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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년간 일본 역대 총리 101대, 초대는 이토

조선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는 네번 총리직 맡아
맛있는 일본이야기 <660>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지난 7월 8일, 아베 신조(安倍晋三, 67세) 전 일본수상이 선거 유세 중에 총을 맞고 쓰러져 죽었다는 뉴스가 일본발로 속보로 전해진 이래 한국에서도 상당시간 ‘총격, 사망, 장례’ 등에 관한 보도가 신문과 텔레비전 뉴스 등을 도배한 적이 있다. 때마침 일본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자민당 후보의 지원 유세 중에 총격을 받은 사건이라 더욱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일본의 초대 총리는 1885년(명치18년),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시작으로 현재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총리가 101대 째이며, 지난 7월 사망한 아베신조는 90대, 96, 97, 98대를 역임한 최장수 총리로 일컬어지고 있다.

 

 

일본의 총리는 실질적인 최고지도자로서 외교적, 정치적, 군사적인 실권을 쥐고 총리대신(総理大臣) 또는 수상(首相)으로 불린다. 일본국 헌법 조항에 따라 국회의원 가운데서 국회 의결에 의해 지명되고, 일왕은 이를 임명한다. 총리 자격은 국회의원이지만, 관례상 중의원과 참의원 의원의 투표로 중의원 의원 가운데서 지명된다.

 

메이지시대(1868) 이전에는 이른바 막부시대로 쇼군(장군)들이 모든 권력을 쥐고 흔들었으나 메이지왕(明治天皇) 이후에는 총리 제도를 두어 그들로 하여금 일본을 이끌어가게 법제화 했다. 1885년 시작된 총리제도 이후 현재(2022)까지 137년 동안 이어지고 있으며 모두 101명이 총리로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초대 총리인 이토 히로부미는 메이지유신 이후, 정부의 요직을 두루 거친 인물로 일본 메이지 헌법의 기초를 마련하고, 초대(1885-1888), 제5대(1892-1896), 제7대(1898-1898, 6개월), 제10대 (1900-1901) 등 모두 네 번에 걸쳐 총리를 역임했다. 일본 제국주의 시절, 조선의 식민지화와 아시아 침략을 주도했던 이토 히로부미는 침략을 겪은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여러 나라로부터 ‘침략의 원흉’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런가하면 조선의 초대 총독(1910-1916) 데라우치 마사다케(寺内正毅)는 독립운동가들을 감옥에 마구잡이로 잡아넣은 이른바 ‘데라우치 총독 암살미수사건(이른바 105인 사건)’을 일으켰을 뿐 아니라 대한제국을 식민지로 만드는 일에 앞장섰던 인물이다.

 

1910년 한일병탄 후, 조선에서는 신민회와 기독교인들을 중심으로 독립운동이 확산되고 있었는데, 일본은 신민회를 제거하기 위해 데라우치 총독암살미수사건을 꾸몄고 이 일로 양기탁을 비롯하여 전국적으로 600여 명이 검거되어 재판을 받았다. 특히 제1회 공판에서 5년 내지 10년형의 유죄로 판결된 인사가 총합 105명이나 되어 데라우치 총독암살미수사건을 105인 사건이라고도 한다. 일제는 신민회를 해체시키는 등 비밀 항일단체 제거에 혈안이 되어 있었는데 그 맨 앞에 데라우치 총독이 있었다.

 

그런가하면 제81대 총리를 역임한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1994-1996)는 1995년, 식민지 지배와 침략을 인정하고 공식적으로 사죄한 총리로 한국인은 기억하고 하였다. 이는 일본의 역대 총리 가운데 가장 적극적인 식민지배 사죄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배상과 군위안부에 관한 문제는 언급되지 않은 점을 숙제로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