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경제/얼레빗=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국립으로 창극단이 생겨 보다 활발하게 국악극 운동이 전개될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좀처럼 꺾이지 않을 것 같던 여성국극의 기세도 50년대를 지나 6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는 점차 쇠락하기 시작하였는데, 많은 까닭 가운데 하나가 재미있으면서 감동을 전해 줄 수 있는 극본의 부재나 스타의 부재, 때를 같이 해서 영화나 TV 등 다른 대중 오락물의 증가가 주원인이 되었다는 이야기, 그리고 덧붙여 국립의 국극단이 새로 창단되어 여성국극의 스타 및 중심인물들이 국립단체로 자리를 옮기게 되면서 여성국극단의 작품제작이나 규모가 한계에 봉착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또 1980년대 말부터는 마당극 형태의 공연물이 꾸준히 제작되어 폭발적인 인기를 구가해 왔다는 이야기, 그리고 1990년대 말부터《국립국악원》을 중심으로 창작 경서도 소리극이나 정가극, 재담극 들도 선을 보이기 시작하였는데, 사명감을 지닌 명창이나 단체들이 단발성 협찬을 받기도 하지만, 자비를 들여 제작에 참여하기 시작했다는 이야기, 그 중에서도 이춘희를 비롯한 경서도 명창들은 이 분야의 초기 활동을 주도하였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 대동가극단 공
[그린경제/얼레빗 = 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 속풀이에서는 1934년, 조선성악연구회가 창립되면서 각색이나 연출의 개념을 도입한 창극이 보다 활발해지기 시작하였다는 이야기, 1940년대 말 여성국극단들이 조직되면서 1950년대는 가히 국극의 시대라 할 만큼 대단한 인기를 누렸다는 이야기, 1948년에 결성된 여성국악동호회의 주요 인물들로는 박녹주, 박귀희, 김소희, 박초월, 임유앵, 신숙, 임춘앵, 등 그 외에도 많은 판소리 여류명창들이 중심이었다는 점을 얘기했다. 또 일본은 1913년부터 다카라즈카 가극단이 있었고 중국도 1927년부터 여성들만의 극단이 존재해 오고 있다는 점, 대표적인 창극단체로는 햇님국극단, 여성국악동지사 낭자국악단 여성국극협회 우리국악단 등 일일이 나열하기 어려울 정도이며 이들은 흥행이나 인기에 따라 대표자의 명의나 소속 단원들의 변동이 잦아 그 실태를 파악하기 어려울 정도라는 점, 임춘앵의 대표작품이었던 목동과 공주를 국도극장에 올렸을 당시 을지로 4가 일대가 교통이 마비되어 기마경찰이 동원될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몰릴 정도로 대중적 인기가 대단했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1950년대 여성국극의 인기를 가늠해 볼 수 있는 또 다른 회고
[그린경제/얼레빗 = 서한범 명예교수] 지금 속풀이는 소리극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중이다. 지난주에는 창극이 1900년대 전후에 시작되었다는 이야기, 광무(光武)초부터 서울 동대문 안에 협률사(協律社)가 자리를 잡고 일반 흥행을 하고 있었는데, 그 후 그 자리에 광무대(光武臺)가 세워지면서 이를 속칭 광무대 협률사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이야기, 이전의 1인 창극조였던 판소리는 분창의 형식, 즉 대화창의 형식으로 발전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또 협률사에서 판소리와 경서도 명창 170여명이 1902년 가을로 예정되었던 고종의 칭경식을 준비하였으나 전염병이 돌고, 영친왕(英親王)의 천연두, 농황사정이 여의치 않은 점, 러시아와 일본의 관계 악화 등으로 다음해에 예식만 간단하게 치루었다는 이야기, 협률사는 원각사로 바뀌었고 동대문 곁에 광무대, 사동에 연흥사(演興社), 낙원동에 장안사(長安社), 종로에 단성사(團成社)등 본격적인 대중 공연장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으며 대부분의 극장에서는 판소리를 변형시킨 창극의 시도와 함께, 낮에는 뚝섬이나 왕십리의 선소리패나 농악패들을 불러 볼거리를 제공하였다는 이야기 등도 하였다. 1934년,《조선성악연구회》가 창립되면서 많
