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정석현 기자] 국립극장(극장장 박인건) 전속단체 국립창극단(예술감독 겸 단장 유은선)은 <완창판소리 – 이소연의 적벽가>를 5월 17일(토) 국립극장 하늘극장에서 공연한다. 국립창극단 창악부 부수석이자 다수의 창극 작품에서 주역으로 활약하고 있는 이소연 명창이 박봉술제 ‘적벽가’로 생애 첫 완창 무대를 선보인다. 이소연 명창은 11살 때 소리를 좋아하던 아버지의 권유로 자연스럽게 판소리의 길에 들어섰다. 판소리 ‘적벽가’ 예능보유자 송순섭 명창의 문하에서 소리 공부를 시작했다. 이후 송순섭 명창에게 ‘흥보가’, ‘수궁가’ ‘적벽가’를, 안숙선 명창과 정회석 명창으로부터 각각 ‘춘향가’ ‘심청가’를 사사하며 판소리 다섯 바탕을 두루 익혔다. 2004년 대한민국 최대 국악 경연 대회인 임방울국악제에서 판소리 일반부 최우수상을 수상하며 실력을 인정받기도 했다. 2007년에는 국가무형유산 판소리 ‘적벽가’ 이수자로 뽑혔고, 같은 해 국립창극단 주최 차세대 명창으로도 발탁되며 젊은 세대를 대표하는 소리꾼으로 자리매김했다. 2013년 국립창극단 입단 이후 창극 <변강쇠 점 찍고 옹녀> 옹녀 역, <심청가> 황후 심청 역,
[우리문화신문=정석현 기자] 국립극장(극장장 박인건)은 <완창판소리 - 김금미의 적벽가>를 4월 13일(토) 국립극장 하늘극장에서 공연한다. 국립창극단 창악부 악장이자, 다수 작품에서 굵직한 역할을 도맡아 온 김금미 명창이 박봉술제 ‘적벽가’를 들려준다. 김금미는 판소리의 궤를 같이하는 집안의 계보를 이어 판소리 계승에 헌신해 온 인물이다. 남도민요 ‘육자배기’의 대가인 외할머니 김옥진 명창을 시작으로, 전 한국국악협회 이사장이었던 어머니 홍성덕 명창의 계보를 이어 3대째 소리의 길을 잇고 있다. 어릴 적 소리보다 한국무용을 먼저 접하며 1991년 전주대사습놀이 무용 부문에서 이매방류 전통무용으로 차상을 받는 등 소질을 보였으나, 소리 사랑이 각별한 어머니의 권유로 다소 늦은 25살부터 판소리를 배우기 시작했다. 늦은 나이에 시작했지만 탁월한 기량을 갖춘 김금미는 성창순 명창으로부터 ‘심청가’ ‘흥보가’ ‘춘향가’, 김영자 명창에게 ‘수궁가’, 마지막으로 김경숙 명창으로부터 ‘적벽가’를 배웠다. “늦은 나이에 입문한 만큼 더욱 소리에 매진할 수 있었다”라고 말하는 그는 2007년 전주대사습놀이 명창부 부문에서 대통령상을 차지하며 소리로도 단연 실력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오는 9월 2일 낮 3시 서울 삼성동 한국문화의집(KOUS)에서는 2023년 이수자 지원사업에 뽑힌 <박성환 중고제 적벽가 완창> 공연이 열린다. 중고제 판소리는 경기ㆍ충정을 기반으로 동편제-서편제보다 앞선 시기에 정립되고 유행했던 고풍스러운 판소리제다. 이제 중고제는 이동백-정광수-박성환으로 전승된 이동백제 적벽가에 그 전형이 남아 있는데, 사설과 곡조, 장단과 붙임새, 창법 등이 동편제나 서편제와는 완연히 다른 독특한 소릿제다. 이토록 웅장한 소리가 있던가? 이동백의 중고제 적벽가 가운데 초반 '삼고초려' 대목은 압권이다. "노룡이 꿈틀대듯 위의를 갖준 장엄한 성음"(박성환)이고 "통으로 우겨내어 우직하게 밀어부치는 소리"로 "장마 흙탕물 속에 바윗돌과 나무등지가 마구 구르고 뒤얼크러져 쏟아져 내리는 계곡물 소리와 같다."정광수 명장) 귀하디 귀한 소리, 중고제 적벽가 ”이 소리 마구 부르지마라. 요새는 안 하는 좋은 붙임새이고 좋은 더늠들인디 내가 소리를 하면 소위 명고라는 이들도 내가 삐었다고 하거든. 잠 귀헌 줄을 몰라요.” (정광수 명창) 현재 유성기 음반이 아닌 직접 전승으로 남아 있는 중고제 판소리는 이동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까지는 판소리 <적벽가> 가운데 화용도 좁은 길에서 만난 조조와 관우의 “살려 달라.”