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는 천년을 썩지 않는 한지로 1966년 10월 14일 경주 불국사석가탑 해체 공사를 하자 금동제 사리함이 안치되어 있었고, 그 둘레에는 목재소탑, 동경, 비단, 향목, 구슬 등이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닥종이로 된 두루마리 즉 다라니경이 하나 들어 있었는데 경의 폭은 6.7cm, 길이는 6m가 넘었다. 다라니경이란 탑을 만든 다음 불경을 외움으로써 성불한다는 뜻으로 만들어 탑 속에 넣어두는 경전이다. [무구정광대다라니경(無垢淨光大陀羅尼經)]은 1200년 동안 좀벌레에 그 두루마리 일부가 침식되어 있던 것을 복원, 국보 126호로 지정되어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종전까지 알려진 세계 최고의 인쇄물은 서기 770년에 새긴 것으로 다라니경보다 적어도 20년 이상 뒤의 것인 일본의 [백만탑다라니경]이고, 간행연수가 기록된 세계 최고의 인쇄물은 중국 돈황 석실에서 발견하여 대영박물관으로 가져간 중국의 [금강반야바라밀경]으로 서기 868년에 목판을 만든 것으로 다라니경보다 최소한 118년 뒤의 것이다.[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세계 최고의 목판인쇄물이고 동시에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종이이다. 즉 우리 조상들은 삼국시대 때 이미 닥을 종이의 원료로 해서
소나무에 나서 소나무에 죽는다 우리 민족은 소나무로 만든 집에서 태어나고, 태어난 아기를 위해 솔가지를 매단 금줄을 쳤으며, 소나무 장작불로 밥을 해 먹었고, 아궁이에 불을 때서 잠을 잤다. 가구를 만들고, 송편을 해 먹었으며, 솔잎주와 송화주(松花酒:송화를 줄기 채로 넣고 빚은 술), 송순주(松筍酒:소나무의 새순을 넣고 빚은 술)를 빚었다. 송홧가루로 다식(茶食:차를 마실 때 먹는 한과)을 만들어 먹고, 소나무 뿌리에 기생하는 복령(茯笭)은 약제로 쓰이며, 송이버섯은 좋은 음식재료이다. 또 소나무 뿌리로 송근유(松根油)라는 기름을 만들어 불을 밝혔고, 소나무를 태운 그을음인 송연(松烟)으로 먹(墨)을 만들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다. 송진이 뭉친 호박으로 마고자 단추를 해 달았고, 흔들리는 소나무의 운치 있는 맑은 소리를 즐겼으며, 소나무 그림 병풍을 펼쳐 두고 즐겼다. 그리고 죽을 때는 소나무로 짠 관에 묻혀 자연으로 돌아감으로써 마지막 순간까지도 소나무에게 신세를 졌다고 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 지명가운데 소나무 송자가 들어가는 곳이 681곳이나 된다는 것도 우리 민족이 소나무와 함께 살아간 반증일 것이다. 우리 민족은 소나무를 장수(長壽), 기개(氣
◀ 여성의 비부를 상징하는 소나무 끝눈 부분 ⓒ2001 임경빈 솔잎은 두 개가 한 엽초 안에 나고, 그 사이에 사이눈이라는 작 은 생명체를 지니고 있 다. 그래서 소나무를 음양수라고 하고, 완 전무결한 부부애의 상징으로 본다. 저들에 푸르른 솔잎을 보라 돌보는 사람도 하나 없는데 비바람 맞고 눈보라 쳐도 온누리 끝까지 맘껏 푸르다 서럽고 쓰리던 지난 날들도 다시는 다시는 오지 말라고 땀 흘리리라 깨우치리라 거치른 들판에 솔잎 되리라 우리가 익히 들었던 양희은이 부른 노래 '상록수'이다. 소나무처럼 꿋꿋하고 푸르른 삶을 꿈꾸며, 이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안치환의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는 군사독재 시대의 억눌린 가슴을 다독거려주는 위안이었다. 한국과 한국인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보편적인 상징물이 뭘까? 한글, 김치, 고려인삼, 한복, 호랑이, 태극, 무궁화 등 많은 것들이 있다. 하지만 오랜 옛날부터 우리 민족의 가슴 속에 깊이 자리잡아온 것은 '소나무'가 아닐까? 예부터 수많은 전설과 그림, 문학작품 등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소재임은 물론 많은 사람들이 고향생각을 할 때 늘 떠오르는 것이 마을 뒷동산에 구부정하게 서 있는 소나무다. 얼마 전에 <숲과
향문화의 새로운 고찰◀ 백제금동용봉봉래산향로(百濟金銅龍鳳蓬萊山香爐) 1993년 부여 능산리에서 발굴된 동아시아 최고의 향로 향(香)이란 글자는 벼 화(禾)자에 날 일(日)자를 하고 있다. 벼가 익어 가는 냄 새를 향 이라 하는 것이다. 향을 싼 종이에서는 향기가 우러나온다. 이 말을 우 리의 삶에 도입 해 보자. 삶이 내면에 향기를 품고 사는지, 아니면 악취를 안고 사는지에 따라 그 사람 의 품격은 결정된다고 하겠다. 내 몸에서도 향기가 날까? 우리 선조들은 선비가 사는 집을 난형지실(蘭馨之室)이라고 하였다. 그것은 '난 향기가 나는 집'이라는 뜻인데 이슬을 먹고 맑은 바람을 마시는 난을 닮아 가며, 스스로를 지켜 가는 삶을 산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하겠다. 선비들은 예로부터 운치 있는 4가지 일 즉, 4예(四藝)를 들었는데, 향을 피우고, 차를 마시고, 그림을 걸고, 꽃을 꽂는다는 것이 그것이다. 심신수양의 방법으로 거처하는 방안에 향불을 피운다 하여, 분향묵좌(焚香默坐)’라는 말도 있다. 우리의 옛 여인들의 몸에선 항상 은은한 향이 풍겨 나왔고, 향수, 향로제조기술은 어진 부인의 자랑스런 덕목이었다고 한다. 우리네 여인들은 언제부터, 어떻게 향을 사용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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