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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우호의 다리, 아사카와 다쿠미 형제

<맛있는 일본이야기 653>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일본인 형제, 아사카와 다쿠미(1891∼1931)와 아사카와 노리타카 노리타카(1884∼1964)는 누구보다도 한국을 사랑한 사람들이다. 고향인 일본 야마나시에서 떠나와 한국에서 산 형제는 누구보다도 조선문화에 매료되었고 조선인의 진정한 친구였다.

 

특히 동생 아사카와 다쿠미가 마흔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을 때 조선인들은 서로 그의 상여 메기를 자청했을 정도다. 아사카와 다쿠미는 지금 망우리공원 묘지에 잠들어 있으며 해마다 한국인들은 그의 ‘조선 사랑’을 기억하기 위해 그가 죽은 기일에 무덤에서 모여 추모제를 연다.

 

 

 

6월 18일 도쿄 연합뉴스 김호준 특파원 기사에 따르면 “주일한국문화원(원장 공형식)이 한일 우호의 상징적 인물로 평가받는 아사카와 형제 답사 행사를 형제의 고향인 일본 야마나시현에서 18일 열었는데 이를 위해 30명의 정원을 모집한바 있다. 그런데 이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412명(일본인 387명·재일 한국인 25명)이 신청해 추첨으로 참가자를 선정했다.”고 문화원 측의 발표를 토대로 보도했다. 아사카와 다쿠미 형제에 대한 한·일 간의 엄청난 관심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선정된 30명은 야마나시현 호쿠토시에 있는 아사카와 형제 자료관과 생가터, 아사카와 가문 묘소 등을 방문했다.

 

1913년 경성 남산심상소학교에 미술교사로 부임한 형 아사카와 노리타카는 조선 도자기에 심취해 1946년 일본으로 돌아갈 때까지 700여 곳을 답사하며 조선 도자기의 역사를 정리했다. 그리고 노리타카는 소장했던 도자기와 공예품 3천 500여점을 훗날 국립중앙박물관에 흡수된 국립민족박물관에 모두 기증하고 일본으로 돌아갔다.

 

 

한편 동생 아사카와 다쿠미는 형의 권유로 조선으로 건너와 조선총독부 임업기사로 일하며 황무지였던 한반도의 녹화 사업에 헌신하면서 조선의 역사와 문화에 깊이 매료되었다. 그는 조선을 알기 위해 한글을 배우고 조선옷을 입었으며 적은 월급을 아껴 조선인들을 위해 쓰는 등 진정한 조선 사랑을 실천한 일본인이다.

 

일제강점기에 조선에 건너온 많은 일본인들이 게걸스럽게 값나가는 고문서와 도자기, 민예품을 수집하여 일본으로 가져간 것과는 달리 이들 형제는 “조선의 것은 조선에 두어야 한다.”는 지론으로 자기들이 모은 조선 민예품은 물론이고 본인 자신도 죽어 조선땅에 묻히기를 원했으니 조선을 사랑한 진정한 일본인이라고 일컬어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