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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잘못 쓰는 한국 지식인들

한국인의 영어 능력 세계 49위가 걱정이 아니다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지난 12월 3일 ‘머니투데이’에는 “한국, 영어 능력 세계 49위…중국ㆍ일본은?”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올랐다. 기사 내용은 “최근 스웨덴 교육 기업 '에듀케이션퍼스트'(EF)의 '2023 영어능력지수'(EPI·English Proficiency Index)에 따르면, 조사 대상인 113개국 중 한국은 49위를 기록했다. 지난해 36위에서 13계단 하락한 순위다.”라는 것이다. 이는 전체 조사 대상 113개 나라 가운데 한국은 보통 수준인데 이에 견줘 중국은 82위, 일본은 87위로 낮은 수준이라고 한다.

 

또 기사에 보면 1위에 네덜란드가 차지했으며, 싱가포르, 오스트리아,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벨기에, 포르투갈, 남아프리카공화국, 독일 순으로 상위 10위권을 이뤘다는 소식이다. 그런데 10위 안에 든 나라 대부분이 유럽 나라들이고, 유럽 외의 나라는 싱가포르와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영국의 오랜 식민지였으며 현재 영어를 공용어로 쓰고 있는 나라들뿐이다. 하지만, 한국ㆍ중국ㆍ일본은 문화가 전혀 다르고 각자 자기들의 말과 글이 살아 있어서 영어에 목매는 처지가 아닌 것이 다르다.

 

그런데도 이 기사를 보고 영어에 목매고 있는 우리나라로서는 뜻밖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또한 세계로 나가야 할 시대에 ‘이렇게 영어 능력이 낮으면 어찌할까?’라고 걱정할 수도 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영어 능력이 낮은 것보다 한국인이면서 한국어를 잘못 쓰는 것이다.

 

영어 잘못 하는 걸 걱정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라고 쓰는 지식인들

 

지난 2008년 이명박 정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이경숙 위원장은 "영어 표기법이 획기적으로 바뀌지 않으면 원어민처럼 발음하기 어렵다. 얼마전 내가 'press-friendly(언론친화적)'란 말을 했더니 언론에서 모두 '프레스 프렌들리'라고 썼더라. ‘f’ 발음은 '후렌들리'가 맞다. 내가 미국에서 '오렌지(orange)'라고 했더니 아무도 못 알아듣다가 '오린지'라고 하니 알아듣더라"라고 했다. 또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영어과목 이외의 일반과목도 영어로 수업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라는 말도 했다. 이후 엄청난 반발을 불러일으키면서 없었던 일로 된 적이 있었다.

 

영어를 잘 못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초중고등학교 12년 동안 국어를 배우고도 정작 올바른 우리말을 올바로 쓰지 못하는 게 더 큰 문제다. 예를 들면 ‘표정’이란 말은 얼굴에 나타난 모양을 말하는 것이므로 ‘얼굴 표정’이라고 쓰는 것은 쓸데없는 이중표현이다. ‘열매를 맺다’라는 뜻이 담긴 ‘결실’에 맺다를 붙여 ‘결실을 맺다’라고 쓰는 것도 잘못이다. 그런가 하면 ‘각 분야별’이라며 쓸데없이 ‘각’ 자를 더 쓴다. 또 ‘그런데도’라고 쓰면 될 것을 ‘그럼에도 불구하고’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쓰는데 이는 일본말 ‘불구하고’란 사족을 다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말을 잘못 쓰고 있으면서 부끄럽게도 영어나 어려운 한자말 쓰는 것은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버젓이 쉬운 우리말 ‘땅꺼짐’이 있는데도 언론 대부분이 영어 씽크홀(Sinkhole) 또는 한자말 지반침하(地盤沈下)라고 쓰는 등 문제의식을 갖지 못하고 있다. 지식인들이 이러니 일반이야 그것이 잘못인 줄 모르고 그대로 따라 할 수밖에 없다.

 

말이 오르면 나라가 오르고 말이 내리면 나라가 내린다

 

일제강점기 국어학자이자 독립운동가 주시경 선생은 “말이 오르면 나라가 오르고 말이 내리면 나라가 내리나니”라고 말했다. 우리 스스로 우리말을 올바로 쓸 때 우리의 국격도 오른다는 이야기다. 반대로 우리 스스로 우리말을 천시하고 남의 나라말 쓰기를 즐긴다면 그 어떤 외국인도 우리를 존중하지 않을 것이며, 따라서 나라의 발전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란 뜻이다.

 

 

지난 2007년 서울에 온 중국 연변대학교 김병민 총장은 글쓴이와의 대담에서 “만주족은 말에서 내렸기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라고 말했다. 여기서 김 총장이 말한 ’말‘이란 사람이 입으로 하는 말과 타는 말을 함께 뜻했다. 그는 말타기를 즐겼던 만주족이 말을 타지 않게 되었지만, 그보다도 삶에서 자신들의 말을 버렸기에 정체성이 사라지고, 마침내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는 지적이었다. 이 말을 우리는 뼈아프게 들어야만 한다.

 

적어도 12년 이상 국어를 공부한 지식인들이 엉터리 글을 쓰는 것은 물론 또 그 잘못을 지적해 주는 사람이 없는 지금의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제발 주시경 선생이 한 말을 곰곰이 생각하고 우리말을 사랑하는 대한민국 지식인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