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한영 기자] 한국국학진흥원(원장 조현재)은 지난 1일, “가정교육”이라는 주제로 스토리테마파크 웹진 담(談) 5월호를 발행하였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가정교육’이라는 주제로 선조들의 일기장 속 가정교육을 성찰하고, 이 시대에 필요한 질문들을 담고자 하였다.
가정교육은 가정에서 부모가 자녀들이 훌륭한 사람으로 성장하도록 자녀들의 인격형성과 지식 습득 등을 도와주거나 가르치는 인간형성작용을 일컫는다. 전통적인 한국 가정에서는 유교적인 규범을 중심으로 가정교육이 실시되었으나 최근의 핵가족에서는 독립심과 자주성 등 근대적인 덕목과 우수한 학업성적이 강조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2018년 11월부터 2019년 2월까지 방영되었던, JTBC의 ‘SKY캐슬’은 대한민국 상위 0.1%가 모여 사는 SKY 캐슬 안에서 제 자식을 천하제일 왕자와 공주로 키우고 싶은 사모님들의 처절한 욕망을 샅샅이 들여다보는 드라마로, 흥행에 성공했을 뿐만 아니라 한국사회에 깊은 물음을 던졌다.
그렇다면 우리 선현들의 가정교육은 어떻게 이루어졌으며, 지금의 한국사회에도 면면히 살아있는 본질적 가치는 무엇일까? 17세기 초반 경상북도 안동에 살았던 김령이 남긴 일기 《계암일록(溪巖日錄)》에는 청백리 목민관으로 이름을 남긴 박선장의 어머니가 남긴 훈계 이야기가 남겨져 있다.
박선장(1555 ~ 1617)은 4살에 아버지를 여의었으나, 어려서부터 모친의 각별한 보살핌으로 학문적 성취를 이루었다. 당대 유림들과 교류하며 후학을 양성하다가 어머니의 권유로 50살이 넘어서 대과에 급제하고 1608년 54살의 나이로 예안 현감을 제수받았다.
김령의 일기에 따르면 1608년 예안 현감을 지내던 당시 박선장의 어머니는 91살이었으나 여전히 시력과 청력이 쇠퇴하지 않았고 치아와 모발도 건강하였으며, 매번 수령인 아들에게 ”아주 삼가해서 민간에 폐해를 끼치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네가 잘못 다스리면 읍민들이 반드시 ‘저 늙은 할망구가 죽어야만 우리 수령이 떠날 텐데.’라고 할 것이니, 두렵지 않겠느냐.”라고 훈계하였다고 한다. 김령은 이에 대해 ‘친절하고 간절한 뜻이 사람을 경복(敬服, 존경하여 복종하거나 감복함)하게 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남편을 먼저 여의고 아들을 훌륭한 학자이자 선생으로, 나아가 목민관으로 키워내야 했던 어머니는 91살의 나이에 이르러서도 54살의 아들이 바른 길을 걷도록 가르치는 “자녀교육”의 책임을 내려놓지 않았다. 또한, 빠른 출세와 부귀공명을 좇는 것보다, 사람으로서 올바르게 살아가야 하는 도리를 최우선으로 삼았으니, 이 어머니의 가르침은 지금 이 시대의 가정교육에 알려주는 바가 매우 크다고 할 것이다.
부모의 가르침은 평생토록 간직하는 삶의 지혜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은 평생을 살아가는 힘
모든 선인들이 그러한 삶을 살았던 것은 아니지만, 유교 이념이 제시하는 가족 간의 관계는 참으로 이상적인 것이었다. 부모는 자녀를 사랑해야 하고, 자녀는 부모에게 효도해야 한다. 이러한 기본적인 관계가 확장되어 모든 사회적 관계로 뻗어나가는 것이다. 또한, 평생을 살아가는 정서적인 토대와 삶의 지혜를 가정교육을 통하여 마련하게 되는 것이다.
《유금강산기(遊金剛山記)》의 지은이 어유봉(魚有鳳)은 1731년 60살의 나이에 금강산 유람을 하게 되어 기쁜 마음으로 떠났는데, 정작 험한 산길을 수레도 없이 걸어가게 되어 천 길 낭떠러지가 눈에 들어오자 겁이 더럭 났다. 두렵고 떨리는 마음에 밑을 제대로 쳐다 볼 수 없었다.
