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속에 일곱 해라 무엇을 남겨왔나 나오면 사흘 살곤 목숨을 땅에 곶고 피 타듯 암것 불러서 무엇을 하렸던가 매미는 땅속에 10년쯤 살다가도 땅 위에 나오면 길어도 불과 1주일밖에 못 산다 한다. 왜인지, 대자연의 섭리라 해도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한여름 햇빛 아래 들판은 젊은이 것 깊어갈 더운 철을 아쉬워 않으련만 처녀의 젖가슴인양 붉게 돋은 근화(槿花)꽃 * 근화(槿花)꽃 : 무궁화
빠알간 빛깔에 누님이 돋아나고 쪼그르르 난 소리에 웃음이 나던데 이제는 남 첫여름에 꽈리꽃이 피느나. 어릴 때 이웃 처녀들이 주홍빛깔로 변한 익은 꽈리의 씨를 솜씨 있게 파내고 그것을 입안에서 쪼그르르 울리는 놀이를 많이 봤는데 요즈음 보지 못한다. 그때면 “아아, 바야흐로 여름이다.”라는 생각이 많이 돋은 기억이 있다.
낮인들 밤인들 온 밤낮 젖는 하늘 땅 가랑비랑 이슬비랑 다 지녀 가는 장마 어릴 적 소금 꾸러 간 그 꼴 곱게 뜨네. 오늘날 일본의 동포사회에는 어린이가 오줌을 싸도 소금 꾸러 가는 일이 없어졌다. 본국에도 그와 비슷한 것 같다. 아동 심리학적으로 그것은 유해하다는 소리를 하는 학자들이 있다 하는데 나에게는 소금 꾸러 가던 날이 곱게 되생각나서 그런 기회가 있었으면 하고 바랬는데 새끼가 한 번도 싸지 않아 기회를 놓쳐버렸다.(웃음)
그 뉘가 모르느냐 봄이 오면 뜨는 맘을 풀나무 꽃 피우고 짐승도 암컷 찾고 깊은 밤 터진 몸더위 꿈결을 가고 간다. * 날짐승 암굼 : 새의 흘레붙음(교미) * 몸더위 : 몸의 온도 봄은 모든 생물이 자손을 남기려고 교미를 하는데 사람은 사람답게 살려고 사랑을 하고 꿈을 꾼다. 일본 땅에서는 지난날과는 달리 이른바 국제결혼이 많아졌다. 슬픈 일인지 기뻐해야 할 일인지 모르겠다.
들메에 봄이 오면 부처님 오시고 그분이 오실 밤은 하늘땅이 밝고 밝아 아가씨 맑은 믿음에 고운 내음 내리시니. * 들메 : 들과 산 4월 초파일, 불교도가 아니더라도 줄지어 밝혀진 초롱불에 감동한다. 우리 어머님은 어릴 때부터 불교를 맑게 믿으시었는데 일본에 ‘징용’ 당한 지아비를 좇아 건너오신 뒤에도 해마다 이날은 특별한 날로 여기시었다.
땀버캐 돋은살에 한여름 그립고 밤아침 더위를 좇아볼까 하느니만 여름은 멀고먼곳서 빙긋이 웃는구나 * 땀버캐 : 땀이 증발하여 살갗에 돋은 소금. 땀버캐 돋을 만큼 무더워 죽겠던 여름도 다 지나가 아침저녁이 선선해지면 그 여름이 어째선지 아쉽게 느껴진다. 사람도 미운 사람이 없어지면 시원섭섭한 느낌이 솟을 때가 있다 하는데 그런지도 모른다.
바위옷 고우니 장마가 왔는구나 장마꽃 갓잠깨고 참아욱 꽃꿈결이니 먼곳서 소리지르는 하늘울림 안아보네 * 장마꽃 : 일본자양화 * 참아욱꽃 : 무궁화 * 하늘울림 : 천둥 일본에서는 봄이 지면 첫여름이 선다. 여름이 서기에 앞서 한 달쯤 이어지는 긴긴 장마가 오는데 매일같이 비다. 줄곧 우울하기는 우울하지만 그런 속에도 가지각색의 장마꽃이 피고 참아욱꽃 봉오리가 조금씩 부풀어 오른다. 그 꼴들이 사람에게 꿈을 안겨주고 희망을 돋군다.
어디까지 닿았는지 한숨쉬고 있을까 몸도옷도 다꽃이던 그한때는 간데없고 어딘지 알곳없는 땅더위만 가득차니 일본에서는 첫여름 소리 들으면 어째선지 간봄이 그립다 봄이 한창이던 때 나무는 입도 줄기도 가지도 다 꽃이던데 가버리면 남은 꼴은 푸르싱싱한 잎 모습이다 이것이 인생이다.
메푸르고 가람맑고 하늘낮고 땅지고 어느새 봄은가고 첫여름이 찾아왔다 그러리 바쁘다한들 비맞고 가려는가 요즈음 많은 사람이 바쁘다. 왜 그렇게도 바쁜가? 조금만, 스스로 낮추면, 스스로 욕심을 참으면 천천히 먼 곳까지 나아갈 수 있고 맘도 가라앉는데, 자나깨나 돈, 돈이니 스스로 재능도 인간성도 다 깎이고 썩는 줄을 모르고 있다. 비가 오면 비옷을 입으면 그만일 것을 걸치지 않고 막 뛰니 참으로 한탄할 일이 아닐 수 없다. 제발 우리 좀 천천히 살자. 한 끼니쯤은 굶으면서 살자. 한 술쯤은 남을 위해서 베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