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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이에게 희망을 심어주고 떠난 99살의 비구니스님

맛있는 일본이야기<627> 세토우치 자쿠초(瀬戸内寂聴)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인생에서 88살이 가장 좋은 때다.” 라면서 99수를 누리다가 지난 11일 입적한 일본의 비구니 스님 세토우치 자쿠초(瀬戸内寂聴)! 서점 어딜 가나 세토우치 자쿠초 스님의 책들은 진열대 가장 앞줄에 놓이곤 했다. 심지어는 나리타공항이나 간사이공항 내의 기념품 겸 서점 코너에서도 쉽게 만날 수 있어 나 역시 가끔 세토우치 스님의 책을 사서 읽었다.

 

그의 책은 읽기 쉽고, 읽는 순간 고개가 끄떡여진다. 자신도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지고 입가에 미소가 떠오른다. 그의 웃는 모습은 해맑다. 해맑다고 밖에는 달리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편안하다. 화나는 일이 있어도 금새 기분이 좋아질 만큼 밝은 기운을 선사한다.

 

 

“현대 여성의 삶을 그린 소설로 인기를 끌어 반전·평화를 호소하는 사회 활동에도 정력적이었던 작가이자 승려, 문화 훈장 수상자인 세토우치 자쿠초(瀬戸内寂聴)씨가 9일, 심부전으로 사망했다. 99살이었다. 토쿠시마시 태생, 이름은 하루미로 불렸다. 도쿄 여자대학 재학 중에 결혼해, 졸업 후에는 남편의 근무처였던 북경으로 건너갔으며, 패전으로 1946년에 귀국, 이후 남편의 옛 제자와 사랑에 빠져 어린 외동딸을 남겨두고 교토로 옮겨 살았다. 그 뒤 이혼하고, 소녀관련 소설과 동화를 쓰면서, 니와 후미오(丹羽文雄)가 주관하는 동인지 <문학자>에 참가했다. ”

 

이는 11월 11일, 아사히신문이 보도한 세토우치 자쿠초 비구니 스님에 대한 기사다. 승려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인 세토우치 스님의 인생을 단 몇 줄로 표현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그의 인생은 파란만장한 드라마 그 자체였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자쿠초 스님은 혼인하여 딸 하나를 두었지만 남편과 이혼한 뒤 오랫동안 자신의 이야기 등을 소재로 소설을 집필하며 살았다. 원래는 수녀가 되고 싶었으나 혼인했던 탓으로 수녀의 길이 막히자 이번에는 승려의 길을 걷고자 했다. 그러나 그 어떤 절에서도 승려의 길을 허락해주지 않았다. 그러다가 1973년, 51살 때 중존사(中尊寺)에서 받아들여줘 천태종 승려가 되었다.

 

1974년부터 교토의 사가노(嵯峨野) 지방에 자기 이름을 딴 자쿠초암(寂聴庵)을 짓고 교화와 인생상담, 집필, 방송 출연 등 바쁜 일정으로 삶의 후반부를 펼쳐나갔다. 인생의 절반을 승려의 길을 걸은 셈이다. 전쟁, 이혼, 허용되지 않는 사랑, 베스트셀러작가, 그리고 돌연 출가의 길을 걸은 세토우치 스님은 말한다.

 

“나는 많은 상처를 입고, 많은 고통을 당한 사람을 좋아한다. 좌절감이 깊은 사람은 그 만큼 사랑이 깊은 사람이다.” 라고.  인생의 깊은 맛과 멋을 체험한 세토우치 스님은 수많은 명언을 남겨, 그를 따르고 좋아하는 사람들의 삶을 어루만져주고 있다. 그가 떠났어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