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멧자락(산자락)을 따라 흐르는 냇물은 곧게만 나아가지 않습니다. 때로는 큰 바위를 만나 비껴가고, 때로는 넓은 들판을 만나 느릿하게 춤을 추듯 흘러갑니다. 우리가 사는 삶도 언제나 반듯한 큰길이기를 바라지만, 참된 자람은 굽이진 길 위에서 더 깊게 무르익곤 합니다. 날마다 마주하는 생각지도 못한 어려움이, 어쩌면 우리를 더 단단한 사람으로 빚어가는 과정일지도 모릅니다. '굽이돌다'는 길이나 물줄기가 굽어서 돌아 나가는 모습을 뜻하는 아름다운 우리말입니다. 메(산)나 들을 따라 길게 뻗은 길이 한 번씩 꺾이는 그 자리에서 우리는 비로소 뒤를 돌아보거나 잠시 멈춰 숨을 고를 여유를 얻습니다. 그저 나아가는 쪽을 바꾸는 움직임을 넘어, 이 말 속에는 거친 세상을 부드럽게 받아들이는 슬기가 담겨 있습니다. 억지로 곧게 펴려 하면 부러지기 쉽지만, 굽이치며 흐르는 물은 그 어떤 막힘도 거스르지 않고 끝내 바다에 닿습니다. 막다른 길이라 생각했던 곳이 사실은 더 넓은 풍경으로 나아가는 길목이었음을 깨닫는 과정이 바로 이 낱말 속에 녹아 있습니다. 우리는 너무 자주, 멈추지 않고 앞만 보고 달려야 한다는 마음에 쫓기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우리
[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세상이라는 커다란 톱니바퀴 속에서 우리는 날마다 닳고 깎이며 살아갑니다. 앞만 보고 달리느라 멍든 마음을 제대로 살필 겨를도 없이, 누군가에게는 칭찬받기 위해, 또 누군가에게는 뒤처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씁니다. 마음이 고단해져 툭 건드리기만 해도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은 날이면, 우리는 어디서 위로를 찾아야 할까요. 쉼 없이 몰아치는 삶의 물결 속에서도 자신을 잃지 않으려면, 잠시 멈춰 서서 스스로 다독이는 아주 값진 시간이 있어야 합니다. '다독이다'는 흩어지기 쉬운 물건을 모아 가볍게 두드려 누르는 손길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또한 아기를 재우거나 달래고 귀여워할 때 몸을 가만가만 두드리는 살가운 몸짓이기도 합니다. 나아가 이는 남의 모자란 점을 따뜻이 어루만져 감싸고 달래는 마음의 움직임을 뜻하기도 하지요. 마치 흐트러진 나뭇짐을 정성껏 매만져 단단히 묶어두듯, 헝클어진 마음의 결을 바로잡는 정갈한 마음이 이 말 속에 녹아 있습니다. 거친 세상을 살며 날카로워진 마음의 모서리를 이 낱말로 둥글게 갈고, 지친 영혼에 온기를 불어넣는 귀한 매듭을 지어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늘 다른 사람의 잣대에 맞추느라 정작 가장 소중한 제 속
[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공공기관에서 길나무(가로수) 가지치기를 할 때 '전정'이라는 어려운 말을 쓰는 것을 꼬집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립니다. 이는 단순한 용어의 문제를 넘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쉬운 우리말을 소홀히 여기는 행정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것 같아 많이 아쉽기도 합니다. 앙상하게 잘려 나간 나무들을 보며 느끼는 안타까움은, 어쩌면 우리 스스로가 성과라는 잣대에 맞춰 삶을 조급하게 다듬으려 했던 마음과도 닮아 있습니다. 오늘은 겉모습은 조금 볼품이 없을지라도, 바뀌지 않는 됨됨이로 삶의 자리를 지켜온 여러분에게 '그루'라는 말을 조용히 건네고 싶습니다. '그루'는 본디 풀이나 나무를 베어 낸 뒤 땅에 남아 있는 그 아랫동아리를 일컫는 말입니다. 비록 윗부분은 사라졌을지라도 그 안에는 나무가 살아온 세월의 나이테가 고스란히 담겨 있으며, 다시금 새순을 틔울 수 있는 끈질긴 생명력이 숨어 있지요. 우리는 흔히 무언가 온전히 남아 있어야만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때로는 덜어내고 남은 그 자리에서야 비로소 진짜 내 모습이 드러나기도 합니다. 한 그루, 두 그루처럼 수를 세는 하나치(단위)로 쓰일 때 이 말은 저마다의 생명이 가진 고유한 값어치
