니다. 비교적 널리 분포하고 작업이 쉽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목기는 썩어 없어져 옛 모습을 추측조차 하기 어렵습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그릇이 썩지 않는 토기가 주류를 이루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한때는 바가지를 그릇으로 쓰기도 했고 플라스틱이나 놋으로 주발을 만들어 쓰기도 했습니다. 오랜 역사를 갖고 있으면서도 아름다우며 현재에도 실용품으로 예술로 각광을 받고 있는 것은 청자와 백자와 같은 도기입니다. 대부분의 그릇이 음식을 담거나 보관하는 용도라면 또 다른 그릇 옹기는 숨을 쉬기 때문에 음식을 숙성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옹기는 거칠고 투박하지만 기품이 있고 실용적이면서도 예술성이 짙게 배어 있습니다. 그냥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진흙이 옹기장이가 손으로 주무르고, 내려치고, 빙빙 돌리고, 쓰다듬고, 어루만지는 과정을 통해 형태를 갖추어 갑니다. 그리고 1,200도가 넘는 가마에서 구워져 옹기로 탄생하는 것이지요. 옹기장이의 수고와 펄펄 끓는 가마에서의 연단이 없다면 옹기는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훌륭한 수행자는 큰 깨달음을 얻지만 겉으로 그것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중간 수행자는 처음에는 부지런히 정진하지만 중간에 포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급 수행자는 수행도 하지 못하면서 큰 깨달음을 얻은 듯 큰 소리로 으스댑니다. ‘진수무향(眞水無香) 진광불휘(眞光不輝)’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참된 물은 향기가 없고 참된 빛은 반짝이지 않는다는 말씀이지요. 가장 문제를 많이 일으키고 사소한 시비에 휘말리는 부류는 태권도 1단입니다. 그들은 자기의 조그만 능력을 자랑하지 못해 안달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태권도 4,5단이 되면 좀처럼 싸움에 휘말리지 않습니다. 그 깊은 능력을 사소한데 써야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지요. 진정한 능력자는 큰 성공을 거둔 이후라도 자신의 신념을 바꾸지 않으며 겸손함으로 평상심을 유지합니다. 야단스럽게 남 앞에 나서지 않고 자신의 일을 잊지 않으며 칭찬에 호들갑이 없고 남을 대할 때 가식이 없습니다. 남에게 보이기위함보다 자신에게 늘 충실하고 화려한 횃불보다는 은은한 촛불로 참된 삶을 살아갑니다. 진수무향에서 두 글자를 따서 진향(眞香)이라고 이름한 기생이 있습니다. 그는 시인 백석을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예로부터 전설상의 동물들이 있습니다. 용과 봉황, 기린, 현무, 이런 무리의 동물들이지요. 용은 임금을 상징하기 때문에 임금을 가리킬 때 자주 쓰입니다. 용안, 용포, 용상이라는 표현이 그러하지요. 주작 곧 봉황은 상서롭고 아름다운 상상속의 새입니다. 이 봉황이 천자의 상징으로 쓰였던 것은 봉황이 항상 잘 다스려지는 나라에 나타난다고 믿었기 때문이지요. 외뿔이 달린 기린은 장차 위대한 사람이 나타날 것을 예언한다고 믿었지요. 상서로운 동물의 대명사이고 좋은 의미로 쓰이니 인제 기린면이 바로 이 기린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용이나 봉황, 기린이 아무리 상서롭고 아름답다고 하더라도 백성들을 이롭게 하는 것은 소와 말보다 못하다는 사실입니다. 단지 사람들이 평범한 것의 고마움을 알지 못하고 신기하고 기이한 것만 추종하는 것이 문제이지요. 우린 가끔 기이하고 특별하고 비싼 음식에 열광합니다. 샥스핀이나 곰발바닥처럼 고급 요리도 있지만 모기눈알 스프, 독거미 구이, 곤충 초밥 등등의 기상천외한 것들도 있습니다. 어쩌면 평생 몇 번 만나지 못할 음식을 귀히 여기고 매일 먹는 음식인 밥을 소홀이 여긴다면 결코 옳은 판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9월말 선운사에 가면 꽃무릇이 무리지어 피어있는 아름다움에 심취할 수 있습니다. 