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운명이 때로 가혹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세상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느낄 때, 좋은 벗이 해주는 위로는 천군만마보다 더 힘이 날 때가 있다. 이덕무와 박제가도 그랬다. 서얼로 태어나 가진 재주를 마음껏 펼치지 못하는 울분을 삼켜야 했던 그들은, 서로가 가진 슬픔을 알아보았다. 그리고 상대의 귀한 재능을 알아봐 주고 독려해 주며, 어려운 세상을 함께 헤쳐 나갔다. 강민경이 쓴 이 책, 《운명아, 덤벼라!》는 신분이 주는 한계에 힘없이 굴복하지 않고, 긍정적으로 자신의 미래를 개척한 이덕무와 박제가의 우정을 담았다. 운명에 순응하지 않고 ‘덤벼라!’는 자세로 맞서 분투할 때, 견고할 것 같던 운명도 슬쩍 길을 비켜주었다. 두 사람은 외적으로는 매우 달랐다. 우선 이덕무는 박제가보다 아홉 살이 많았다. 이덕무는 큰 키에 마른 편이고, 박제가는 키가 작고 다부졌다. 이덕무는 유순한 성격이었고, 박제가는 거침없는 성격이었다. (p.28) 내 삶에 대해 감히 누가 이러쿵저러쿵할 수 있단 말입니까? 태어나기 전부터 삶이 정해져 있다고요? 내 힘으로 삶을 어찌할 수 없다고요? 운명이 나를 들었다 놨다 마음대로 할 수 있다면 나라고 그깟 운명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고교동기 조윤신으로부터 《레이의 사부곡(思夫曲)》 책을 선물 받았습니다. 책 표지에는 빨간색 큰 글씨로 《레이의 사부곡(思夫曲)》이라고 되어 있는데, 그 앞의 작은 글씨의 제목까지 다 하면 <정치음모에 걸린 옥중의 용을 그리는 레이의 사부곡(思夫曲)>입니다. ‘사부곡’이란 지아비를 생각하며 부르는 노래라는 것이겠지요. 그러면 대충, 정치음모에 걸려 옥에 갇힌 ‘용’이라는 지아비를 그리워하며 쓴 책임을 짐작하게 됩니다. 자유당 때 조봉암 진보당 사건 아시지요? 《레이의 사부곡(思夫曲)》은 진보당 사건에 연루되어 옥고를 치른 윤신의 장인 전세룡 선생이 옥중에 있을 때 장모 정일례 여사가 장인에게 쓴 편지를 주로 담은 책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레이’는 정일례의 ‘례’를 약간 변형시켜 부르는 애칭이겠고, ‘용’은 ‘전세룡’의 ‘룡’일 것 같네요. 조봉암 진보당 사건은 잘 아시다시피 이승만 대통령이 정적 조봉암을 간첩으로 몰아 사형시킨 사건인데, 인혁당 사건과 함께 우리나라 대표적인 사법살인 사건입니다. 대한민국 사법부 치욕스러운 역사지요. 저는 법조인으로서 조봉암 사법살인을 마음 아파하는 사람인데, 뜻밖에도 윤신이 장인이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자선당! ‘착한 성품을 기른다’라는 뜻의 자선당은 세종이 큰아들인 세자 ‘향’에게 선물한 세자궁이었다. 경복궁 동쪽에 있어 ‘동궁’으로 불렸던 이곳에서 문종은 자랐다. 그러나 자선당은 오래 가지 못했다. 임진왜란 때 선조가 궁을 버리고 피난을 떠나며 궁궐이 불탔고, 이때 자선당 또한 주춧돌과 기단석만 남은 채 모조리 불타버린 까닭이다. 우리아가 쓴 이 책, 《돌아온 자선당 주춧돌》은 세종이 세자를 위해 지은 ‘자선당’에 쓰였던 주춧돌이, 임진왜란 때 화재에 불타고 고종 때 다시 지어졌다가 일제강점기 때 강제로 일본에 실려 가는 수모를 당하는 신산한 세월을 겪은 끝에 마침내 고국으로 돌아왔다는 이야기다. 임진왜란 때 불타버린 자선당이 다시 지어진 것은 수백 년이 지나 흥선대원군 때가 되어서였다. 자선당이 완공되며 고종의 아들인 순종이 자선당에서 지냈다. 그러나 그 시기도 잠시, 결국 순종은 일본의 위협에 자선당을 지키지 못하고 창덕궁으로 끌려가고 말았다. (p.35)자선당 터로 흥선대원군이 신하들과 함께 들어왔습니다. “자선당과 비현각을 지어라. 세자궁은 조선의 미래이다. 주변의 강한 나라들이 조선을 넘보려고 하지만 내가 있는 한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늦가을비가 추적거리고 내린다. 이런 날엔 시집이 읽고 싶다. 그 누구의 시집이라도 좋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한 권의 시집이 배달되었다. 텔레파시가 통한 것일까? 《예순 한살 인생 그래프》를 쓴 사람은 손선아 시인이다. 아! 벌써 그녀가 환갑의 나이를(?) 하며 책장을 연다. “침묵을 깨고 시인의 소임을 완수한다” 라는 머리말이 의미심장하다. 그동안 침묵이 길었던 이유에 대해 “첫 시집을 낸 이후....