[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바람 끝에 묻어나는 냄새가 조금씩 달라지는 것을 느낍니다. 차가운 겨울의 끝자락을 붙잡고 있던 마음이, 어느덧 다가온 봄기운에 녹아내리는 듯한 요즘입니다. 이렇듯 세상의 모든 것은 어느 하나 홀로 머물지 않고, 서로의 자리를 내어주며 흐릅니다. 멈춘 듯 보여도 저마다의 빠르기로 제 자리를 바꿔가는 자연의 순리처럼, 우리네 삶 또한 그렇게 서로 어우러지며 이어지는 법이지요. 오늘은 이렇듯 세상의 다정한 엇갈림을 담은 ‘갈마들다’라는 말을 가만히 떠올려 봅니다. ‘갈마들다’는 본디 ‘서로 번갈아 들다’라는 뜻을 품고 있습니다. 흔히 쓰는 '교대하다'와 비슷한 말인데, 한 사물이 가고 다른 사물이 그 뒤를 이어 들어오는 모양새를 뜻하는 이 말은, 마치 썰물과 밀물이 바닷가에서 조용히 자리를 맞바꾸는 풍경을 떠올리게 합니다. 한자가 섞이지 않은 우리 토박이말 속에는 이처럼 ‘교체’나 ‘교대’라는 딱딱한 말로는 다 담을 수 없는, 서로에 대한 예의와 존중이 깃들어 있습니다. 앞서간 이가 길을 터주면 뒤따르는 이가 그 길을 걷고, 다시 그 뒤를 새로운 희망이 채우는 흐름 말입니다. 억지로 자리를 뺏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시간을 갈마들며 세상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3월 5일 오늘은 24절기의 셋째 '경칩(驚蟄)'입니다. 경칩은 놀란다는 ‘경(驚)’과 겨울잠 자는 벌레라는 뜻의 ‘칩(蟄)’이 어울린 말로 겨울잠 자는 벌레나 동물이 깨어나 꿈틀거린다는 뜻이지요. 만물이 움트는 이날은 예부터 젊은 남녀가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기 위해 은행씨앗을 선물로 주고받고 날이 어두워지면 동구 밖에 있는 수나무 암나무를 도는 사랑놀이로 정을 다졌기에 경칩을 ‘토종 연인의 날’이라고 얘기합니다. 조선시대 왕실에서는 임금이 농사의 본을 보이는 ‘적전(籍田)’을 경칩이 지난 뒤의 ‘돼지날 (해일-亥日)’에 선농제(先農祭)와 함께하도록 했으며, 경칩 이후에는 갓 나온 벌레 또는 갓 자라는 풀을 상하지 않게 하려고 불을 놓지 말라는 금령(禁令)을 내려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을 보였습니다. 중국 고대 유가의 경전 《예기(禮記)》 「월령(月令)」에도 “이월(음력)에는 식물의 싹을 보호하고 어린 동물을 기르며 고아들을 보살펴 기른다.”라고 되어 있지요. 민간에서는 경칩에 개구리알이나 도룡뇽알을 먹으면 몸에 좋다고 하였으나 어린 생명을 그르치는 지나친 몸보신은 삼가야만 합니다. 또 단풍나무나 고로쇠나무에서 나오
[우리문화신문=김슬옹 교수] 1481년(성종 12년)에 《삼강행실도》를 한글로 뒤쳐(번역) 보급했다. 《삼강행실도》는 조선과 중국의 책에서 모범이 될 만한 충신, 효자, 열녀를 각각 35명씩 모두 105명을 뽑아 그 행적을 그림과 글로 칭송한 책이다. 1428년(세종 10년)에 경상남도 진주에서 ‘김화’라는 사람이 아버지를 살해하는 사건이 일어났는데, 그 일이 조정에 알려지자, 관리들은 강상죄로 죄인을 엄벌하자는 주장을 펼쳤다. 강상죄는 죄인의 가족은 물론 죄인이 사는 지역에 이르는 사람들까지 죄를 확대해 처벌하는 엄한 벌이었다. 이에 세종은 1432년(세종 13년) 《삼강행실도》를 펴내 백성들에게 유교의 도를 알리고자 했다. 하지만, 그때는 한글이 만들어지기 전이라 한문으로 설명을 단 탓에 백성들이 쉽게 이해하지 못했다. 그 뒤 성종 때 《삼강행실도》를 한글로 뒤쳐 백성들에게 널리 보급했다. Translating the First Picture Book Samgang Haengsildo into Hangeul In 1481 (the 12th year of King Seongjong’s reign), Samgang Haengsildo was translate
[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우리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온기를 잊고 사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눈앞의 열매를 쫓느라 옆 사람의 낯빛도 살피지 못하고, '효율'이라는 이름으로 차가운 말들만 주고받는 풍경이 익숙해진 요즘입니다. 서로에게 날을 세우고 거리두기에 바쁜 모습들 속에서, 우리가 정말로 놓치고 있는 값어치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됩니다. 서른 해 가까이 우리말의 숨결을 지켜온 저는, 오늘 이 삭막한 바람빛 앞에서 아주 보드라운 낱말 하나를 꺼내 봅니다. 바로 '곰살궂다'입니다. '곰살궂다'는 "태도나 성질이 부드럽고 친절하다"는 뜻을 품고 있습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요란한 친절이 아니라, 남이 미처 알아채지 못하는 세세한 부분까지 살뜰히 챙겨주는 마음의 결을 말합니다. 