와 “칼 받으라.”의 싸움이 처절하게 펼쳐졌다는 이야기, 조조와 그의 모든 장졸들이 모두 다 꿇어 엎어져, 앙천(仰天) 통곡을 하며 살려달라고 애원하니 관공의 어진 마음, 조조를 쾌히 놓아주고, 돌아와 공명께 법대로 처벌하기를 요청한다는 이야기, 그런데 공명이 내려와 관우의 손을 잡고 회답하기를 “조조는 죽일 사람이 아닌 고로 장군을 보냈으니 그 일을 뉘 알리요.”라고 답을 한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판소리 <적벽가>의 주요 대목은 이제까지 소개한 바와 같이 조조와 관우가 만나게 된 화용도 대목을 비롯하여 ‘삼고초려’ ‘장판교 싸움’, ‘군사 설움타령’, 적벽강 싸움‘ 등으로 구분이 되는데, 유파에 따라서는 조금씩 들쑥날쑥하여 일정하지 않다. ’삼고초려(三顧草廬)‘ 대목은 글자 그대로 풀밭 속의 오두막집을 세 번째 돌아본다는 뜻으로 숨어 사는 현명한 사람을 임금이 세 번씩이나 찾아가서 만난다는 말이다. 임금을 도와 세상을 이롭게 만들 위인을 얻는다는 일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님을 알게 하는 말이다. 이 대목은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판소리 <적벽가> 가운데 화용도 좁은 길에서 만난 조조와 관우의 이야기를 하였다. 조조가 안전하다는 화용도 좁은 길로 들어서자마자, 매복해 있던 관우에게 잡히게 되었다. 조조와 수하 장수들의 생사가 관우 장군에게 달려있으니 별반통촉해 달라고 애원하는 대목이 눈물겹기만 하다. 조조는 옛날 유공지사와 자택유자, 두 사람 사이에 있었던 일을 상기시키며 살려 달라고 간청한다. 판소리에서 확인되는 이야기의 전개는 너무도 사실적이다. 사설의 처리를 아니리와 발림(동작이나 연기)으로 더욱 구체적으로 펼치고 있어서 훨씬 이해가 빠르고 재미있다. 같은 사설의 동일한 내용을 노래한다고 해도 경기좌창으로 감상하는 적벽가와는 대조적이다. 위에서 유공지사와 자택유자 두 사람을 생각해서 제발 덕분에 살려 달라는 대목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일까? 중국 춘추 전국시대 정(鄭)나라의 자택유자가 위나라를 쳐들어갔는데, 위나라의 유공지사에게 쫓기게 되었다. 두 사람은 모두 활을 잘 쏘았는데, 유공지사는 자택유자에게 직접 활 쏘는 법을 배우지는 않았지만, 활쏘기를 지도해 준 간접적인 선생이 된다고 해서 그를 예우하여 죽이지 않고 살려 준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경기좌창으로 부르는 <적벽가>의 내용 중, 적벽 전투에서 크게 패한 조조와 그의 군사들이 화용도(華容道) 좁은 길에서 관우(關羽)에게 잡혀 목숨을 구걸하는데, 관우는 조조 일행의 길을 열어주고 말머리를 돌렸다고 이야기하였다. 적군을 생포했으나 돌려보냈다고 하면, 과연 누가 이긴 것인가? 개선장군의 늠름한 자세로 돌아와 환영받아야 할 관우의 측면에서 볼 때, 조조를 놓아주고 빈손으로 돌아온 그를 대하는 시선이 궁굼하기만 하다. 그의 승리인가? 아니면 그 난관을 어떻게든 뚫고 되살아 간 조조의 승리인가? <적벽가>가 던져주는 대의(大義)란 참으로 크고 멋지다. 경기좌창으로의 <적벽가> 내용은 이미 소개하였거니와 같은 대목을 정권진 명창의 판소리로, 관우와 조조의 대화 내용을 살펴보기로 한다. 경기좌창과는 달리, 판소리에서는 시작 부분부터 벌써 연극을 감상하듯, 관우와 조조 두 사람의 대화가 <아니리>로 진행되고 있다, 아니리란 창(唱)이 아니라, 말로 하는 곧 대사 부분이다. 조조의 부하들이 “전후좌우가 복병이고, 진퇴유곡입니다. 