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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검(劍)과 도(刀) – 신분을 말하다

[국립중앙박물관 큐레이터 추천 유물 85]

[우리문화신문=한성훈 기자] 

칼은 한쪽만 날이 있는 도(刀)와 양날인 검(劍)이 있습니다. 그런데 고대의 무덤에서 출토된 도검(刀劍) 곧 칼은 당시 사람들의 신분 질서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열쇠입니다. 검(劍)은 주인공의 신분을 직접적으로 나타내며, 보통은 허리 부근에 둡니다. 신분이 가장 높은 자는 검 3점 이상을 포함하여 많은 칼을 껴묻고, 그렇지 않은 경우는 한 점을 껴묻거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도검을 장식하는 것도 신분에 따라 달랐습니다.

 

무덤의 껴묻거리(부장품)는 대부분 시간이 흐르면서 변하거나 사라집니다. 그러나 신분 상징물인 도검은 청동장식손잡이 검→고리자루 큰칼→장식 고리자루 큰칼의 순서로 모양과 장식만 변해왔을 뿐, 죽은 사람의 허리 부근에 두는 정치적 행위는 오랫동안 이어졌습니다.

 

무덤 주인공이 소유한 기물 가운데 신분을 직접적으로 나타낸 것을 착장형이라고 합니다. 착장형은 말 그대로 주인공이 복식의 형태로 착장한(떨어지지 않게 붙임) 것을 말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도검은 신분을 나타내는 복식의 구성 요소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청동장식손잡이 검[靑銅劍把附 劍]

 

청동검은 우리나라 청동기문화를 대표하는 무덤 껴묻거리입니다. 이 검은 손잡이를 나무로 만든 경우가 많아 대개는 검의 몸체만 발견되지만, 청동으로 만들거나 장식한 것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검의 손잡이(검파)를 청동으로 만들거나 장식한 것을 청동장식손잡이 검이라고 합니다.

 

청동장식손잡이 검은 손잡이 전체를 청동으로 만들기도 하고(일체형), 청동과 나무를 결합하기도 합니다(결합형). 또 청동과 나무를 결합한 것은 청동 장식의 수준에 따라 차이가 있습니다. 어쨌든 청동장식손잡이 검을 소유한 자는 나무손잡이 검을 소유한 자에 견줘 신분이 높았습니다.

 

그러면, 먼저 경주 사라리 130호(서기 2세기 전후)에서 나온 도검의 예를 볼까요. 도검은 모두 주인공의 왼쪽 머리에서 허리로 이어지는 곳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도검의 종류는 검(劍) 3점, 소도(小刀) 2점(42.9cm, 47cm), 도자(刀子, 짧은 칼) 3점입니다. 머리와 어깨 쪽에 각각 검 1점이 있고, 나머지는 모두 허리 부근에 가지런히 포개져 있었습니다. 이 가운데 머리 쪽에 있는 검은 마치 왕권을 상징하듯이 나무널 모서리에 꽂혀 있었습니다. 이 검은 손잡이를 모두 청동으로 만든 일체형입니다.

 

사라리 130호 주인공은 청동 손잡이가 일체형인 검 1점과 결합형인 검 2점을 소유하였습니다. 허리 부근에 착장한 듯한 위치에 둔 검은 손잡이를 결합형으로 만들었지만, 일체형과 큰 차이가 없습니다. 이 검의 손잡이는 흑칠(黑漆)한 나무 몸체에 청동 장식을 촘촘하게 덧씌워서 만들었습니다.

 

 

경주 사라리 유적에서 발굴한 130호는 서기 2세기 무렵의 나무널(木棺) 무덤입니다. 주인공은 목에 유리와 수정으로 만든 목걸이를 걸고, 허리에는 호랑이 모양 띠고리를 차고 있었습니다. 양팔 부근에는 12개의 팔찌와 17개의 반지가 있었습니다. 왼쪽 머리에서 허리 쪽에는 모두 8자루의 도검류를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나무널 바닥에는 61점의 얇은 쇠도끼를 깔았습니다. 나무 널 바깥에는 청동거울, 쇠솥, 칠기류 등 많은 기물(器物)을 두었습니다. 주인공이 소유한 기물은 지금까지 발굴한 나무널 무덤 중에서 단연 으뜸입니다.