그때 어유봉은 어린 시절 험한 곳에 가지 말라고 심하게 야단치시던 부모님의 훈계를 떠올렸는데, 이 순간 어유봉은 나이 60살이 되어서도 부모님 훈계를 떠올리는 자신에 대해 두려우면서도 우습다고 생각하였다. 위험한 곳에 가지 말라고 야단치는 부모님의 과잉보호는 자녀를 금지옥엽으로 귀하게 여기는 마음으로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는 모습이다.
자녀의 공부를 위해서라면 못할 것이 없는 부모의 지극정성도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았다. 《조성당일기(操省堂日記)》의 지은이 김택룡(金澤龍)은 1617년 6월 21일 과거시험을 보러 가는 아들 김각을 위해 지극 정성을 쏟았다. 미리 시험 보는 장소에 가보게 하였고 머물 곳을 마련하기 위해 지인들에게 연락을 하였다. 시험을 보러 갈 때 타고 갈 말도 지인의 집에서 구하였다. 시험에 쓸 붓을 빌려달라는 편지를 지인에게 썼고, 제사를 드리기 위해 목욕재계를 하였으며 과거답안을 쓰는 시험지를 마련하였다. 아버지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에 최선을 다하였으나, 아들은 결국 과거시험에 실패하였다.
대가족 사회, 조부들로부터 직접 영향을 받았던 유학자들
학문적인 영향뿐만 아니라 삶의 도리와 사랑의 마음도
대가족 사회를 이루고 살았던 조선시대에는 부모와 자녀의 관계뿐만 아니라, 조부모와의 관계도 큰 영향을 끼쳤다. 《하와일록》은 류의목(柳懿睦, 1785~1833)이 12살부터 18살까지 기록한 생활일기인데, 1799년 10월에 아버지 상을 당한 이후 할아버지 세대와의 돈독한 관계가 잘 기록되어 있다.
류의목은 할아버지께 문안을 드리면서 공부하다 의심나는 대목을 물어보았고, 이에 대해 할아버지는 진지하게 답변을 해주고 있다. 류의목은 공부를 게을리 하다가 할아버지께 지팡이로 맞기도 하였으며, 논어의 말씀을 일상생활에 적용하여 분노에 대처하는 법을 배우기도 하였다. 류의목은 앎과 행동이 일치하는 할아버지를 마음 속 깊이 존경하며, 얼마나 더 공부하고 몸을 닦아야 그 경지에 나아갈 수 있을지 학문에 대한 의지를 불태웠다.
또한, 류의목은 할아버지의 친구들로부터도 많은 영향을 받았는데, 경산 할아버지로부터는 ‘문장’에 대해 가르침을 받았고, 백곡 할아버지로부터는 ‘꾸준함’의 중요성을 배웠다. 또한 이들은 아버지를 잃은 류의목에게 감정적인 위로도 건네었다. 금곡 할아버지는 상을 치르고 있는 류의목에게 “잠깐 울타리 너머로 쳐다보자니 그리운 마음이 갑자기 간절하여” 만나기를 바란다는 편지를 보냈는데, 류의목은 상중에 있는 손자에게 바람이나 쐬어주려는 할아버지의 마음을 감사히 여겼다.
조선시대 가정교육에서 찾아볼 수 있는 다양한 일화들
가족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새로운 콘텐츠 창작의 계기가 되기를
가족의 모습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외견상으로는 많이 변한 듯하지만 여전히 변하지 않는 본질적인 가치가 존재하고 있는 것을 조선시대 가정교육에 대한 일화를 통해 찾아볼 수 있게 된다.
이와 같은 창작소재들은 선인들의 “일기류”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한국국학진흥원에서 2011년부터 운영하고 있는 스토리테마파크(http://story.ugyo.net)에는 조선시대 일기류 244권을 기반으로 4,872건의 창작소재가 구축되어 있으며, 검색 서비스를 지원하고 있다. 매월 한 가지의 주제를 선정하여 《웹진 담(談)》을 발행하고 있는데, 전통적인 일기류를 소재로 하지만 주제의 선정은 지금의 일상과 늘 맞닿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