사느라 바빠서, 개점휴업, 장기간의 코로나, 게으름의 늪, 갑작스레 닥친 친정어머니의 죽음, 다리를 다쳐 병원 신세를 졌던 일” 등의 사연이 있어 두번째 시집이 늦어졌다고 말했다. 하나같이 공감 모드다. 친정어머니의 죽음까지 어쩌면 그렇게 내가 걸어온 길과 같을 수가 있을까? 듣고보니 손선아 시인의 ‘개점휴업’ 이유가 명색이 시인인 내 삶과 닮은 것 같다. 그래, 누구든 비슷한 삶을 사는 게 틀림없어...라고 나는 혼자 중얼거리며 시를 읽어 나갔다. 행간을 살피며 시를 감상해 나가는 동안, 나는 손선아 시인이 ‘명색이 시인’인 나와 다름을 눈치채기 시작했다. “침묵을 깨고 시인의 소임을 완수”하기 위해 글을 쓴 손 시인의 이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우리말글을 아끼고, 우리문화를 제대로 알려야겠다는 마음으로 인터넷을 활용하여 <날마다 쓰는 우리문화 편지>를 쓰기 시작하여 올해로 4,800회(19년째)가 넘었다. 그러나 아직 목이 마르다. 그래서 더 많은 이들에게 ‘한국문화’ 이야기를 전해주고자 한 권의 책으로 엮어 세상에 내놓는다. 딱딱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교과서 같은 한국문화를 벗어나 간결하면서도 이해하기 쉬운 그러면서 재미난 한국문화를 다룬 《한국인이 알아야 할 한국문화 이야기》를 통해 한국인은 물론, 전 세계에서 한류를 꿈꾸는 이들이 ‘제대로 된 한국문화’를 이해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는 새 책 《한국인이 알아야 할 한국문화》를 쓴 김영조 작가의 이야기다. 공감한다. 사실 기자는 일본어 전공자이다 보니 ‘한국어를 공부하는 일본인’ 들을 많이 알고 있다. 그들 가운데는 상당 수준의 한국어 실력을 지닌 사람들이 많은데 ‘한국어’를 어느 정도 익히고 나면 그다음에 찾는 것이 ‘한국문화’에 대한 관심이다. 한결같이 그들은 이갸기한다. ‘쉽고 재미난 한국문화 책’을 소개해 달라고 말이다. 그들의 목마름을 해결해 주고자 그동안 기자는 수없이 대학도서관이나 서점에 가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옛 그림. ‘옛 그림’이라는 말을 들으면 약간은 어렵고, 이해하기 쉽지 않을 것 같고, 혼자서는 그다지 찾아보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물론 옛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도 많지만, 보통은 친절한 안내가 없으면 옛 그림은 다소 어려운 분야다. 이 책, 《옛 그림 읽어주는 아빠》의 지은이 장세현은 옛 그림을 ‘읽는다’. 보통 그림은 본다고 생각하지만, 우리 옛 그림은 보는 그림이자 읽는 그림인 까닭이다. 그림을 읽는다는 것은 쉽게 말해 상형문자를 읽듯, 그림을 글자처럼 읽는 것이다. 또 하나, 옛사람들에게 그림은 단지 그림이 아니라 마음을 갈고 닦는 하나의 수양 방법이었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 먹을 갈며 마음을 가라앉히고, 붓질하며 마음을 괴롭히는 헛된 생각과 욕심을 다스렸다. 이런 마음 수양 그림의 대표적인 분야가 ‘사군자’다. 선비의 기개를 뜻하는 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는 선비들에게 두루 사랑받았지만, 그 가운데 으뜸은 대나무였다. 그림을 그리던 관청인 도화서 화원을 뽑는 시험에서도 대나무 그림을 가장 중요하게 보았다. 대나무를 운치 있고 격조 있게 그리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 대나무 그림에 바위가 더해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꽃의 향기는 백 리를 가고 술의 향기는 천 리를 가지만 사람의 향기는 만 리를 간다. 난의 향기는 백 리를 가고 먹의 향기는 천 리를 가지만 덕의 향기는 만 리를 간다."란 구절을 정운복이 쓴 《행복한 그루터기》라는 책에서 본다. 그는 <우리문화신문>에 ‘정운복의 아침시평’이란 칼럼을 연재하고 있는 강원 동산중학교 교장으로 “봄향기를 대하며 더불어 사람 냄새나는 싱그런 세상을 꿈꾸어 봅니다.”라고 말한다. 그는 날마다 아침 편지를 써서 번개글(이메일)로 지인들에게 보내기 시작한 지 어언 30년이란다. 그는 책에서 말한다. “제가 30년 넘게 아침 편지를 보내는 이유는 알량한 지식을 자랑하고자 함이 아니고 글 쓰는 잔재주를 드러내려 함도 아닙니다. 어쩌면 매일매일 공중매체를 통해 쏟아져 나오는 각종 어두운 소식들 흉악범, 사기군, 협잡꾼, 권모술수가 난무한 세상. 