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황금빛 탈을 쓴 그 사람 방울 채찍 손에 들고 귀신 부리네. 빨리 뛰다가 천천히 걸으며 추는 춤은 봉황이 너울너울 나는 듯하구나. 9세기에 최치원(崔致遠)이 지은 <대면(代面)>이라는 시입니다. 특정한 인물이나 동물을 형상화한 탈 곧 가면을 쓰고 나와 극적인 장면을 연출하는 전통연극을 우리는 탈놀이, 탈춤, 탈놀음이라고 부르는데 처용무, 북청사자놀음, 은율탈춤, 오광대놀이, 송파(양주, 퇴계원)산대놀이, 하회별신굿탈놀이 따위가 있습니다. 위 최치원의 시로 미루어 보면 이미 신라시대에 탈놀이를 즐겼음을 알 수 있지요. 그런데 그 이전 신석기시대 유적인 부산 동삼동에서 나온 조개탈과 강원도 양구에서 출토된 흙으로 빚은 탈이 있고, 고구려 안악 3호 무덤 벽화에도 탈춤 추는 사람이 있는 것으로 보아 탈놀이의 역사는 무척이나 오래된 듯합니다. 다만 신라 때의 처용무처럼 오래전의 탈놀이는 주로 귀신을 쫓기 위한 것이었지만 조선시대 이후 전승된 탈놀이들은 “탈 잡는 일”을 하는 것들입니다. 백성은 지배층인 양반들에게 탈 잡을 일이 많았지만 대놓고 탈을 잡으면 바로 보복 곧 “뒤탈”을 당할 것이기에 탈을 써서 지배층
[우리문화신문=이달균 시인] 횃불은 사위고 광대놀이 끝났건만 신명은 신명대로 취기는 취기대로 흥타령 사랑타령에 삼삼오오 몰려간다 봄밤은 깊어가고 달은 이지러진다 광대놀이 끝나고 나니 개구리만 청승인데 멀리서 별똥별 하나 벽방산을 넘어간다 < 해설 > 이제 하직 막죽*이다. 언제나 끝에 이르면 미진한 것에 눈길이 간다. 부족한 부분도 많고, 다 못한 얘기도 많다. 하지만 재능이 그 정도이니 어쩔 수 없다. 광대놀이 끝나고 파장이 되면 그동안 놀았던 신명은 찾을 길 없고, 집에 갈 걱정, 두고 온 식구들 생각에 마음이 조급해진다. 달아올랐던 취기도 차츰 가라앉고, 달도 저만치 이지러진다. 연재를 마치면서 나도 먼지를 툭툭 털고 일어선다. 구부려 앉은 무릎이 아프다. 고성오광대를 주제로 한 시집 《말뚝이 가라사대》, 그 다섯 과장을 허위허위 달려오다 보니 숨은 턱에 차고 발목은 저려온다. 단시조와 연시조, 사설시조를 혼용하여 오십 네 수로 엮은 시조 작품에 해설이랍시고 붙이다 보니 더러 허튼소리도 많았다. 이런 노래일수록 사설시조가 제격이란 생각으로 넋두리나 흥타령 등 중요한 부분은 사설시조로 구성했다. 사설시조란 앞말이 뒷말을 부르고 뒷말이 앞말을 주
[우리문화신문=이달균 시인] 하직 막죽 가는 길에 소원이나 빌어주소 어화넘자 어화넘자 조심넘자 어화넘자 밀어라 땡겨라 어화넘자 이장님 면장님 군수님도 지전 한 장 꽂고 가소. 조롱박 벙거지 다 닳아가고 상두꾼 짚신 마련 시급하니. 어화넘자 어화넘자 탈바가지 벗어보소. 갑갑해서 지리 죽것다. 탈 쓰고 탈놀음 백날을 놀아도 말뚝이 누군지 문둥이 누군지 아무도 모른다. 몰라도 탈, 알아도 탈, 먼지 탈탈 털지 마라. 어화넘자 어화넘자 춤꾼도 구경꾼들도 목축이고 파장하자 < 해설 > 한참 광대놀이 빠져 있다 보니 벌써 밤이 찾아왔다. 몇 고개도 넘어야 하고, 집에 갈 일이 막막하다. 그래도 마지막을 보고 가야지. 어느덧 오광대 다섯 과장이 끝나고 맨 마지막 상여 나가면서 광대패들이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마당을 휘돌아 간다. 에라 모르겠다. 구경꾼들도 꽹과리에 맞춰 뒤뚱뒤뚱 신명을 푼다. 어차피 놀이 속에 연출된 초상이니 상주도 백관도 있을 리 없다. 그러나 오광대 상두꾼들 노잣돈은 있어야지. “어허, 거기 군수님 지전 한 장 걸어주소. 그래야 군의원도 걸고, 영천 아재도 걸고, 들기미 이씨도 걸 것 아니요” 니 한 장, 내 한 장 걸다 보니 제법 주렁주렁