[그린경제/얼레빗 = 서한범 명예교수] 공연 예술인들의 우수한 창작국악극을 발굴하기 위해 (재)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에서는 제1회 창작국악극 대상을 가진바 있고, 이와 관련한 세미나에서 필자는 창작국악극이라는 의미가새로 지은 국악을 기반으로 하여 이야기를 전개시켜 나가는 연극이라는 명칭임에도 아직은 생소하고 어색한 용어라고 했다. 기존의 전통음악을 기반으로 제작된 창극과는 무엇이 다른가? 이 명칭이 기존의 경서도 소리극, 정가극, 재담극, 기타 동요나 국악풍의 극을 두루 포괄하는 이름인가? 출품된 공연들의 이름은 뮤지컬이나 국악뮤지컬이 많았고, 판소리 뮤지컬이라는 이름도, 판소리 음악극이라는 이름도, 판소리극이라는 이름도 있는가 하면, 음악극, 악극, 소리극, 창극, 창작창극, 정가극, 마당극, 연희극, 연극, 총체극, 인형극, 가무극, 국극, 국악극, 등 20여 종으로 매우 다양하였다. 서양음악에서는 대본을 바탕으로 한 가창중심의 음악극을 오페라(opera)라고 부르는데 연극적 대사가 들어가지 않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그러므로 연극적 대사가 많이 삽입되어 있는 오페렛타나 뮤지컬과는 구별해서 사용되는 것이 일반적인 개념인 것이다. 초창기에는 오페라도 dramm
[그린경제/얼레빗 = 서한범 명예교수] 지난 주 까지 서도소리를 기본으로 하는 소리극 이야기를 하였다. 이은관과 박준영, 박정욱 등에 의한 배배이굿, 유지숙의 항두계놀이나 추풍감별곡, 김경배의 평강공주와 온달장군, 이춘목, 김광숙의 배치기 팔도강산 소리여행 황진이 산은 옛산이로되, 한명순의 평양다리굿 등을 소개 하였다. 그 밖에도 줄거리나 대사, 노래들은 소개되어 있으나 아직 무대화 되지 못한 작품들로 도미의 아내,배비장타령,이춘풍전,장한몽,정선의 애화 등이 있는데, 이러한 소리들도 소리극화 되기를 기대해 본다는 이야기, 특히 김경배가 해마다 공연해 온 평강공주와 온달장군의 이야기 등을 하였다. 평안도나 황해도 지역의 소리들은 그 보존을 적극적으로 서둘러야 하는 배경이 월남한 제 1세대 명창들이 대부분 타계하였고, 그 뒤를 이어가는 후계자의 수가 적어 그 전승이 매우 중대한 고비를 맞고 있기 때문이다. ▲ 대동가극단 공연 한 장면 (재)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에서는 문화체육관광부의 후원으로 전통공연 예술인들의 우수한 창작국악극을 발굴하기 위해 작품공모를 한 다음, 지난 2014년 2월 26일, 국립극장 해오름 극장에서 제1회 창작국악극 대상 시상식을 가진바 있
[그린경제/얼레빗 = 서한범 명예교수] 지난 주 속풀이에서는 이북 5도청 평안남도의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 항두계놀이를 국악극으로 꾸며 무대화 한 유지숙의 소리극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다. 원형을 지켜 온 평안도의 항두계놀이는 2013년 전국민속경연대회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한 작품이며 그 역사는 농촌 마을의 계(契) 역사와 맞물려 있다는 이야기로 시작하여 지역적 환경이 공동체 조직을 만들었고, 김정연과 오복녀로부터 유지숙이 전수받고 이를 소리극화 하였다는 이야기, 대부분의 창법은 서도소리의 창법인 수심가 토리로 부르는데 목을 조이면서 떠는 졸름목이나 가성, 비성의 구사가 중요하다는 이야기, 서도소리의 특징은 푸념과 넋두리, 그리고 남성스러운 호방함과 장중함, 기백이 꿋꿋함이 배여 있는 호령조의 소리가 많고, 특히 평안도 지역의 자연스런 사투리 구사가 서도소리극 제작에 있어 주요한 관건이 된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항두계놀이와 같은 전통 두레문화 속에 간직된 공동체 정신을 소리극화 하여 오늘에 살려내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사라져 버린 협동정신이나 상부상조의 정신을 되찾는 작업이 필요한 시점이기 때문이다. 유지숙의 항두계놀이 이외에도 서도소리를 기본으로 하는
[그린경제/얼레빗 = 서한범 명예교수] 지난 주 속풀이에서는 현재 서울시 송서 율창의 예능보유자로 활동하고 있는 유창 씨의 소리극과 관련한 이야기를 하였다. 그의 대표적인 작품들은 봉이 김선달, 능소전, 맹인굿과 춘양전, 한강수야 등이며 대부분이 전통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문화콘텐츠의 개발에 기여하였다는 이야기, 그는 박태여, 황용주를 거쳐 묵계월 문하에서 송서 및 12좌창을 배웠고, 2009년에는 송서 율창으로 서울시 예능보유자로 인정받았다는 이야기를 했다. 또 스승 묵계월 명창은 경기소리의 맛을 살려내는 시원스런 창법의 소유자로 내 뒤를 이어가기에 조금도 손색이 없는 유능한 소리꾼이라고 평가하고 있다는 이야기, 경기소리극의 확대 발전을 위해 남다른 열정을 보여 주었던 유 명창이 지금은 송서 율창의 보급과 확산을 위해 소리극의 제작을 꿈꾸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속풀이 153에서는 이북 5도청 평안남도의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 항두계놀이. 원래는 향두계이나 평안도 지방의 사투리로 항두계라 부르고 있다. 이 놀이를 국악극으로 꾸며 무대화 한 유지숙의 소리극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 항두계놀이의 한 장면,, 흥겨운 놀이와 맛깔스러
