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요즈음 텔레비전 방송에서 많은 사람에게 인기 있는 스페인식 새우요리가 있는데 한 번 만들어주겠다는 우리집 안주인의 제의가 있었다. 기대를 잔뜩 하고 어떻게 만드나 지켜보니, 냉장고에서 새우살을 꺼내어 해동하는 것은 기본이지만 우선 생마늘을 그것도 거의 한 접시나 될 듯한 양의 마늘을 조각을 내어 프라이팬에서 올리브기름으로 서서히 익혀내고는 거기에 새우를 넣어 볶는다. 요리 이름이 감바스 알 아히요(스페인어: gambas al ajillo) 또는 감바스(gambas)란다. 말하자면 마늘 새우볶음인 셈인데, 맛은 그런대로 좋았다. 이 과정을 보면서 서양요리에 이렇게 많은 마늘을 한꺼번에 넣는 것을 처음 본 셈이어서, 나의 상식이 우르르 무너지는 경험을 했다. 서양 사람들이 마늘을 잘 안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이처럼 한꺼번에 많은 마늘을 넣어 요리를 만든단 말인가? 며칠 전 중복 때 삼계탕을 먹으면서 닭고기 안에 놓은 마늘, 그리고 별도로 나온 접시에서 마늘 조각을 집어 고추장에 찍어 먹는 등 우리는 마늘을 꽤나 먹는다고 생각했는데 우리보다 더 많이 마늘을 먹고 있었단 뜻이 된다. 우리 겨레는 단군 신화에서 곰이 마늘이랑 쑥을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채근담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옵니다. "굼벵이는 지극히 더럽지만, 매미로 변하여 가을바람에 이슬을 마신다. 썩은 풀은 빛이 없지만, 반딧불이 되어 여름 달밤에 그 빛을 밝힌다. 그러므로 깨끗한 것은 언제나 더러움에서 나오고 밝음은 언제나 어둠에서 생겨난다." 방을 깨끗이 하려면 걸레질을 해야 합니다. 걸레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러워지지만, 방은 깨끗해져 갑니다. 자신을 희생하여 세상을 밝히는 것은 아름답지만, 쉽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 빛을 남에게 전달하는 사람은 그 빛으로 인해 자신도 환해집니다. 폭풍우에도 반딧불이 꺼지지 않는 이유는 빛이 안에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내 안의 빛이 중요한 이유이지요. 주돈이는 애련설(愛蓮說)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연꽃은 진흙에서 피어나지만 더럽혀지지 않는다." 더럽혀지지 않는 것뿐 아니라 고귀한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는 것을 봅니다. 하루 가운데 가장 어두울 때는 해뜨기 직전입니다. 칠흑 같은 어두움이 지나야 밝은 빛이 옵니다. 사람은 어둠을 싫어하고 밝음을 좋아합니다. 하지만 어둠과 밝음은 빛의 유무일 뿐 대상의 본질은 변하지 않습니다. 우린 동전에 앞뒤가 존재한다는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중복을 지나니 이제 올 더위도 막바지로 접어든다. 다시 엄청 더운 날씨, 이런 상태는 찌는 더위인지 찌는 듯한 더위인지, 어느 표현이 더 정확한지 잘 모를 정도로 덥기는 덥다. 요사이 선풍기다 에어컨이 있으니 몸은 시원해질 수 있지만(우리 집은 아직 에어컨을 안 켰다. 그 비싼 에어컨 사 놓고 왜 안 쓰는지 이것도 고집의 하나겠지) 정신이 문제다. 더위에 탁 지쳐 아무 생각도 하기 싫다. 이럴 때 머리까지 식혀줄 시원한 바람은 없을까? 지난 초여름 다녀간 경북 예천 봉양면 삼강리 마을의 한 집에 걸린 글씨가 생각났다. 이름하여 ‘백세청풍(百世淸風)’이다. 삼강마을은 이름에서 보듯 낙동강과 내성천, 금천의 세 물길이 만나는 곳, 이곳은 문경 새재와 예천 안동의 내륙지방, 그리고 상주로 이어지는 낙동강 유역사람과 물자들이 교차하는 곳이다. 이곳 나루에 주막마을이 조성돼 관광객들이 찾고 있거니와 거기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마을에 임진왜란 직후 정승을 지낸 약포(藥圃) 정탁(1526~1605)의 셋째 아들 청풍자(淸風子) 정윤목(1571∼1629)이 세운 삼강강당이 있다. 청풍자는 나이 19살 때 중국 사신으로 가는 아버지를 따라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아래 내용은 장자가 공자를 보는 시각입니다. 공자가 살구나무 아래에서 쉬고 있었다. 제자들은 책을 읽고 있는데 공자는 노래를 부르며 거문고를 타고 있었다. 