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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고후쿠지 오중탑을 250엔에 팝니다

[맛있는 일본이야기 365]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나라에는 오래된 절들이 많다. 도다이지(東大寺), 다이안지(大安寺) , 호류지(法隆寺), 고후쿠지(興福寺)등 일일이 열거 할 수 없을 만큼 고찰들이 있다. 이러한 고찰이 메이지(明治)정부의 훼불로 수난을 받은 이야기는 익히 들어온 바와 같다. 그것은 마치 조선시대의 훼불을 보는 듯 한데 안타까운 것은 절의 문화재가 한순간에 날아갈 뻔 한 일들이 곳곳에서 일어났던 것이다.

때는 1871년(메이지4년) 11월의 일이다. 원래는 절과 신사가 한 경내에 나란히 있었지만 불교를 폐한다는 정책이 발표되고 곧 시행에 들어가자 천년고찰 고후쿠지(興福寺) 승려들은 승직을 박탈당하고 신사(神社)로 들어가게 된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고후쿠지(興福寺) 경내에 있던 오중탑의 운명이다.




승려들이 사라진 절 경내는 이내 황폐해지기 시작했는데 이곳에 있는 오중탑과 삼중탑 역시 임자를 찾아 판매에 부쳐졌다. 오중탑은 당시 돈으로 250엔, 삼중탑은 30엔에 미사브로(彌三郞)라는 사람이 사게 되었는데 미사브로는 이 탑을 불태워 없애고 그 대신 탑에 사용된 금붙이를 거둘 요량이었다. 그러나 주민의 반대로 무산되어 다행히도 아름다운 오중탑을 오늘날 보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이 나라 고찰의 운명은 바람 앞에 등불이었다. 정부에서 사찰을 폐하라는 압박이 가해오자 절의 재정이 극도로 악화되고 급기야는 절에 간직해온 비장의 불상, 불구(佛具), 경전 등 값진 물건들이 시장에 나와 헐값에 팔려나갔다. 물론 어디로 팔려 간 것인지 알 길이 없는 상황이다.

교토 역시 폐불 정책이 심했던 곳으로 절 뿐만이 아니라 민간 신앙으로 전해오던 돌로 만든 지장보살상을 한군데 모아 모두 석재로 썼다. 농촌에서는 지장보살 석상을 변소의 발판으로 썼는데 아동들은 부처를 밟으면 탈이 난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화장실 기피증을 보여 급기야 선생이 돌부처를 밟아보는 해프닝도 있었다고 전한다. 지금이야 나라(奈良)의 고찰 고후쿠지(興福寺)는 관광코스로 사랑받는 절로 이곳의 오중탑 역시 사랑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