[그린경제/얼레빗 = 서한범 명예교수]지난주 속풀이에서는 김혜란 명창의 배따라기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다. 무엇보다도 이 소리극은 대사보다는 거의 소리(창)위주로 극을 진행시켜 마치 서양의 오페라를 연상하게 만들었다는 이야기, 배따라기란 말은 방언으로는 선리-船離, 즉 배 떠나가며 부르는 노래라는 의미인데, 그 곡조가 매우 쓸쓸하고 처량하여 바다로 떠나가는 어부들의 신세 자탄가(自嘆歌)와 같은 노래였다는 이야기, 이 소리극을 제작한 김혜란은 이창배, 안비취 문하에서 경서도 소리 전반을 공부한 명창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또 외국의 유명한 페스티벌 주최측에서그녀는 청중을 꼼짝 못하게 사로잡는 세계적으로도 매우 드문 목소리를 지니고 있으며 한국의 토속가요를 강렬함과 우아함, 그리고 가창력과 경쾌함이 조화된 훌륭한 가수라고 평가했다는 이야기, 그녀의 소리극 배따라기를 통해 관객은 이 노래가 더 이상 어부들의 신세자탄가가 아닌, 무사귀환(無事歸還)을 비는 아낙들의 희망이 담긴 합창곡이며 삶의 활력을 느끼게 되는 새로운 노래라는 점 등을 이야기 하였다. 이번 주 속풀이 152에서는 현재 서울시 송서율창의 예능보유자로 활동하고 있는 유창 씨의 소리극과 관련한 이야기를 해
[그린경제/얼레빗 = 서한범 명예교수] 장대장타령과 같은 고전 재담극이 현재의 세련된 개그나 코미디에 비하면 별 웃음거리가 되지 않는다고 해도 일제의 치하에서 웃음을 잃고 살던 당시의 대중들에게는 충분한 구경거리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재담극의 무대가 없어지고 관객의 발걸음이 끊어진 뒤, 다른 대중 오락물들이 생겨나면서 단절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맞은 것이다. 다행히 벽파 이창배 문하의 백영춘 사범이 제자들과 함께 박춘재의 장대장타령을 거의 완벽하게 복원하여 무대공연물로 재구성하였고 관련학자들도 이 공연물을 높게 인정한 것이다. 결과 서울시는 재담극을 무형문화재로 지정하고 백영춘을 보유자로 인정하기에 이른다. 민초들의 애환을 달래주던 익살과 해학의 소리극이 당당히 제도권의 보호를 받게 되었으니 앞으로의 활동이 기대되는 것이다. 국악속풀이에서는 1990년대 후반부터 일기 시작한 경서도 소리극의 활동 현황을 점검하며 앞으로의 활성화 가능성을 이야기 하고 있다. 그동안 이 면에는 국립국악원을 비롯하여 개인적으로 활동해 온 이춘희, 임정란, 백영춘 등을 소개하였다. 이번 속풀이 151에서는 김혜란 명창의 배따라기 이야기를 이어갈까 한다. ▲ 김혜란
[그린경제/얼레빗 = 서한범 명예교수] 지금 속풀이는 백영춘이 자료를 찾고 복원하여 공연해 온 장대장타령에 관한 재담극 이야기를 하고 있는 중이다. 백영춘이 복원한 장대장타령은 구한말 경서도 민요의 1인자 인 박춘재 작품인데, 박춘재는 경ㆍ서도 소리의 명창일 뿐만 아니라, 발탈, 재담소리, 만담 등에도 독보적인 존재였다는 이야기, 이 시기의 잡가집에는 그를 가리켜 조선 제일류가객 박춘재군으로 기록하고 있어 그의 존재를 짐작할 수 있다는 이야기, 그는 당시 일본 축음기회사에서 만들어낸 레코드도 가장 먼저, 가장 많이 제작했다는 이야기, 장대장 내용 중 너와 초록이 된다는 말은 곧 남(藍)이 된다는 의미이고 누루 황(黃), 샘 천(泉), 돌아갈 귀(歸)하겠소!. 라는 말은 그게 꼭 죽는다는 말!을 의미한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현재의 세련된 개그나 코미디에 비하면 별 웃음거리가 되지 않는다고 고개를 젓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시대를 약 10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생각해 본다면 충분히 이해가 될 수도 있는 내용들이다. 일제의 치하에서 별다른 구경거리 없이 웃음을 잃고 살던 당시의 대중들에게 이러한 능청스런 재담이나 연기는 충분히 위안거리가 되었을 것으로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