[우리문화신문=이달균 시인] 어이호, 어어이호 어화넘차 어이허호 불쌍하고 불쌍하다 이씨 부인이 불쌍하다 구박에 칠거지악에 며느리 시집 징그럽소 어이호, 어어이호 어화넘차 어이허호 상봉이자 이별이라 영결종천 웬 말이요 타관 땅 노상객사가 타고난 사주던가 어이호, 어어이호 어화넘차 어이허호 이제 가면 언제 오나 기약 없는 길이로다 저승서 다시 만나면 선배인가 선생인가 어이호, 어어이호 어화넘차 어이허호 황천길 멀다 해도 대문 밖이 저승이요 함부로 나서지 마라 저승사자 잡아간다 어이호, 어어이호 어화넘차 어이허호 친구 벗이 많다 해도 어느 누가 대신할까 길동무 그리도 없나 황톳재를 어이 넘나 어이호, 어어이호 어화넘차 어이허호 산천초목은 젊어가고 이 내 청춘은 늙어간다 젊다고 유세를 마라, 자고 나니 황혼이다 < 해설 > 슬슬 오광대놀이 끝이 보이니 시원섭섭하다. 전래해 오는 노래들은 혼자 지은 것이 아니고 세월 거듭하면서 민중들 입에서 입으로 불리어 왔으니 민족의 정한이 잘 녹아 있다. 노랫말 또한 누가 불러도 어색하지 않게 정제되어 있다. 현대가 좋다고 해도 소리 단가인 ‘사철가’나 황진이 시조 넘어서는 시도 별반 없더라. 이런 상여 노래도 마을마다
[우리문화신문=이달균 시인] 이쁜 것, 뻐드렁니도 요모조모 잘 앉았고 짝궁둥이 삐쭉빼쭉 삼삼하고 별미로다 술상에 권주가 한 절 없어서야 되것는가 사랑이야 내 사랑이야 이 술 한잔 잡으시오 풀국새 푸룩푸룩 산노루 어헝어헝 달 밝아서 한잔이요, 물봉선 사위질빵 바람에 꽃 진다고 애절하여 한잔이요. 장진주사 권주가도 소절소절 불러내어 헌헌장부 정철(鄭澈) 한잔, 그대 한잔, 나도 한잔. 이 한잔을 잡수시면 만수무강 천년복록, 또 한잔을 드시오면 만사형통 부귀영화, 이 술 한잔 사양이면 식욕부진에 소화불량, 또 한잔 사양이면 문전걸식에 노상객사. 이 술은 술이 아니라 술술술 넘어가는 선약이고 보약이니, 사랑에 취해 한잔이요, 사랑에 속아 또 한잔이라. 한 많고 사연 많아 주거니 받거니와 어려서 조실부모한 이년 한도 풀어 주오 <해설> 어느 주막인가 보다. 나으리 술상에 앉고 보니 여자 생각 간절하다. 하여, 술에 취해 게슴츠레바라 보니 시골 주막 아낙도 그런대로 눈에 들어온다. 어쩔까? 오늘은 이 여인네를 품어볼까. 권주가에 술잔도 주거니 받아보니 하룻밤 풋사랑도 정이 든다. 한여름 둔덕 오르다 보면 나무 성가시게 감고 오르며 꽃을 피운다. 어쩌면 혼자
[우리문화신문=이달균 시인] 탈놀이 고하나니 깜부기도 목 타는 어느 해 어느 봄날, 정화수 한 그릇과 삶은 고기 제수(祭羞)하여 엎드려 한 장 축원문으로 선사님께 고하나니 소가야 장마당을 울리는 광대놀이 어허이, 비옵나니 올 농사 풍년에다 출항이면 만선이요, 아이 없는 아낙에겐 아이 점지 하옵시고, 병치레 달고 사는 이 고장 사람들 눈병, 속병, 울화병, 지랄병도 모두 모두 거두시고, 우리들 덜 여문 춤이어도 암팡진 여인네랑 걸판진 남정네들, 보트라진 바지게작대기와 거류요 벽방산도 더덩실 춤을 추게 신명은 물론이요, 불꽃에 달려드는 불나방이 남김없이 탈 때까지 얼쑤! 추임새로 얽힌 춤 풀어 주게 잔 들어 흠향하시어. 탈놀이 무탈 무고하도록 널리 도와주옵소서 <해설> 드디어 고성장마당 오광대놀이가 시작된다. 놀이에 앞서 무탈 무고하도록 제를 지낸다. 돼지 머리에 온갖 과실이며 쟁여둔 술도 내놓고 정성껏 절을 올린다. 물론 이 제사 역시 “유세차 모년 모월 모일,,..감소고우...세서천역 휘일부림(維歲次 某年 某月 某日...敢昭告于...歲序遷易 諱日復臨)”식의 기존 제문 예법을 따르는데 시에선 좀 다르게 썼다. 축문인지 주문인지 “올 농사 풍년에다 출
[우리문화신문=이달균 시인] 이달균 시조집 《말뚝이 가라사대》는 지난 2009년 펴낸 뒤 그 걸쭉한 언어의 유희에 많은 이가 환호를 했다. 그는 시조집 서문에서 “어허, 할 말 많은 세상, 대신 이놈 말뚝이 잘난 놈 욕도 좀 하고 못난 놈 편에서 슬쩍 훈수도 두려 했다.”라고 읊조렸다. 지금 우리네 세상은 그야말로 할 말 많을 때임이 분명하다. 따라서 <우리문화신문>은 이달균 시인을 다시 불러내 그의 걸쭉한 언어유희와 함께 세상을 훈수하는 연재를 오늘부터 시작하여 주 1회 매주 금요일 이어싣기(연재)를 한다. (편집자 말) 이달균 시조집 《말뚝이 가라사대》 자작시 해설을 시작하면서 이달균 시조집 《말뚝이 가라사대》는 고성오광대를 원용하여 쓴 서사극 형태의 시조 54수를 묶은 책이다. 고성오광대는 춤으로 연결되었기에 춤과 춤의 서사적 개연성을 강조하지는 않는다. ‘오광대’의 다섯은 정설이 없다. 오행설, 혹은 다섯 마당, 오방색 옷을 입은 양반들 등 여러 주장이 있으나 딱히 ”이것이다!“라고 말할 수도 없다. 그러므로 필자 역시 시집을 엮으면서 고성오광대 연희에 얽매이지 않고 극적 요소를 가미하여 창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