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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쿠타가와 류노스케와 《라쇼몽(羅生門)》

[ 맛 있는 일본이야기 368]>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라쇼몽(羅生門)은 헤이안시대 헤이죠쿄(平城京)에 있던 큰 문이다. 궁성을 드나들 때 거쳐야하는 큰 문으로 나성문(羅城門)이란 한자를 썼던 것인데 훗날 나생문(羅生門)으로 바뀌었고 이 문이 유명하게 된 것은 아무래도 소설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芥川龍之介, 1892~1927)의 단편소설 《라쇼몽(羅生門)》 덕일 것이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는 《라쇼몽》말고도 《코》 등 많은 단편소설을 남겼는데 이들 소재는 12세기 작품인 《곤자쿠모노가타리(今昔物語集)》에서 얻고 있다. 헤이안시대에 만들어진 이 책 속에는 당시에 나돌던 1200여 가지의 설화가 들어있는데 《라쇼몽》은 이 설화집 세속부 권 29화의 이야기를 소재로 쓴 것이다.

헤이안시대(平安時代, 794~1185)는 왕조의 부귀영화가 절정에 달하던 시대로 말기에 이르면 잦은 화재와 흉년, 굶주림 따위로 백성들의 곤궁한 삶이 드러나는데 설화집의 나성문(羅城門) 이야기에서 그것을 엿볼 수 있다. 때는 헤이안 말기, 한 사내가 나성문을 어슬렁거리다 2층 누각으로 올라간다. 2층에 올라가보니 한 노파가 죽은 여자의 시체에서 머리카락을 뜯어내고 있는 것이었다. 노파는 이 머리카락으로 가발을 만들어 팔아 먹거리를 마련해야 할 만큼 곤궁한 지경이었고, 사내 역시 강도짓이라도 해서 입에 풀칠을 해야 할 상황이다.

곤경에 처했을 때 인간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하게 되는 일이 있다. 어쩌면 노파의 행위도 그런 일 가운데 하나일지 모른다. 사내 역시 살아가기 위해서는 노파가 입고 있는 때에 찌든 옷이라도 벗겨야 할 판이다. 이처럼 당시 백성들의 비참한 삶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는 장면을 보면서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는 《라쇼몽》을 창작했다. 1915년의 일이다.




《라쇼몽》은 헤이안시대로부터 무려 약 800년이 지난 시점에 쓴 이야기지만 지금도 여전히 당시와 같은 <시대 상황>은 존재한다. 그래서일까? 그의 작품은 지금도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이해하고 공감이 가기에 생명력이 질긴지도 모른다. 소설 《라쇼몽》은 구로사와 아키라(黑澤明)에 의해 같은 이름의 영화 <라쇼몽>으로 만들어졌으나 내용은 원작 《라쇼몽》과 〈덤불 속〉이라는 소설 두 개를 합한 것으로 원작 《라쇼몽》과는 약간 다르다.

어쨌거나 고전에서 소재를 얻어 다양한 인간 군상에 관한 실상을 소설화한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는 36살의 나이로 음독자살, 삶을 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