어떤 어부가 배에서 내려 조용히 노랫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이윽고 노래가 끝나자 어부가 물었다. “저 사람은 뭐 하는 사람이냐?” 자로(공자의 제자)가 대답하길 “공씨로 노나라의 군자입니다.” “공씨는 어떤 일을 하고 있는가?” “공씨는 태어나면서 몸소 인의를 실행하며 예악을 지키고 인륜을 갖추어 위로는 임금에게 충의(忠義)를 다하고 아래로는 만백성을 교화하여 장차 천하 사람들을 이롭게 하려 합니다. 객이 또 물었다. “영토를 가지고 있는 군주인가?” “아닙니다.” “그러면 제후나 왕을 돕고 있는 사람인가?” “아닙니다.” 객이 왔던 길을 돌아가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 사람 어질기는 틀림없이 어질지만, 아마도 그 몸은 화를 면치 못할 것이다. 마음을 괴롭히고 몸뚱이를 지치게 해서 자신의 참된 본성을 위태롭게 할 것이다."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7월 한더위 불덩이 같은 해가 하늘에 덩그러니 걸렸고, 바람도 구름도 없었다. 이런 뙤약볕에 앞뒤 뜰이 마치 커다란 풍로처럼 달아오르는데 새 한 마리도 감히 얼씬하지 못한다. 온몸에 흐르는 땀이 이쪽저쪽으로 개울을 이루듯 하니 밥상을 앞에다 놓고도 먹을 엄두를 내지 못한다. 댓자리를 깔고 땅바닥에 풀썩 눕고 싶었지만, 촉촉한 바닥도 기름처럼 끈적였다. 게다가 파리가 덤벼들어 목에도 윙윙, 코끝에도 윙윙, 쫓아도 쫓아도 좀처럼 도망가지 않았다. 정말 어찌할 바를 몰라 쩔쩔매는데, 갑자기 하늘로부터 시커먼 수레바퀴들이 굴러오는 듯, 아니면 수백만 개의 북이 한꺼번에 울리듯 우르꽝꽝 천둥이 울리며 소나기가 내리퍼부었다. 처마 끝의 낙수는 폭포보다 요란했다. 땀이 걷히고 습기가 가시고 파리떼가 자취를 감추자 숟갈을 들었으니 이 또한 즐거움이 아닌가. 요즈음 우리 농촌의 무더위를 여실하게 그려낸 것 같은 이 문장은 명나라가 망하고 청나라가 일어나는 이른바 명말청초(明末淸初)를 살았던 중국의 지식인 김성탄(金聖嘆)이 쓴 글이다. 다른 게 있다면 목에도 윙윙, 코에도 윙윙하는 파리가 좀 많다는 정도이지만, 농촌의 한여름은 이렇게 사람을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소현세자와 강빈. 개화당이 새로운 나라를 꿈꾸며 갑오개혁의 기치를 올리기 250여 년 전, 새로운 조선을 꿈꾼 부부가 있었다. 이들은 병자호란 이후 청나라에 인질로 잡혀있던 9년 동안 가난하지 않은 조선, 청나라의 말발굽에 짓밟히지 않는 조선을 만들기 위해 불철주야 애썼다. 그러나 그 꿈은 조선에 돌아오자마자 사라져버렸다. 조선 역사에서 가장 안타까운 일 가운데 하나가 바로 소현세자 부부의 죽음이다. 부왕인 인조가 소현세자를 독살했다는 정확한 증거는 없지만, 여러 정황상 인조의 묵인 아래 독살되었다고 보는 것이 정설이다. 강성한 조선을 꿈꿨던 소현세자 내외는 어찌하여 이렇게 허망하게 가야 했을까. 이들이 인조 사후 조선을 통치했다면 조선은 경술국치를 겪지 않아도 됐을까.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이들의 죽음은 국운의 융성과 쇠퇴를 가른 뼈아픈 이정표였다. 이 책, 《조선궁중잔혹사》를 쓴 김이리 또한 이런 안타까움을 느꼈다. 지은이는 《조선왕조실록》과 《한국역대 궁중비사》에서 민회빈 강씨에 대한 새로운 자료를 찾을 때마다 그녀의 혜안과 열정에 탄복하며, 이들의 안타까운 죽음에 대한 비사를 역사장편소설로 절절히 그려냈다. 소설은 강빈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저는 아산병원에 문상갈 때 잠실나루역에서 내려 성내천을 건너갑니다. 성내천변을 따라 걷는 맛이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잠실나루역 근처에 있는 헌책방을 둘러보는 맛도 있기 때문입니다. ‘서울책보고’라고 서울시가 운영하는 복합문화공간(www.seoulbookbogo.kr)인데, 여기에 30개 가까운 헌책방이 입주하여, 저마다 서가를 차지하고 각자 소장한 책들을 보여줍니다. 책들이 주제 별로 꽂혀있지 않고 헌책방별로 꽂혀있는 것이 조금 흠이긴 하나, 각자의 헌책방 서가마다 돌아보는 맛이 있습니다. 얼마 전에도 문상가면서 ‘서울책보고’를 들렀는데, 여기서 《탐라문견록》이란 책을 발견하였습니다. 《탐라문견록》이란 1731년 9월 정운경(1699~1753)이 제주에서 듣고 본 것을 기록한 책입니다. 정운경은 제주목사로 부임하는 아버지 정필녕을 따라 제주에 와서 《탐라문견록》을 남긴 것이지요. 