 

그는 누구이며, 죽어서도 소유한 기물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 주고 있는 걸까요. 사라리 130호 주인공이 소유한 도검은 수량과 제작 수준이 당대 으뜸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나무널 바닥에 얇은 쇠도끼를 촘촘하게 깐 것은 아직까지 유일한 사례입니다. 청동거울과 쇠솥은 누구나 소유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분명히 서기 2세기 무렵 사로국을 통치했던 최고 지배자 곧 이사금(尼師今, 신라 때의 임금) 혹은 우두머리 장수였을 것입니다.

 

 

 

고리자루 큰칼[環頭大刀]

 

3세기 이후에는 어떤 칼이 신분을 나타내는 데 쓰였을까요? 여기에 대해서는 경주 구어리 1호 무덤에서 발굴한 고리자루 큰칼을 통해 알아보겠습니다.

 

주인공은 모두 두 자루의 고리자루 큰칼을 소유했습니다. 왼쪽 어깨와 허리 사이에 둔 고리자루큰칼은 길이가 84.5cm이고, 허리 아래쪽에 있는 나머지 1개는 63.5cm입니다. 이 칼은 날이 한쪽에만 있는 도(刀)이며, 전체 길이가 길다는 점 등에서 앞에서 살펴본 청동손잡이장식 검(劍)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칼자루 끝이 고리 모양으로 되어있어 고리자루큰칼이라고 합니다.

 

고리자루큰칼의 길이는 40∼90cm 안팎으로 다양하지만, 신분이 높은 사람은 대개 70cm 이상으로 긴 칼을 소유했습니다. 그리고 신분이 높을수록 많은 수량을 가진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사로국 최고 지배자는 더욱 많은 도검류를 소유하고 손잡이의 장식방법도 달랐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무덤이 아직 발견되지 않아 알 수 없습니다.

 

 

 

구어리 1호 무덤의 주인공은 당시 사로국의 지방(지금의 구어리 일대)을 관할한 우두머리였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는 4세기 초에 만들어진 나무덧널(목곽) 무덤에 묻혔습니다. 나무덧널 바닥에는 104점의 철기류(쇠창 44점, 쇠도끼 40점, 철정 20점)를 깔았습니다. 주인공 발치 쪽에 둔 딸린덧널(부곽) 안에는 많은 양의 토기류와 함께 쇳조각으로 만든 갑옷의 일부가 발견되었습니다.

 

2세기 후반 사로국에서는 새로운 유형인 나무덧널 무덤(목곽묘)이 유행합니다. 이때부터는 무덤 구조뿐만 아니라 껴묻거리(부장품)가 새롭게 바뀌었습니다. 청동장식손잡이 검은 점차 사라지고 고리자루큰칼이 신분의 상징물로 새롭게 등장합니다. 상대적으로 신분이 낮은 자가 소유한 나무손잡이 검은 고리자루큰칼처럼 길이가 길어진 형태로 명맥을 이어가다가 4세기 이후에는 대부분 사라집니다.

 

장식 고리자루큰칼[裝飾大刀]

 

장식 고리자루큰칼은 칼자루를 금과 은으로 장식하고 끝에 있는 고리 안쪽에 문양을 넣은 것입니다. 이전의 고리자루큰칼에 금은 장식과 신분을 나타내는 무늬를 더한 것이 가장 중요한 특징이라 할 수 있습니다.

 

5세기 이후 신라에서 장식대도는 신분을 좀 더 명확하게 구분하는 중요한 상징물이었습니다. 마립간(麻立干)과 그 일족은 세 고리[三累文] 장식대도, 중앙 귀족이나 지방 수장은 세 잎[三葉文] 장식대도를 소유했습니다. 이전의 고리자루큰칼은 신분이 더 낮은 사람의 소유물로 전락했습니다.

 

이때 신라는 장식대도ㆍ관(冠)ㆍ허리띠 등을 황금으로 장식하여 신분을 나타내는 복식 체계를 갖추었습니다. 금관을 포함하여 귀걸이, 장식대도, 목걸이, 허리띠, 팔찌, 반지 등 금은장식을 모두 착용한 사람은 으뜸 신분에 해당합니다. 하위 신분으로 갈수록 금동장식을 쓰거나 착장품의 종류와 수량이 줄었습니다.

 

신라 마립간은 사로국 단계의 우두머리 장수에 견줘 더욱 차별적인 권력을 가졌습니다. 그는 국정 운영의 중심이 되어 점차 고대국가의 기틀을 다져나갔습니다. 죽은 뒤에는 직경이 80미터에 이르는 대형 봉분을 갖춘 돌무지나무덧널 무덤[積石木槨墓]에 묻혔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 (윤온식)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