참으로 귀하고 따뜻한 마음이 담긴 말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가 사람을 대하는 마음은 어떻습니까? 우리는 상대의 마음을 살피기보다, 내 이익과 손해만을 따지며 관계를 맺다보니 상대의 곁을 조용히 지켜주는 그 살가운 마음은 자꾸만 설 자리를 잃어갑니다. 이제 '곰살궂다'는 넘쳐나는 경쟁 속에서 잊혀 가는, 어쩌면 조금 느리고 서툰 사람들만 가진 것이 되어버린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오늘은 우리 명절의 하나 정월대보름입니다. 정월대보름엔 재미있는 풍속들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망월(望月)’이라 하여 떠오르는 보름달을 보며 저마다 소원을 빌었는데 올해 정월대보름 밤에는 ‘붉은달 개기월식’이 있다고 합니다. 또 대보름날 아침 일찍 일어나 견과류를 깨물며 한해 열두 달 종기나 부스럼이 나지 않도록 비손하는 ‘부럼 깨기’, 아침 일찍 일어나 사람을 보면 상대방 이름을 부를 때 상대방이 대답하면 '내 더위 사가라!'고 하는 ‘더위팔기’, 대보름날 세 집 이상의 성이 다른 사람 집의 밥을 먹어야 그해 운이 좋다고 하며, 이날은 아홉 번 먹어야 좋다고 믿었고, ‘아홉차리’라 하여 나무를 해도 아홉 짐을 했습니다. 또한 ‘개보름쇠기’라고 하여 한 해의 시작인 정초에 개가 병들지 않고 건강해지라며, 온종일 개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다가 달이 뜨면 그때야 “개 비리 씰자. 개 비리 씰자”라고 하면서 빗자루로 개의 등을 쓸어내린 뒤에 밥을 주는 풍속도 있고, “복토 훔치기”는 부잣집의 흙을 몰래 훔쳐다 자기 집의 부뚜막에 발라 복을 비손하는 것입니다. 특히 정월대보름 세시풍속으로 빼놓을 수 없는 ‘용알뜨기’는 새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서도소리꾼, 유지숙이 제작한 <서도 산타령>과 함께 서도소리의 정석을 담은 민요음반 관련 이야기를 하였다. 이 음반에는 <긴아리>를 비롯, <산염불>이나 <난봉가>, <배치기> 등 여러 곡이 담겨 있는데, 널리 알려진 노랫말 외에도, 묻혀 있거나 잊힌 노랫말들을 찾아내 수록하였다는 점이 독특하다. 이와 함께 잔가락의 첨삭(添削)이라든가, 다양한 시김새의 활용으로 서도소리의 독특한 표현을 복원했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롭다고 이야기하였다. 무엇보다도 옛 명창들의 개성이 담긴 다양한 소리를 거의 그대로 재현했다는 평가와 함께, 장단의 변화나, 반주악기들과의 조화를 통해 서도민요의 특징을 더더욱 구성지게 살렸다는 점, 최경만, 원완철 등의 신명 나는 즉흥연주자들의 반주와 유지숙의 신들린 소리가 조화를 이루어 내고 있다는 점, 그리고 유지숙 본인의 독특한 소리길과 장효선ㆍ이나라ㆍ김유리ㆍ김지원ㆍ오현승 등의 후학들과 호흡을 맞춘 사제합심(師弟合心)의 작품이라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는 이야기도 하였다. 이제, 서도민요는 한반도의 서쪽, 황해도나 평안도 지역의 소리
[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온봄달 3월 들어 처음으로 일터로 나가는 날이자, 새 학기가 시작된 학교는 마치 이제 막 먼바다로 떠나려는 배처럼 시끌벅적하고 분주할 것 같습니다. 모두가 저마다의 기대로 눈을 반짝이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보이지 않는 걱정도 조금씩 있을 거예요. 처음 앉아보는 자리, 새로 만난 동무들과 선생님. 아직은 잘 모르는 낯선 것들 때문이지요. 사람들은 이 마음을 그저 '긴장된다'거나 '떨린다'라고만 말하곤 합니다. 하지만 오늘은 이 마음을 조금 더 깊게 들여다보려고 합니다. 새로운 첫날을 맞은 여러분께 가장 먼저 들려주고 싶은 말은 바로 '설레다'입니다. 마음이 가라앉지 않고 자꾸 들떠서 두근거리다. '설레다'라는 말은 '설다(낯설다)'라는 말에서 나왔습니다. 우리가 무언가에 설레는 까닭은 그것이 '낯설기' 때문이에요. 그러니까 설렘은 그저 기분이 좋다는 뜻이 아니라, 내가 아직 가보지 않은 새로운 길을 만났다는 신호입니다. 참으로 생명력 넘치고 두근거리는, 예쁜 말이지요. 낯선 것을 받아들이는 마음이 곧 자라나는 시작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가끔 이 '설렘'을 너무 가볍게 생각하곤 합니다. 조금만 낯설어도, 조금만 서툴러도 '불안하다'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