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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의 조선 침략을 비판한 '카지 와타루'

[맛있는 일본 이야기 614]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카지 와타루(鹿地亘, 1903~1982)란 일본인이 있다. 동경제국대학 국문과 출신의 카지 와타루를 일본 위키사전에서는 소설가로 소개하고 있는데 뜻밖에 그가 쓴 소설 《태평의 눈》(1931)은 조선의 독립운동을 주제로 한 단편소설이라는 데 시선을 끈다. 카지 와타루는 일본인이면서 이 책에서 일제에 저항한 조선 민중의 치열한 독립운동을 다루고 있다. 그는 왜 일제에 저항하는 조선 민중에 관한 소설을 쓴 것일까?

 

이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는 강연이 지난 7월 24일, 일본 도쿄에 있는 고려박물관에서 있었다. 강사는 한국독립기념관 연구위원 윤소영 박사로 이날 강연 주제는 “한국의 독립운동을 지원한 일본인들 – 서로 비난하는 근대 한일의 역사의 틈바구니에서 발견한 희망(韓国の独立運動を支援した日本人たち-罵り合う近代日韓の歴史のはざまで見つけた希望)”이었다.

 

 

카지 와타루는 청년기에 공산주의 사상을 받아들여 프롤레타리아 문학에 뜻을 두고 고바야시 다키지, 나카노 시게하루 등과 함께 활동했다. 그 과정에서 조선의 프롤레타리아 문인들과도 어울리며 유랑하는 환경 속에서 젊은 시절을 보냈다. 그 뒤 중국으로 건너가 반전항일운동을 이어 나갔으며 조선의용대의 김원봉과도 교류를 갖게 된다. 김원봉은 일본을 잘 아는 카지 와타루 자문에 귀를 기울였고, 카지 와타루는 김원봉을 존경하였다. 이 둘의 만남은 조선의용대 활동과 재중국일본인민 반전동맹 활동에 큰 영향을 끼쳤다.

 

카지 와타루에 관한 기사는 중국 신문에도 여러 군데서 보이는데 그 가운데 유주일보(柳州日報. 1939.5.19.)에는, “낙군사(樂群社)양식당에서 열린 기자초청 간담회 참석자들은 대부분 다른 나라 친구들이었다. 레이몽 기자 부부와 보딘 선생 외에 일본의 반침략 작가 카지 와타루, 몇몇 중국 인사, 대만 청년, 조선 청년들이 자리를 메워 이날 모임은 국제적 의미가 농후한 자리였다. 사실상으로도 이날 모임은 정의와 평화를 사랑하는 각국 인사들의 친목모임과 같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었다.”라는 기사가 있다.

 

한편, “지금 중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일본인민 반전동맹(카지 와타루)은, 일본 군벌이 일으킨 침략전쟁으로 인하여 동방의 피침략민족이 처참한 죽임을 당하는 것을 보고, 침략전쟁에 반대하는 의미에서 성립되었다. 우리 전체 동지들은 독립자유를 위해 영용한 투쟁을 전개하고 있는 중화민족의 친밀한 친구가 되었다”라고 하였다는 기사도 보인다. - 대한민국임시정부 자료집 40권 ‘중국에 거주하는 일본인 반전동맹동지를 환영하는 특별호 -

 

그런가 하면, 대한민국임시정부자료집 25권, 한국독립운동에 대한 회고편에서 샤오위린(邵毓麟, 1949~1951)은 조선의용대와 카지 와타루를 다음과 같이 회고하고 있다.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한인 조직은 더는 암살이라는 방법을 쓸 필요가 없게 되었다. 한인 독립지사들은 오랫동안 희구하던 바대로 전장에서 정정당당하게 왜적과 맞서 싸울 기회가 찾아왔음을 기뻐하였다. 전쟁 전부터 수년 동안 중한(中韓) 두 나라의 합작 속에 육성된 적지 않은 한국청년 군사 간부들이 전장에 투입되어 혁혁한 공을 세웠다. 이야말로 ‘다년간 심혈을 기울여 병력을 양성한 목적이 하루의 전쟁을 위해서’라는 고사를 일깨워주는 사례가 아닐 수 없었다.

 

항일전쟁의 발발로 주변 여건이 성숙하여 가자, 한인의 건군 활동도 덩달아 속도를 내게 되었음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이기도 하였다. 항전 개시 다음 해인 1938년 쌍십절(雙十節, 중화민국의 건국 기념일), 조선민족혁명당의 김원봉은 한구(漢口)에서 기념식을 열고 ‘조선의용대’ 성립을 공개적으로 선포하였다.

 

성립 시간만 놓고 본다면 조선의용대의 성립은 한국광복군보다도 한참 오래된 것이다. 전체 대원이 약 3백 명 정도였던 조선의용대는 3개의 구대로 나뉘어 박효삼, 이익봉, 김세일이 구대장을 맡았다. 조선의용대원의 절대다수는 조선민족혁명당원이었다. 이들은 스스로 국제지원군으로 자처하며 당시 중국에서 활동하고 있던 일본인 반전 좌익인사인 카지 와타루, 아오야먀 가즈오 등과 공동항일을 주장하였다.”

 

윤소영 박사는 카지 와타루와 김원봉의 교유에서 주목되는 점은 각각의 민족적 독자성을 존중하고 연대하여 일본제국주의 침략전쟁의 부당성에 맞서 싸우려 했다는 점이라고 했다. 더 나아가 윤소영 박사는 카지 와타루가 "일본의 침략전쟁으로 일본은 장차 아시아의 벗을 잃을 것을 예측하고, 일본의 침략전쟁에 반대하는 것이야말로 일본인의 입장"이라고 드러낸 점을 높이 샀다.

 

요즈음 식민지근대화론에 함몰된 이른바 일본의 지식인들이야말로 카지 와타루가 주장하고 있는 ‘반전 평화운동의 철학’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보았으면 좋겠다. 말로만 전쟁 없는 평화 운운하지 마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