전일 승상(조조)께서는 관공에게 깊은 은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판소리로 부르는 <적벽가>와 경기 좌창의 <적벽가>는 사설 내용이 부분적으로 비슷하다는 점을 빼고는 창법이나 선율 진행, 표현방법, 등이 양자가 전혀 다른 노래라는 점, 좌창을 <잡가(雜歌)>라 부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점도 이야기하였다. 이번 주에는 조조와 그의 군사들이 화용도 좁은 길에서 관우(關羽)에게 잡혀 목숨을 구걸하는 대목을 소개한다. 서울, 경기의 좌창 가운데 한 곡인 적벽가에는 적벽의 전투에서 크게 패한 조조의 군사가 화용도 좁은 길로 들어서자, 그곳에 매복해 있던 관우(關羽, 관운장, 관왕)에게 잡혀 목숨을 구걸하는 대목이 나온다. 관우가 조조에게 목을 늘여 칼을 받으라고 명하는 대목이 예사롭지 않다. 이 대목의 경기좌창 사설은 아래와 같다. “이놈, 조조야,! 너 잡으러 여기 올 제, 군령장 두고 왔다. 네 죄상을 모르느냐? 천정(天情) 거역하고 백성을 살해하니, 만민(萬民) 도탄(塗炭)을 생각지 않고, 너를 어이 용서하리. 간사한 말을 말고, 짧은 목, 길게 늘여 청룡도(靑龍刀) 받으라, 하시는 소래, 일촌간장(一寸肝腸)이 다 녹는다.” 위에서 군령장(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정선아라리가 불리고 있는 지역을 아라리권역, 또는 메나리권이라고 부른다는 이야기, ‘메나리’라는 말은 ‘뫼놀이’, ‘뫼노리’의 변화형으로 산에서의 놀이, 곧 유산(遊山)의 의미라는 이야기, 서울 경기는 경 토리 권역, 수심가 토리는 황해도와 평안도, 그리고 전라도 지방은 육자배기 토리 등이 특징있게 불린다는 이야기, 김옥심 경기명창은 메나리권의 ‘정선아리랑’을 경토리로 불러 널리 확산시켰는데, 지금도 이 노래는 ‘경기제 정선아리랑’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이번 주에는 “판소리의 ‘적벽가’ 또는 경기 12좌창의 ‘적벽가’라는 노래는 무엇이 같고 무엇이 어떻게 다른가?”라는 질문이 독자로부터 있어 이에 대해 견줘보기로 한다. 원래, ‘적벽가’는 판소리 5마당, 곧 ‘춘향가’, ‘심청가’, ‘수궁가’, ‘흥보가’, ‘적벽가’ 가운데 하나로 그 내용은 중국 위ㆍ한(漢)ㆍ오 등 삼국의 조조, 유비, 손권 등이 서로 싸우는 중국소설 《삼국지연의》 속에서 적벽강에서의 싸움 이야기를 판소리로 짠 것이다. 그런데 판소리 말고도 서울 경기의 좌창 12곡 속에도 ‘적벽가’라는 노래가 들어있어서 이들은 같은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경기 과천시에서 열린 제17회《전국 경기소리 경창대회》관련 이야기를 하였다. 출전자의 수가 많다고 해서 권위있는 대회는 아니라는 점, 과천대회의 본선은 경기 12좌창 중에서 긴 곡이든, 짧은 곡이든 1곡을 완창(完唱)하는 조건이란 점, 영예의 대상은 ‘적벽가’를 선택한 강원도 인제 출신의 장은숙 명창이 차지했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본선 무대에 오른 경연자들의 수준 못지않게, 과천의 경창대회는 국악계의 모범적인 대회로 운영되어 왔다는 점이 객관적인 평가다. 그래서일까? 출전자들은 참여하고 싶은 대회로 평가하는데 주저하지 않고 있다. 당일 학생부의 전반적인 평가는 예년 수준이었지만, 명창부 경연자들의 기량수준은 매우 높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 가운데서도 이번 대회에서 장원에 오른 장은숙은 네 번째 도전 무대에서 드디어 그 뜻을 이루었기에 남다른 감회를 느끼고 있다. 당일 본선에서 그가 부른 곡은 ‘적벽가(赤壁歌)’였다. 이 곡은 12좌창 가운데서도 가장 길고 어려워 대부분이 피하는 소리인데, 그는 의외로 여유있는 호흡을 유지하면서 경기 좌창의 특징적 창법으로 그 긴소리를 깔끔하게 이어나갔다. 특히, 요성(搖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