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이윤옥 문화전문기자] 5월이 되면 슬슬 일본의 하늘을 장식할 잉어들이 선보이고, 5월 5일은 그 고이노보리(こいのぼり,잉어날리기) 절정의 날이다. 이때쯤 일본을 찾는 사람들은 시골집 마당이나 유치원 마당 또는 아파트 베란다에 세워둔 커다란 모형 잉어를 보게 될 것이다.그런데 왜 하필이면 하고많은 물고기 가운데 잉어모양일까?
이는 중국 후한서(後漢書)에 그 답이 있다. 중국 황하강으로 흘러드는 지류에 용(龍)이라 불리는 폭포가 있었는데 이 폭포를 향해 수많은 물고기가 뛰어오르려고 하지만 그 가운데서 잉어란 놈만 뛰어오르는 것을 보고 중국인들은 잉어를 입신출세의 상징으로 여겼다. 일본에는 에도시대(江戶時代.1603-1868) 때 무사집안에서 시작된 단오풍습으로 음력 5월 5일 무렵 사내아이의 출세를 기원하여 집 마당에 높은 막대기를 세우고 거기에 길게 늘어뜨린 모형잉어 장식을 달아 둔 것이 그 유래이다.
한국의 단오풍습은 아낙들이 창포물에 머리감는 따위의 의식이 남아 있지만 같은 창포(菖蒲)라도 일본에서는 나쁜 악귀의 액땜용으로 쓰이는데 그것은 일본말 ‘쇼우부(尙武, しょうぶ)’와 발음이 같기 때문이다. 창포(菖蒲)는 곧 상무(尙武)라는 말과 같아 창포-상무-무가사회로 받아들여졌고 5월 단오날은 남자아이의 입신출세와 무운(武運)을 비는 행사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일본은 모든 명절이나 기념일을 양력으로 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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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키다니보육원(왼쪽), lowbihong 님 제공 |
이날은 집안에 대대로 내려오던 갑옷과 투구 등을 현관에 장식으로 걸어두고 아이들에게 은근히 조상의 위업을 본받도록 하는 풍습이 있으며 5월인형(五月人形)이라고 해서 사내아이가 출생하면 무사인형, 딸아이가 태어나면 히나인형(ひな人形)을 할머니들이 선물한다. 일본인들이 단오 풍습을 버리지 않고 사내아이들의 잔칫날로 승화시켜 5월 5일 고이노보리(잉어 날리기) 풍습으로 이어오고 있는 데 견주어 한국의 어린이날은 요즈음 그 본래 뜻을 잃은 채 이벤트성 행사만 늘어가는 것 같다.
한국의 어린이날은 1919년 3·1독립운동을 계기로 어린이들에게 민족정신을 고취하고자 1923년 방정환(方定煥)을 포함한 일본유학생 모임인 ‘색동회’가 주축이 되어 5월 1일을 ‘어린이날’로 정하였다가 1927년 날짜를 5월 첫 일요일로 변경하였고 광복 이후에는 5월 5일을 어린이날로 지내고 있다.
갑옷이나 투구를 선물하고 잉어처럼 살아 퍼덕이는 힘을 가진 사내아이로 자라도록 어린시절부터 독려하는 일본의 5월 5일에 견주어 비싼 물건이나 사달라고 졸라대고 그것을 사주는 것이 어린이날인지 아는 한국의 상황은 푸른 하늘에 펄럭이는 모형잉어의 선명한 색만큼이나 뚜렷한 차이가 난다. 5월 5일 일본의 고이노보리(잉어 날리기) 날이 되면 한국의 “어린이 날”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를 생각하게 된다.
** 이윤옥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장
일본말 교재는 해마다 눈부신 발전을 보이고 있지만 문화나 역사, 습관, 생활 따위의 관한 책은 고인 연못의 물처럼 물갈이가 잘 안 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역사학자는 역사만 파고, 문학자는 문학에만 매달리다 보니 일반인이 통합적인 “일본 이야기”를 만나기가 쉽지 않다. 가끔 단편적인 일본감상문들이 반짝 시중에 나돌다가 말곤 하는 것을 보고 다양한 역사와 문화를 다루는 “일본이야기”를 써야겠다는 생각으로 이 작업을 지속하고 있다. 한국외국어대학교 외국어연수평가원 교수. 일본 와세대대학 연구원을 거쳐 지금은 글쓰기에 전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