꽃무릇과 상사화는 다른 종류의 꽃이지만 잎이 지고 난 뒤에 꽃대가 올라와 잎과 꽃이 만날 수 없음은 같습니다. 그리하여 서로 볼 수 없으니 상사화라고 이름 지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순서에 있습니다. 꽃이 먼저 피었다 지는 것이 아니라 잎이 먼저 피었다가 지는 것이지요. 잎이 먼저 나서 영양분을 저장해 두면 그것을 기반으로 꽃이 피어나는 것이니 만약 순서가 뒤바뀌면 그리 아름다운 색을 토해낼 수 없을는지 모릅니다. 유독 절에 꽃무릇이 많습니다. 그 이유는 절에 유용한 식물이기 때문입니다. 곧 꽃무릇 뿌리는 마늘과 비슷하게 생겼습니다. 그 뿌리에서 추출한 녹말로 풀을 쑤어 사용할 수 있지요. 이 풀은 불교 경전을 만들 때 바르면 좀이 슬지 않고 탱화를 그릴 때 천에 바르면 오랫동안 보존할 수 있다고 합니다. 또한 옛날 한 처자가 선운사에 불공을 드리러 왔다가 스님에게 연모의 정을 느껴 상사병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시름시름 앓던 처자는 결국 죽고 말았고 그 처자의 무덤 근처에 하나둘 피어난 것이 있었으니 바로 꽃무릇이었다고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메밀꽃 필무렵의 작가 이효석은 "낙엽을 태우면서"라는 짧은 수필을 남깁니다. 그 수필의 한 대목을 싣습니다. “나는 그 냄새를 한없이 사랑하게면서 즐거운 생활감에 잠겨서는, 새삼스럽게 생활의 제목을 진귀한 것으로 머릿속에 띄운다. 음영과 윤택과 색채가 빈곤해지고, 초록이 전혀 그 자취를 감추어 버린, 꿈을 잃은 허전한 뜰 한 복판에 서서, 꿈의 껍질인 낙엽을 태우면서 오로지 생활의 상념에 잠기는 것이다. 가난한 벌거숭이의 뜰은 벌써 꿈을 꾸기에는 적당하지 않은 탓일까? 화려한 초록의 기억은 참으로 멀리 까마득하게 사라져 버렸다. 벌써 추억에 잠기고 감상에 젖어서는 안 된다.“ 가을입니다. 가을엔 화려한 단풍이 사위어가면 마른 낙엽이 남습니다. 봄부터 가을까지 햇빛 공작소의 임무를 뒤로하고 정든 가지를 떠나 쓸쓸히 포도 위를 굴러야 하는 것은 낙엽의 운명입니다. 시인 한용운은 "알 수 없어요."라는 시에서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 ”라는 표현을 남깁니다. 타버린다는 것은 소멸을 의미하지요. 되돌릴 수 없는 불가역적 반응이기도 하구요. 그런데 그것이 없어지지 아니하고 광명을 밝힐 기름이 된다고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의자를 꺼내다가 새끼손가락에 가벼운 찰과상을 입었습니다. 평소에 아무런 생각 없이 지내던 손가락인데 조그만 상처에도 여간 신경 쓰이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평소 너무나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에 대한 감사함을 잃고 살아왔다는 생각을 합니다. 요즘도 바닷가에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지인의 아버지께서는 고기가 잘 잡히지 않을 때 바다를 보며 한숨 섞인 말씀을 하셨습니다. "태풍과 같은 큰 바람이 한 번 불어야 할 텐데..." 고기잡이를 전업으로 하는 어부가 바람을 기다리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큰 바람이 불어 바다를 한 번 뒤집어 놓아야 바다 속에 용존 산소량이 늘고 결국 플랑크톤과 같은 먹이가 풍부해져 물고기들이 많이 잡힌다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우리네 삶에도 아픔의 고통과 태풍의 어려움이 있을 수 있습니다. 나무를 보면 아픔을 인내한 옹이가 더 단단하고 하늘은 태풍이 지나가야 한층 더 맑아집니다. 삶에 있어서 고난이란 유익의 다른 표현일 수 있습니다. 넘어져보지 않은 사람은 일어서는 방법을 알 수 없고 죽을 만큼 아파보지 않은 사람은 삶의 간절함을 알 수 없습니다. 잔잔한 바다에서 위대한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한 사람이 한의원을 찾았습니다. 