하지만 흉측한 것보다는 아름다운 것이 더 많고 아프고 슬픈 것보다는 기쁜 것이 더 많고 우리가 함께 누려야 할 행복의 가치가 더 큼을 같이 공유하고 싶기 때문입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아무리 땅이 척박해도 풀들은 제각기 뿌리를 내리고 아무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슬슬 거닐다》 ‘숨어있는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산책길 34곳’이라는 부제처럼, 아름다운 산책길을 걷고 싶을 때 보기 좋은 책이다. 어디론가 바쁘게 가야 하는 일상, 그 일상을 내려놓고 ‘슬슬 거닐고’ 싶을 때가 있지 않은가. 이 책 《슬슬 거닐다》은 번역가이자 작가인 지은이 박여진이 월간지 기자이자 사진가인 백홍기와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곳을 두루두루 찾아다닌 기록이다. 이들의 발걸음이 아니었다면 쉬이 몰랐을 주옥같은 명소들이 유려한 문체로 소개되어 있다. 대표적인 곳이 문경 고모산성이다. 산성을 걸어본 이라면 한편으로는 그 촘촘한 짜임새에, 한편으로는 이제 부질없어져 버린 산성의 튼튼한 기능에 알 수 없는 감회를 느꼈을 법하다. 지은이 또한 그랬다. (p.225) 성곽길에는 특유의 결연함이 있다. 촘촘히 올라간 돌 마디마다 조금의 허술함도 용납하지 않으려는 고집스러운 견고함이 느껴진다. 높은 곳에서 강이나 도시를 한눈에 내려다보는 위엄도 근사하다. 다만 활과 포를 쏴 필사적으로 막아야 할 적이 없는 이 시대의 나른함과 성곽의 결연함이 잘 어울리지 않을 뿐이다. ‘비장할 필요가 없어진’ 고모산성은 이제 슬슬 거닐기 좋은 산책로가 되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p.126) 나는 몇 달을 더 못 살겠다. 그러나 동지들은 서러워 말라 내가 죽어도 사상은 죽지 않을 것이며 열매를 맺는 날이 올 것이다 형들은 자중자애하여 출옥한 후 조국의 자주독립과 조국의 영예를 위해서 지금 가진 그 의지 그 심경으로 매진하기를 바란다 평생 죄스럽고 한 되는 것은 노모에 대한 불효가 막심하다는 것이 잊히지 않을 뿐이다 조국의 자주독립이 오거든 나의 유골을 동지들의 손으로 가져다가 해방된 조국 땅 어디라도 좋으니 묻어주고 무궁화꽃 한 송이를 무덤 위에 놓아주기 바란다 백정기 열사의 무덤 비문에 적힌 이 시는, 그가 숨을 거두기 전 동지들에게 남긴 말이다. ‘옛 무덤’이라고 하면 흔히 망자가 묻혀 있는 정적인 공간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무덤 하나하나마다 이처럼 심금을 울리는 사연이 배어있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라고 했지만, 그렇지만도 않다. 청동말굽이 쓴 책, 《옛 무덤이 들려주는 이야기 한국사》는 그런 의미에서 더욱 특별하다. 책에 소개된 옛 무덤들은 그 자체로 죽은 이를 대변한다. 몇백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우리에게 말을 걸어온다. 책은 크게 ‘나라를 세운 왕들의 무덤’, ‘위기 앞에서 용기를 보여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안재성 작가가 쓴 《박열, 불온한 조선인 혁명가》를 읽었습니다. 그런데 왜 ‘불온한 조선인 혁명가’일까요? 박열은 동경 유학 중 기존의 독립운동에서 더 나아가 아나키스트(무정부주의자)로서 일왕 체제를 부정하는 활동을 벌이다가 1923년 9월 5일 체포되었습니다. 그리고 1945년 10월까지 22년 동안 긴긴 옥중 생활을 하였습니다. 일왕을 암살하려고 폭탄을 구입하려는 등 일제의 입장에서는 매우 불온한 투사였기에 작가는 박열에게 ‘불온한 조선인 혁명가’라는 이름을 붙인 것일까요? 알고 봤더니 박열 혁명가는 제 고등학교 대선배님이시네요. 고교 시절 박열은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는 일본 군대를 환송하는 정류장에서 ‘일본 만세(萬歲)!’라고 외쳐야 할 것을, ‘일본 망세(亡歲)’라고 외치며 스스로 위로했다고 하네요. 1919년 10월 무렵 동경으로 유학을 온 박열은 흑도회를 창립합니다. 아나키즘을 상징하는 검정색을 넣어 이름을 지은 것이라고 하네요. 흑도회의 강령 가운데 하나는 이렇습니다. “우리는 어떤 고정된 주의가 없다. 인간은 일정한 틀에 박혀버리면 타락하고 멸망하기 마련이다. 마르크스나 레닌이 무엇이라 하던 크로포트킨이 무엇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