《탐라문견록》에는 정운경이 제주 전역을 여행하고 쓴 여행기와 제주의 특산물인 귤을 자세히 관찰하고 기록한 글도 있지만, 책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것은 풍랑을 맞아 이국으로 표류한 제주도민의 이야기를 기록한 표류기입니다. 바다를 소홀히 하여 공도(空島)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지나가는 개미를 밟아 죽이는 일을 어떻게 볼 것인가? 법적인 측면에서, 도덕적인 측면에서, 또는 윤리적인 측면에서 우리는 개미를 죽이는 일을 비난할 수 있겠는가? 비난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개나 고양이 같은 동물에게 사람과 같은 생존권을 인정하자는 것이 동물보호론자들의 주장이다. 프랑스 파리의 유네스코 본부에서 세계동물권리선언이 발표된 것은 1978년 10월 15일이다. 동물권리선언의 제1조는 다음과 같다. 제1조 모든 동물은 태어나면서부터 평등한 생명권과 존재할 권리를 가진다. 여기에서 동물의 정의와 범위가 문제가 될 것이다. 동물의 정의에 이의 없이 포유류(고양이, 개, 소, 말, 염소 등등)는 당연히 포함될 것이다. 돌고래도 포유류이니 포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바닷가재는 어떨까? 개미는? 꿀벌은? 질문이 확대되면 복잡해지지만, 이러한 질문에 답하려는 시도가 환경윤리다. 환경윤리는 생태계의 모든 생명체를 인간 생명과 대등한 존재로 인정하고, 생명체의 생존권을 인정하자는 윤리다. 모든 생명체에 환경윤리를 적용하면 개미를 밟아 죽이는 일은 나쁜 일, 비윤리적인 행동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논에 농약을 뿌려 간접적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비가 온다는 것은, 우산을 들고 있지 않은 사람에게는 가는 길을 멈추게 하는 힘이 있다. 며칠 전 구파발역 쪽 병원에 내려갔다가 구파발천 옆길을 따라 올라오는데 예보에 없는 비가 뚝뚝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제법 굵은 빗줄기로 바뀌어 내리기 시작한다. 우산이 없으니 우선 길 중간에 설치된 휴게시설의 한 의자에 앉아 비를 피하며 쉬다가 문득 뒤를 보니 의자 뒤편에 시가 하나 판에 새겨져 있는데 자세히 보니 윤동주 시인의 <새로운 길>이란 시이다.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민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고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오늘도 내일도 길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윤동주 하면 대충 '별을 헤는 밤'이라던가 '서시(序詩)'를 접해 온 우리에게 "아이구. 윤동주에게 이런 시가 있었나?" 하며 그의 시를 다시 보게 한다. 만주 용정에서 태어난 윤동주가 서울 연희전문을 다니면서 시를 많이 썼고, 이 시도 그때 써서 교지인 문우(文友)에 발표한 것이라는데, 청년 윤동주가 이런 소년 같은 감수성으로 새로운 길을 가고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물러갈 것이냐 나아갈 것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조선의 햄릿으로 살다간 김시습의 생애를 한 마디로 보여주는 문장이다. 한평생 출처(出處), 곧 선비의 나아감과 물러남을 고민한 그는 고뇌하는 지식인이었다. 선비가 세상에 나아가는 것을 ‘출(出)’, 재야에 묻혀 자신을 갈고닦는 것을 ‘처(處)’라고 한다면, 김시습은 초야에 묻혀 세월을 보내던 처사(處士)에 가까웠다. 그러나 한평생 그를 괴롭힌 것은 출사(出仕)에 대한 욕망이었다. 불의한 세조 정권에 맞서 절의를 지키려 처사가 되었건만, 타고난 재능으로 조정에 출사하여 천하를 경륜하고자 했던 젊은 날의 꿈은 한평생 그를 괴롭혔다. 강숙인이 쓴 이 책, 《나는 김시습이다》는 이처럼 절의와 세속적 성공 사이에서 갈등한 김시습의 내면을 1인칭 시점으로 세밀하게 그려냈다. 지은이는 세조 정권에 저항하며 장렬히 목숨을 버린 ‘사육신’의 그늘에 가려진 ‘생육신’이 겪었을 ‘살아남은 자의 슬픔, 그 가늘고 여린 슬픔’에 대해 쓰고자 했다고 밝힌다. 사육신 곧 1456년 단종 복위를 도모하다 목숨을 잃은 성삼문ㆍ박팽년ㆍ하위지ㆍ이개ㆍ유성원ㆍ유응부 등 6명은 조선 중기 이후 충절의 상징으로 칭송되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