비교적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을 달여 먹으라고 권유하면서 "건칠 계관화 갈근 포공령을 취해서 달여 드세요." 라는 처방을 내렸습니다. 그 사람은 주변에 흔하다고 했는데... 어디서 무엇을 구할 것인지 상상조차 할 수 없습니다. 옷 나무, 맨드라미, 칡뿌리, 민들레... 이렇게 표현을 했다면 누구나 쉽게 알 수 있었을 것을... 교통사고 후유증을 앓고 있는 환자에게 의사는 이렇게 진단합니다. "고관절 외전근 열상과 미추부 봉와직염, 심계향진과 연하곤란 등 불안장애 동반" 어디가 어떻게 아픈 건지... 글을 봐서는 쉽게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이는 엉덩이 관절을 벌리는 근육에 찢긴 상처가 있고 꼬리뼈 주변 연한 조직에 염증이 있으며, 불안증세로 가슴 두근거림이 있고 음식을 삼키는데 장애가 있다."는 뜻입니다. 연설을 할 때 빌게이츠와 스티브잡스는 큰 차이를 보입니다. 빌게이츠는 전문적 식견을 드러내는 반면 스티브잡스는 쉬운 이해를 전제로 하지요. 만약 그들이 64GB USB를 설명한다면 빌게이츠는 첨단기술의 집약체로서 2의 30승에 64를 곱한 것만큼의 저장용량이라고 하겠지만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진해의 군항제를 아시지요? 군항제(軍港祭)란 군사 항구의 축제를 의미합니다. 군항제하면 벚꽃 축제와 동일시하지만 사실은 1953년 4월 13일, 우리나라 최초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동상을 세우고 추모제를 거행한 것이 계기입니다. 곧 충무공의 숭고한 구국의 얼을 추모하고 향토문화예술을 진흥하는 의미로서의 축제를 여는 것이지요. 문제는 벚꽃에 가려 군항제의 의미가 퇴색되어 간다는 것입니다. 벚꽃의 원산지가 한국이라는 등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벚꽃을 심는 것이 정당성을 주장하지만 일본 국화가 사쿠라(벚꽃)인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고 특히 임진왜란을 통해 구국의 아이콘인 이순신을 기리는 축제에 벚꽃은 왠지 크게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이 듭니다. 차라리 군항제라고 하지 말고 진해벚꽃축제라고 이름하든지요. 요즘 가로수를 심는 것만 해도 그렇습니다. 지방자치가 시작된 후로 각 도시에서 경쟁적으로 가로수로 벚꽃을 심습니다. 벚꽃은 열악한 환경에 강하고 키가 비교적 큰 교목이며 봄에 꽃의 아름다움을 누릴 수 있는 장점은 있습니다. 하지만 요즘 우리나라 국화인 무궁화는 찾아보기가 힘듭니다. 나라꽃이고 계속 피고지기 때문에 비교적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우리네 삶을 이루는 근간은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 옳은 말을 하면 무조건 믿고 받아들이는 것은 아닙니다. 그 말을 한 사람이 옳을 말을 할 자격이 있다고 판단될 때 그 말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엄마 아빠도 그렇게 안 살면서 왜 나한테는 맨날 뭐라고 해?" 사실 그렇게 이야기를 하지 않더라도 그런 느낌을 가진 아이들이 있다면 부모는 부모로서의 모범을 보이지 못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린 시절 산 아래서 화전을 일구시던 아버지는 화전정리령이 떨어지자 비탈에 유실수를 심습니다. 팔자에 없는 과수원을 하게 된 까닭이지요. 여름이 되면 과일을 수확하게 됩니다. 마당 가득 수북이 복숭아를 쌓아놓고 굵기에 따른 선별작업을 하지요. 그 때만해도 종이 박스가 없어 판자를 대어 만든 상자에 담는데 눈대중으로 크기를 선별할 수밖에 없습니다. 대부분 포장은 별로 때깔이 좋지 않은 것을 아래다 깔고 보기 좋고 잘 익어 먹음직스런 것을 위에 올려 마무리를 하는 것이 일반적인 상자담기였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그런 것을 경계하셨습니다. 오늘만 거래하고 말 상대가 아닌데 얕은 꼼수를 쓰면 안 된다고 가급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