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이윤옥 기자] 얼굴 생김새로 보면 일본인과 한국인 그리고 중국인은 그 차이를 알 수 없다는 서양인들이 있습니다. 한국인인 저 역시 이 세 나라 사람들의 얼굴 구분이 안 되는 때가 있는데 서양인들이 이 세 나라 사람을 구분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특히 한국과 일본 이 두 나라 사람을 얼굴만으로 국적을 구분하기란 거의 불가능 할 것입니다.
외모에서 오는 친근함 때문인지는 몰라도 일본인 가운데는 유달리 형제자매처럼 느껴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에노미야코(上野都) 시인도 그 가운데 한분입니다. 요즈음 저는 그분을 미야코 언니라고 부릅니다. 친언니가 없어서이기도 하지만 한국인인 저보다 더 한국의 역사와 문화에 관심이 많은 점, 그리고 결정적으로 제가 피붙이처럼 느끼게 된 것은 미야코 언니가 쓴 항일여성독립운동가를 기리는 시를 읽고 부터입니다.
미야코 언니는 2002년에 나온 《바다를 잇는 소금물, 海をつなぐ潮》이라는 시집에서 황애시덕, 황신덕, 김마리아, 유관순 등의 항일여성독립운동가들을 기리는 시를 써서 일본 언론에 큰 주목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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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야코 시인의 새 시집 《땅을 도는 것、地を巡るもの》표지, 미야코 씨 모습 |
한국일보 2013년 3월 13일치에 "항일 한국 여성들의 고통, 시를 통해 세상에 알리고파"라는 제목으로 실린 대담에서 미야코 언니는 “1919년 2월 8일 도쿄 한복판에서 재일 유학생들이 독립선언 선포한 것을 기반으로 한국에서 3·1운동이 일어났잖아요. 이를 주제로 삼아 역사를 움직일 수 있는 힘은 이름 없는 수많은 여성들이었다는 내용의 서사시를 쓴 것이지요." 라며 한국인보다 더 깊은 애정과 통찰력으로 항일여성독립운동가들을 바라보고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미야코 언니는 올해 한국나이로 67살입니다. 여성으로서 나이를 밝히는 것은 썩 유쾌하지 않겠지만 그러나 시인으로 등단한 지난 40여 년간을 한국의 굴곡진 역사와 그 속에서 꿋꿋이 나라를 지켜간 한국 여성들의 독립정신을 기리는 시를 쓰고 더 나아가 한반도 등 세계 국경 분쟁에 대한 반전(反戰)과 평화를 기원하는 모습을 보면서 미야코 언니의 나이테 하나 하나는 세상을 밝히는 예순일곱 개의 촛불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얼마 전에 나온 신간 《땅을 도는 것、地を巡るもの》후기(後記)에서 미야코 언니는 “강은 한강이며 임진강이다. 태고로부터 조선반도를 기름지게 하던 강이 지금은 남과 북으로 사람의 생활마저 갈라놓고 있다. 다리도 없다. 나는 단지 강 언저리에 서서 먼 언덕을 바라다보면서 예전부터 흐르던 강물이 사람의 마음속에서도 다시 흐르길 빈다.” 라고 썼습니다.
일본 시인이 일본의 정서만을 노래한다고 해서 누가 뭐라 할 사람이 없을 텐데 극우 일본인들의 시선도 곱지 않은 그곳에서 ‘한국을 노래’하는 미야코 언니를 종종 저는 이런 분들과 견주곤 합니다. 조선인보다 더 조선을 아끼다 조선땅에 묻힌 《백자의 나라》를 쓴 아사카와다쿠미나 도쿄 2.8독립선언 주동자로 붙잡혀 들어간 조선유학생들을 무료로 변론해준 후세다츠지 같은 사람들 말이지요.
"지금이라도 한일 두 나라가 서로의 역사를 되짚으며 간절히 보듬는 시도를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후손들에게 역사교육을 게을리 해서도 안 될 것"이라고 미야코 언니가 한국일보 대담에서 강조한 말은 언제까지나 유효한 말이라고 봅니다. 한국문화와 역사를 알고자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한 미야코 언니의 한국어 실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 할 만큼 능숙하여 저는 미야코 언니에게 지난 3.1절 항일여성독립운동가 시화전에 특별히 시 번역을 부탁한 적이 있습니다.
시란 단순한 언어 번역이 아닌 만큼 해당 언어는 물론이고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에 깊은 관심과 사랑이 있어야 한다고들 합니다. 그런 모든 요소를 갖춘 미야코 언니는 번역료 한 푼도 드리지 못하는 상황임에도 지난 3.1절 시화전에 선보인 항일여성독립운동가를 기리는 시 30여 편을 여러 달 동안 노고를 아끼지 않고 번역해주셨습니다.
미야코 언니는 일본문학계의 중진이자 재일한국문인협회 외국인 정회원 1호로 상임간사 일 까지 맡아 바쁜 가운데서도 시를 통해 잘못된 한일 역사와 항일독립운동을 한 여성을 알리는 일에 열심이십니다. 그러한 열정 뒷면에는 재일동포 민족시인으로 널리 알려진 남편 김리박(71) 시인의 도움이 컸으며 이 두 거목에 의해 한국인의 역사와 문화가 일본땅에 소개되고 있으니 참으로 고맙고 다행스런 일입니다.
이윤옥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장